한진만 韓陳滿 2009-12-01

기간   2009-11-04 ~ 2009-12-01
작가   한진만
장소   休 갤러리상
문의처   Tel. 02.730.0030  
전시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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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과 마이산을 중심으로 한국의 靈山을 표현해 오던 한진만 화백의 14번째 개인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사생의 대상을 지구 전체로 확장하여 표현한 전시이다. 고산의 영험한 기운과 생명력을 통해 자연의 신비함을 드러낸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地球 山水
대상 사물의 안쪽을 통해 더 큰 스케일의 세계를 조망한다.



신혜영 | 갤러리상 큐레이터



도(道)란 그것이 실재한다는 확실한 진실성을 가졌으면서도 어떤 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형태도 없는 존재다. 그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기는 해도 형태 있는 것으로써 손에 받을 수는 없다. 이것을 체득할 수는 있어도 이것을 눈으로 보지는 못한다. -莊子-

실재(實在reality)란 무엇일까? 동양사상에서는 전통적으로 도(道)라는 단어를 실재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제시하여 왔다. 동양의 예술은 동양사상을 근간으로 삼아 사물의 바깥쪽 형상 안쪽에 내재한 실재를 표현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것은 대상의 안쪽이자 동시에 예술가의 내면과도 통하는 것으로서 예술가가 사물의 본성을 체득한 바를 수묵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대탁 한진만 화백은 스스로 경험한 세계에 대한 감동과 자신으로부터의 확신 속에서 줄곧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의 자연에서 뻗어나가 최근에는 지구 산수(地球山水)라는 주제를 작품의 화두로 삼고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수묵 산수화에 내재한 동양적 가치를 살펴봄으로써 확장된 스케일의 의의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때 전통 수묵화를 읽어내는 고유한 시각에 최근 한 세기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현대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더하는 시도를 조심스럽게 해 보고자 한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기획이 이치에 닿는 바가 있다면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미술의 작금의 상황에 신선한 숨을 불어 넣어 생기 있는 예술에 대한 기대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의 그림을 통해 수묵화의 토대가 되는 동양사상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명산을 그린 작품이지만 외향을 묘사하듯 그리지 않았다. 작가의 몸과 마음에 조응되어진 대상의 고유한 본성을 표현한 자취를 볼 수 있다. 대상의 본성을 설명하는 동양사상의 특별한 개념이 있다. 만물은 그 본성을 기운(氣韻)으로써 드러낸다는 것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말은 그림에서 대상 본성의 기운이 살아 있는 듯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서예와 같은 추상적인 형태에서조차 글을 쓴 이의 성정(性情), 곧 뜻와 생명력이 작품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의 여타 화론들의 최종 목적도 기운생동의 원만한 표현을 위한 방법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에 관한 강조는 동양화 작품에 있어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근래에 와서 기운을 에너지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단순한 파워로서의 에너지이기보다 의식을 가진, 곧 정보를 가진 에너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한진만 화백의 작품에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웅장함과 숭고함, 때로 처연하고 고요한 기운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연하다. 먹의 다양한 색감과 필선의 생동감 있고 찌르는 듯한 기세는 태백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의 요동치는 생명력을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먹색의 다양함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빈공간으로 남겨진 여백이다. 여백으로 말미암아 작품은 숨을 쉰다.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품은 거대한 어머니 지구는 인간인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호흡해야 할 것만 같기도 하다. 호흡은 살아있음에 대표적인 현상이자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감성적인 차원에서 ‘기운’과 ‘호흡’의 들숨 날숨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긴 세월 수묵화가 지향한 세계의 본성인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과 존재하는 세계와의 상관성에 좀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과학자들은 20세기 들어 양자론이라는 의미심장한 과학적 성과를 내 놓았다. 양자론의 대상이 되는 물질은 극미시세계를 관찰할 때 드러나는 것으로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양자(楊子quantum)는 다른 세계의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와 물질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것이므로 실재를 찾는 과학자의 중요한 탐구영역이다.




양자론의 이론 중 많은 부분은 미해결되었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년 동안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내놓은 성과는 20세기를 전후로 하여 과학적 가치의 대대적인 전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세계는 객관적이고 일의적이고 연속적이며 확정적인 성격 곧 세계의 견고성을 의심할 수 없다는 가치관에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히려 세계는 주관적, 다의적, 불연속적, 불확정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자들은 물질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진공을 발견하였다. 과학자들이 관찰한 미시세계의 진실은 존재하는 만물의 대부분은 진공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거시세계인 우주에 관한 발견과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우리의 우주는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진공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안에는 인류가 밝혀내지 못한 에너지와 물질이 94%가 된다는 최근의 이론과 상응하는 지점이다. 위에서 그러하듯 아래서도 그러하리라고 했던가? 거시세계의 우주적 진공과 미시세계의 진공차원은 동양 사상의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동양사상의 ‘도’와 그것의 표현으로써 대표적인 ‘기운’이 새로 발견된 과학적 진실과 어떤 대응관계를 이루는 것일까? 양자세계의 속성 중 한가지인 ‘불연속성’은 바로 양자적 도약(quantum jump)을 일컫는데 여기서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양자적 세계는 이전의 합리적이고 개별적인 세계에 비해 ‘전일성’과 ‘통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개별 양자들은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동양사상에서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 잇닿아 있다. 즉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합일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에너지로 가득 찬 양자세계와 우주속의 진공은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 찬 만물의 내면을 표현하려 한 동양의 의지와 통해있다. 이렇듯 신비롭게 여겨져 온 동양의 사상들은 오히려 20세기에 들어 새로이 밝혀진 과학적 메시지와 더욱 밀접해 보인다.



한진만 화백의 최근 산수화는 하나의 화폭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공존해있다. 간혹 인가가 보이는 풍경은 인간과 자연을 한 가족으로 묶어버린다. 우렁차게 호흡하고 있는 산봉우리들은 그 스케일을 한 지역에서 지구 전체로 확장시킨다. 점점 커지는 공간의 스케일은 오히려 그 안에 내재한 미시세계의 커다란 진공과 에너지로 가득 찬 기운을 의식하는 작가의 심안(心眼)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수 백 년의 근대 역사동안 형상과 표피의 중요성이 극대화된 현실을 미망(迷妄)이라 치부해버릴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인류가 짐짓 무시해온 존재의 내면-안쪽 세계- 깊이 침잠해갈 수 있는 힘을 되찾음으로 인해 우주적 스케일과 보이지 않는 너머의 스케일로까지 확장되는 미래를 꿈꿔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음 세기의 과학자들이 에너지를 어떻게 정의할지, 어떤 낯선 말들로 에너지를 논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블레이크William Blake 의 말을 반박할 수는 없으리라. 에너지는 어떤 의미에서 신이나 창조주라는 개념과 동일한 뜻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에너지는 우리의 수학적 설명을 초월하는 실재이다. 에너지는 생기 없는 우주 속에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네 존재의 미스터리 중심에 있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