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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윤형근 되어보기

이유림


윤형근 저, 『윤형근의 기록』, PKM BOOKS, 2021 



  죽죽 거칠게 그어 내린 듯한 검은 선들과 흐르는 물감들. 이는 곧 우뚝 솟아 있는 검은 절벽 같기도, 사회상 같기도 한 실루엣이다. 동시에 서양의 모노크롬 같기도 하면서 동양의 수묵화 같은 모습을 띠어 궁금증을 유발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고 있으면 작품으로 빨려 들어가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게 된다.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작품을 볼수록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그려야 작품으로 여운을, 감동을, 안정을 주는걸까.


  『윤형근의 기록』은 단색화의 거장인 故 윤형근 화백(1928-2007)이 197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포착한 삶의 기록물을 엮은 첫 단행본이다. 메모첩, 서신, 원고 등에 남겨진 윤 화백의 감정과 생각이 그대로 전해진다. 따라서 책을 통해 우리는 그의 직접적인 육성을 느끼고, 그가 전개해온 작품의 세계관을 살펴 볼 수 있다. 단행본에서는 미공개 드로잉 수십여 점과 초기작을 포함한 주요 회화, 편지·수첩·사진 등의 엄선된 아카이브 자료들이 일반에 최초로 소개된다.


  윤형근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과 사회상을 잘 대변했다. 이 땅에서 일어났던 모든 부조리에 견딜 수 없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시커먼 내면을 표현했다. 이러한 울분을 무너지듯 사선으로 그려진 획들, 까만 절벽과 같은 도상으로 보여준다. 기존 단색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와 달리 그는 사회상을 절실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삶 이외에 ‘자연’도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는 자신이 맞이하던 낙척한 사회와 달리 자연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서로를 헐뜯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유(有)에서 무(無)로 돌아가는 순리를 따라 형태를 지을 수 없는 원초적인 실재를 그려냈다.  



윤형근, <다색>, 마포에 유채, 181.6x228.3㎝, 1980


‘나는 언제부터인가 빛깔이 싫어져서 빛깔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선도 되도록 간결하게 둘 , 셋 또는 하나로 줄여 나가고 있다. 그림이 반드시 색이 많다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 않나. 내면이 아름다운 것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 윤형근 1986.9.19 P.202


  윤형근이 평생을 그려왔던 작품은 어리숙하고 간결하지만 누구보다 진정성 있고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윤형근에 대한 조사는 많다. 하지만 이는 제 3자의 입장으로서 윤형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본 저서를 통해 윤형근의 직설적인 감정과 말씨를 보고, 직접 윤형근이 되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내밀하게 적은 기록물들은 그를 대변하는 가장 정확한 기록이다. 『윤형근의 기록』은 그를 읽는 새로운 지표가 되고, 위대한 작가로서의 윤형근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 가장으로서의 그가 되어 함께 작품을 맞아들이게 된다.



서진수 편, 『단색화의 미학』, 마로니에북스, 2015


  윤형근을 말하고자 할 때 단색화를 빼 놓을 수 없다. 『단색화의 미학』은 단색화 붐이 일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단색화가 태동하고 전개된 시대적 배경과 미술계 상황, 그리고 단색화가 국제화되고 담론을 형성해온 과정을 다루었다. 책에서도 ‘윤형근: 캔버스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조형’이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그를 다루고 있는데 『윤형근의 기록』과 함께 읽어보았을 때 그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담론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함께 기재된 다른 단색화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윤형근의 작품을 더욱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순, <무제-03>, 캔버스에 혼합매체, 162x112cm, 2018

 

  소개하고 싶은 단색화 화가가 있다. 바로 김종순이다. 화선지 표면에는 물감들이 죽죽 스미고 번진다. 동시에 일정한 면적으로 격자들을 가로질러 화면 안에서 모든 색이 항형하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색체들을 하염없이 스며들도록 의도한다. 윤형근의 스며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작업과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의도된 선들은 약간의 다름을 만들어낸다. 자연스러운 번짐과 계획된 공간은 작가의 작품을 더욱 오묘하게 만든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작가의 작업을 비교하다 보면 더욱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다. 최근까지도 그림손 갤러리에서 2021.10.27.-2021.11.02.에 개인전을 개최했다.


  윤형근의 검고 어둡지만 찬란한 단색화에서부터 김종순의 의식적이지만 풍경 같은 단색화까지. 단순한 미적 감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가 되어보자. 단색화는 한 사람의 삶을 담는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길 바란다.


                                                                                     

이유림 leeyulim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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