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70, 80년대만 하더라도 대개 신인들의 작품은 한눈에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공모전에 가 보면 이 작품은 어느 대학출신 뿐 아니라 어느 교수의 제자의 것이란 선까지 이르게 된다. 미술교육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둥 학생을 교수들이 다 버려놓는다는 둥 비판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점은 폐단일 수도 있지만, 어느 면 장점도 없지 않다. 오랜 관습으로서의 도제식 교육이 갖는 한계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일정한 계통이 생겨나고 이른바 학풍(에콜)이란 것이 형성되는 것이니까 폐단이라고만 비판할 일도 아니란 것이다. 오늘의 예술교육이 아카데미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상당 부분 도제식 잔재를 극복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선생의 화풍만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수업기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많은 세월이 요청되고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다. 학교를 갓 나온 신진급에서 지나치게 개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진은 그 나름으로 개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니까 더 두고 볼 일이다.
예술교육이란 일종의 공동체적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 일정한 화풍이 생겨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예술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러한 학풍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예술은 일종의 관습에 의해 전승된다. 관습의 축적이 없다면 전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연륜이 있는 교육기관일수록 관습은 풍부한 내면을 지니는 것이다. 신입자들은 알게 모르게 이 풍부한 관습의 자양에 의해 자신을 살찌우게 되고 나아가서는 독자의 예술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기에 예술교육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어떤 교육기관보다도 강한 편이다.
공동체 의식은 집단적 개성의 형성
그런데 근래의 신진들 작업에선 도무지 이 같은 공동체적 의식의 발현이 보이지 않는다. 작품만 보고서는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가늠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것을 두고 개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공동체를 통해 형성된 집단적 개성으로부터 서서히 자신을 독립시켜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에콜이란 학풍을 일컫는 말인데 예술세계에서의 에콜이란 특정한 화풍에 해당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파, 베네치아파, 시엔나파 하는 것은 특정한 조형이념에 의한 화풍이라기보다는 한 지역의 분위기를 공유함으로써 생겨나는 유대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피렌체파라고 했을 때 피렌체란 환경에서 형성된 공동체적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도제교육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스터 밑에서 배웠던 여러 제자가 독립하면서 많은 제자가 나오고 이들이 피렌체 전역에 분포되면서 공통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말이다.
아카데미 형식을 띠면서도 도제식 교육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는 우리의 미술대학도 학교별 에콜의 형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학교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그것이 어우러지면서 한국화단이란 사회 - 미술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하는 신진들의 작품은 오랜 관습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은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개별성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란 집단적 개성의 형성을 이름인 것인데 그것 없이 독자한 개별성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무언가 다른 듯하면서 자세히 보고 있으면 개별의 특징이 잡히지 않는다. 종내에는 비슷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술의 평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갸웃거리게 된다. 예술의 평준화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과연 예술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앞선다. 단언컨대 예술의 평준화는 있을 수도 없지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예술의 타락이요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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