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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손과 빵값

정진용

글이 있는 그림(76)
얼마 전 볼트의 연구원들이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나는 심오한 대담 대신 고기와 와인, 그리고 편안한 대화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술잔을 따라 역시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집요한 성토들이 이어졌다. 그날 예술에 대한 나의 화두는‘생각에 앞서는 손’이었다. 요컨대 그림은 판단이나 계획과 관계없다는 것, 음악가에게 악보의 이해와 연주가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화가에게 표현은 그러한 것이다. 서사를 무력화시키는 직관, 신에 대한 경배와도 같이‘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독백은 얼마나 짜릿한가. 몰입과 긴장의 순간 목적과 의미는 사라진다.
진정한 작가의 관성은 위대한 언어를 뛰어넘고 사유를 정지시킨다.
손의 흔적이 번잡한 말을 대신하듯, 작가에게 물질적 풍요는 표현의 욕망에 앞서지 않는 듯 하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의 배고픔이 나를 좌절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은 푼돈으로 유혹한다. 빵값에 대한 고민이 생겨날 때 예술과 철학은 고개를 숙인다. 허나 언제부터 작가가 돈지랄의 굿판에 춤추는 사이비 무당이었던가. 나는 대학시절 재료비 마련을 위해 자판기 우유로 끼니를 때웠었다. 그 시절이 마냥 아름다운 추억만은 아니지만, 빈궁이 빈천은 아닐 터이니 지금의 허기는 삶의 사소한 결핍일 뿐이렷다. 모자란 것은 채우면 그만일 터, 풍요롭게 채워질 날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오로지 자기에게 도전한다. 자신과 분투한 경험치가 자기를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꿈을 안고 노력하는 자에게 시련은 삶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니 혹독한 없음의 시기를 버틸 수 있다. 가난한 동료들이여 기운들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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