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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꽃(花)

정규석

글이 있는 그림(78)

여름이 녹음과 함께 갑작스레 다가왔다. 좋아하던 분홍과 노랑이 어울린 신록의 색깔은 어느새 멀리 지나쳐버리고 이제 그 신록을 다시 마주하려면 10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이번 봄은 전시회 준비로 학교와 작업실을 가쁘게 오가다 그 절친한 봄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보내버렸다. 더위가 일찍 온 탓인지 벌써 붓꽃은 꽃대만 남기고 초롱꽃도 잔대도 깊은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방울꽃도 얕은 산에서는 이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꽃은 내게는 아주 오랜 친구이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셨던 아버지는 화초를 좋아하셔서 한옥의 작은 마당과 거실은 온통 화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시사철 어려서부터 화초와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서울이지만 시골을 닮았던 어려서 살던 숭인동은 뒷산을 가는 길을 계절 따라 온갖 꽃들로 장식을 하곤 했다. 요즘의 아이들과는 달리 당시는 놀 곳이 마땅치 않아 청량사라는 절을 끼고 있던 뒷산은 아주 매력적인 놀이터였다. 스님들 몰래 서리도 가끔은 하며 천방지축이었던 시절도 야산을 틈틈이 메워주던 들꽃들은 노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예쁜 애인이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언제나 꽃들로 가득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시대의 변함이 때때로 나를 죄이기는 해도 그 예쁜 애인들과 또 다른 오랜 친구인 커피가 있어 나는 항상 반가운 설렘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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