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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빛나는 나

사석원






남대문 시장안에 있는 알파문구에서 유화물감을 잔뜩 샀다. 네덜란드제 렘브란트와 프랑스제 르 프랑이다. 5일전에도 오십만원어치를 샀었고 3일전에도 오십만원어치 샀었다. 그런데 이틀만에 또 떨어진 물감들이 많아 오늘도 그쯤 더 샀다. 그림 그리는데 요즘 돈을 너무 쓴다. 시장안 갈치 골목 끝에 가면 강원집이라는 닭곰탕 집이 있다. 무거운 물감을 낑낑들고 강원집에 가서 닭껍데기 듬뿍 들어간 닭곰탕 한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406번 버스를 탈까하다가 이 짐을 들고 무슨 궁상이냐며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해서 이미 30분이나 지난 한국과 베트남의 축구경기를 저것도 축구냐며 씩씩거리며 봤다. 시합이 끝난후 1시간 정도 잤다.
밤10시. 집앞에 있는 화실에 가서 빈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풍경화다. 물감을 덕지덕지 뭍혀 산을 그린다. 여름 산을 40호 캔버스에 그렸다. 파란색 위주의 비온 뒤 산의 모습이다. 다음엔 역시 같은 크기에 봄의 산을 그린다. 노란색 산이다. 신나게 그렸다.
새벽 4시 30분. 퇴근이다.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영화를 봤다.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굉장한 영화다. 요즘 본 한국 영화중 울림이 가장 크다. 그냥 있을 수 없어 포도주를 한병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잠든지 얼마안되 휴대폰이 울린다. 김달진 소장이다. 서울아트가이드에 글을 써달라고 주문한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몇 시간후 글을 쓰고 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왜 쓰느냐고 사람들이 물을지 모르겠다. 왜냐고? 그건 일생일대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감을 사러 가고 닭곰탕을 먹고 축구중계를 보고 영화를 보며 포도주를 마시고 이 모든게 사건이다. 전무 후무하다. 비슷한 일상 같지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세상에 하찮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사건의 주체는? 바로 나다. 지구 역사상 최초의 나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없으리라. 시시각각 벌어지는 모든 것이 사건이고 감동이다. 위대한 순간들, 그 순간들의 한 가운데엔 내가 있다. 빛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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