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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Landscape, 그 경계에 선 예술가 : 서양화가 정정수

조영미

랜드스케이프(Landscape) 흔히 ‘풍경’이라 통용되지만 ‘조경’이란 의미도 지닌다. 그렇다면 ‘풍경’과 ‘조경’의 어원을 따져보면 일맥상통한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우리나라 예술조경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서양화가 정정수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서양화가 출신으로 예술조경가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나의 질문에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이상한가요? 화가가 조경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죠. 별반 다를게 없는데 말이죠. 전 자연을 캔버스삼아 그리는 화가예요” (…웃음)


풍경과 조경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이 단어만큼 그를 표현하기에 적격인 것도 없을 듯 싶다. 청명한 어느 가을 날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그 경계에 선 예술조경가 정정수 작가를 만났다.



수십년 전, 그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서울생활을 접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문명의 이기 속에 길들여진 도시인의 삶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릇 예술가란 아름다움을 쫓는 것이 당연지사! 지리산으로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매일같이 지리산에 올랐다고 한다. 삼라만상을 뒤섞여 놓은 듯한 자연의 빛, 색채, 형태, 선 등…. 오묘한 자연이야말로 예술가에겐 더할나위없는 호기심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작가에게 있어 지리산은 마치 오묘한 질서와 순리가 오롯이 재현된 소우주 마냥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역시 예술가의 기질을 버리지 못한걸까!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간 지리산에서 그가 눈 뜬 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였다. 처음에는 예술가의 눈으로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름모를 들풀, 나뭇잎사귀 하나라도 그냥 우연히 그자리에 있는 법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아무렇게나 뒤섞여있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의 질서와 법칙이 내재되어 있다. 자연의 섭리를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집 뜰안으로 꽃과 식물을 옮겨와 심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꾸기 시작한 정원이 바로 예술조경가로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라고 회상했다.


“자연이 바로 나의 스승이다”

본격적으로 예술조경가로서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일대 3만5천평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를 만난다. 2002년 현재 소유주의 의뢰로 허허벌판을 캔버스삼아 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그로부터 3년 후 자연과 예술,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벽초지 문화수목원이란 값진 결실을 맺었다. 처음 이 황무지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 골재를 채취해 간 움푹이 패인 웅덩이에 작가의 시선이 고정됐다. 작가는 이곳에 계류를 끌어와 물을 흐르게 하고 교목과 관목을 심어 퇴약볕 아래 그늘을 드리웠다. 광대한 황무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영롱한 물소리가 흐르고 물고기, 벌, 나비가 뛰노는, 바람마저 머물다가는 그야말로 지상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의 땀과 노력이 깊숙이 배여있다. 식재기반시설은 물론 풀 한포기, 돌 하나하나까지 어느 곳 하나 작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절대 인간의 손맛을 드러내선 안된다고 말한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이것이 바로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핵심이다. 작가는 조경이란 분명히 인공적이되 절대로 작위스럽지 않아야 된다고 말했다. 바로 자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식물의 습성,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지 않고선 절대 불가능하다. 작가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지리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지리산이 바로 나의 스승”이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Landscape 그 경계에서 사람을 보다”

작가는 그의 조경관에 대해 자연과 인간의 소통도구이자 인간으로인해 훼손된 자연에 대한 보상행위라고 설명했다. 즉 인간과 자연을 배려하는 행위에 그 근간을 두고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곳곳에는 인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가령 오솔길에 벤치를 설치할 경우 어떤 재료를 쓸 것인가를 먼저 생각지않는다. 이 곳에 앉을 사람을 떠올린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물 위를 걸어다닐 수 있는 데크를 설치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기존의 관례라면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대비해 수면 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는 기존 설계공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면 바로 위에 데크를 놓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생생한 감흥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작가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은 삼성래미안아파트 금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남 구시가지에 위치한 래미안 금광은 검단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주거지로선 불리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비탈진 지면을 최대한 활용해 산책로를 내고 2단 폭포를 조성했다. 중앙정원에 마치 신선들이 노닐 듯한 초심정이란 정자를 세웠다. 온통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에서 이 곳은 주민들에게는 아늑한 자연의 품을,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선사한 셈이다.


이렇듯 그가 말하는 조경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조경이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조경이다.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조차없다. 바로 자연을 향유할 줄 아는 인간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치되는 경지가 바로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를 증명하듯 래미안 금광은 2008 세계조경가대회(IFLA)에서 엑설런스상을 수상하는 등 값진 성과를 거뒀다. 그는 2년 전부터 충주 산골에서 천착하고 있다. 바로 아침편지문화재단의 의뢰로 명상센터 ‘깊은산 속 옹달샘’ 총예술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조경이 설계의 부수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단계부터 예술조경이 접목된 획기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이 명상센터는 매일 아침 전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집필하는 아침편지 집필실, 사무실, 명상의집, 식당, 카페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향후에는 청소년 수련센터, 자연치유마을, 야외공연장과 커뮤니티센터 등도 건축할 계획이다. 장차 이곳은 프랑스 틱낫한의 플럼 빌리지, 인도의 오르빌 마을, 니어링 부부가 만든 ‘굿라이프센터’(Good Life Center)처럼 건강한 육체와 맑은 영혼을 회복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명상센터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서울, 충주, 전주등 전국을 내집처럼 드나들며 생활한지 오래다. 바쁜 나날들 속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후학양성이다. 현재 그는 전주 기전대학 예술조경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예술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덧붙여 예술가들의 예리한 감각과 통찰력이 다른 분야와 접목된다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 꿈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 조영미(- ) 서울아트가이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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