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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고암화숙(顧菴畵塾)과 나

금동원

고암화숙(顧菴畵塾)과 나

_ 돌아가신 선생님께 대한 예우(禮遇)는 우선 제례(除例)하고 반성과 용서를 거듭드리며




남산동 고암화숙(南山洞 顧菴畵塾) 신문광고를 보고 나는 무조건 찾아갔었다. 마침 학교를 그만두려던 차 그래도 그림공부를 계속할 마음으로 마음을 다진 것이었다. 그때가 1947년 초여름에 남산동 화실을 혼자 더듬어 물어물어 찾아가보니 선생님 혼자 앉아 그림을 그리시고 계시던 중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신 후 내일부터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일단 이화여대 3학년 초에 그만 이곳에 다닐 결심을 하였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박석호(朴錫浩) 선생과 원석연(元錫淵) 선생이 석고 데생을 가르쳐 주시고 풍경 스케치 또는 사군자를 배우면서 너무 재미있어 열심히 하였었다.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선생님 제자로서 이희세(李喜世), 이익제(李益濟), 김기호(金基鎬), 김순련(金順蓮) 그리고 나, 잠깐이지만 윤영(尹暎)도 이따금 오락가락하였다. 나는 학교 다니듯 매일 다니면 고암 선생님에게 오시는 손님들을 뵙게 되어 여러 가지 좋은 말씀과 그림에 보탬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그나마 흐뭇하게 참 공부가 된 것이었다.


어느 날 하루는 늦게 오후에 화실에 가서 보니 여러 선생님이 모여앉아 술상이 벌어져 있어 밖의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박인경(朴仁景) 친구가 와서 환히 웃으면서 내가 만나보고 싶던 선생님이 여기 계셨구나 하며 기뻐하면서 자기도 자주 오겠다고 하였다. 그때 방안에는 월북하신 화가 중 이석호, 이쾌대, 임자연, 정종녀 선생 외, 손재형 선생님들이 계셨던 걸로 생각난다. 그리고 하루는 선생님과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선생과 제자들 5명 다 같이 세검정 능금밭에 스케치하러 가서 모두 열심히 풍경을 그려왔는데 선생님과 청전선생님께서 금동원 것이 제일 좋다고 하시면서 그 해 학생 그림전시에 출품하여 상을 탔던 일인데, 그것은 해방 직후 처음으로 조선서화동연회 주최에서 이왕가상(李王家賞)이였다. 그때 얼마나 흐뭇하게 기뻤는지 그 작품은 <세검정풍경 1948년>으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관장 때에 수장(收藏)으로 기증하였다. 그렇게 6.25전쟁 전까지 다녔었는데 선생님과 유난히 친한 성세경(成世慶)씨가 매일 올 때마다 먹거리를 잔뜩 사와서 유독 나에게 친절을 베풀던 일이 이제 금 씁쓸하게 가슴을 친다. 그로 하여금 뒤늦게 운명이 바뀜을 나이 스무 살 처녀는 미처 짐작을 못 하였던 것이다. 얼마 안 되어 6.25가 터져 기어코 나를 따라 대구까지 성(成) 선생이 피난와서 나의 생활은 뒤죽박죽 되어버렸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인가 서울로 돌아와서 살던 중 1967년 동백림사건(東伯林事件) 이후 잠깐 충남 예산 수덕사 수덕여관에 와계시단 소문을 듣고 나는 만사 제쳐 놓고 불이야 살이야 하고 찾아갔더니 마침 선생님께서 뒷우물가 바위에 각(刻)을 하고 계셨다. 나를 보시자 어쩐 일이냐고 하셨다. 나는 잔뜩 원한을 품고 갔으므로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선생님 역시 옥살이 끝에 얼굴이 말이 아니셨다. 잠시도 멈추시지 않은 도끼질 찍찍 꽝꽝 땀을 흘리시고 계시는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순간 잊어버리고 한참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더니 그제야 선생님은 다 눈치로 알았다는 듯 “동원이 지금은 울어도 그림 열심히 하면 웃을 날이 돌아올거여”하셨음에 그 순간 잔뜩 맘에 찌든 앙금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녹아듦을 몸소 느끼면서 ‘아 이 할아버지는 그림 이외로는 보이는 것이 없는 광화사(狂畵師)로 보였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지나간 날 선생님 그럴 수가 있냐고 따지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하고 생각하게 하면서 멍하고 얼마나 말없이 선생님 작업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뜩 “엊그제 원효로 성심 중고교 수업시간 중에 교장 선생님과 정보부 직원이 나를 잠깐 나오라고 하여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리는데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박인경이가 빨갱이냐 아니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잘 이야기하여 보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야 긴 한숨을 쉬시면서 좀 쉬시며 물 마시고 또 도끼를 드셨다.


말할 것 없이 고암 이응노 선생님은 마음속 깊이 백화거목(百畵巨木)이 심어져 있는 인간 광화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나 스스로 결단 내리면서 인연 불가피(因緣 不可避) 운명적으로 만난 화신(畵神), 그림 선생님이라고 내 마음 다지면서 그림과 내 운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끝으로 선생님께서 세계 방방 곡곡에 심어놓으신 그림이 영원히 빛날 것을 빌면서 이 금동원 제자도 이제금 선생님 말씀대로 웃으며 여생을 살랍니다 하고 다짐하였다. 선생님 평안하시지요. 그곳에서도 그림 그리고 계세요? 백화거목 활짝 핀 장관이 보고 싶군요……. 하고 다시는 선생님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 공손히 받아들이고 멀지 않아 또 나도 선생님 뵈러가 그래도 큰절 올리겠다고 내 마음 다짐하면서 내 마음을 달랬다.



금동원(1927- ) 이화여대 수료. 전미국중고교사대상 워크샵 지도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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