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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012 특별한 유럽 현대미술의 여행

양은희

2012 특별한 유럽 현대미술의 여행

-바젤아트페어, 카셀도큐멘타, 메이드인저머니, 베를린비엔날레

 


바젤에서 즐긴 온갖 종류의 예술작품, 제프 쿤스의 작업에 취했던 바이엘러 재단, 임수정과 이정재의 연기에 몰입했던 문경원/전준호의 영상, 카셀의 기차역에서 들은 수잔 필립스의 사운드작업, 해질 무렵 뮌스터의 한구석에서 밟아본 브루스 나우만의 <Square Depression>, 이름 모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본 커피와 아이스크림, 돼지 앞다리구이와 맥주 한잔에 감동했던 하노버의 비어가르텐, 베를린의 한국식당에서 벌인 볶음밥 경연,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걸어본 베를린 장벽, 달리는 버스에서 진행했던 감동적인 이야기와 노래 릴레이, 프라하의 시계탑을 바라보는 관광객 무리에 섞여보기, 재래시장에서 맛보는 여름 베리와 수제파이, 그리고 공항에서의 아쉬운 작별인사.


2012년 유럽 3개국을 거친 1차 투어가 남긴 인상이다. 김달진 선생님 뿐만 아니라 예술가부터 컬렉터까지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20대에서 60대까지 넓은 연령분포를 보였으며, 대부분 한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왕성한 호기심은 서로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여성들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서로 배려하고 공유하면서 성공리에 여행을 마쳤다. 더 넓게 보고, 더 깊이 배우려는 문화는 삶을 예찬하는 이들에게 세대를 넘어 확산되고 있고 유럽여행은 이제 테마여행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미술을 보러 떠난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10일간의 여행을 되돌아본다.


 

바젤아트페어, 카셀도큐멘타

바젤은 아트페어가 열릴 때와 열리지 않을 때 차이가 심하다. 몇 년 전 페어가 끝난 후 들렸을 때 본 고즈넉한 도시 분위기와 달리 이번 페어 기간에 본 모습은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곳답게 유럽 전역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다. 바젤아트페어의 권위는 VIP를 위한 BMW 세단에서부터 전시부스에 걸린 뒤샹, 피카소, 로스코의 작업, 그리고 VIP를 위한 라운지에서 나왔다. 최근 고가의 작가로 분류되는 로스코의 1954년 회화가 미리 언론을 통해 7천 8백만 달러라는 가격으로 소개되면서 아트페어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지만, 바젤아트페어의 진짜 매력은 갤러리마다 한 작가를 추천하는 특별행사인 ‘Art Unlimited’에 소개된 영상, 설치작업이었다. 로버트 모리스의 1960년대 작업과 함께 김수자의 최근 영상작업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미술관급 전시로 상업행사인 바젤아트페어의 세속적 성격을 상쇄시켜 주었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같은 기간 동안 열린 ‘Liste’, ‘Scope’, ‘Bolta’와 같은 작은 아트페어였다. 그 중에서도 ‘Liste’는 유럽, 아시아의 갤러리들이 참여하여 젊고, 거친 작업을 소개하는데, 허름한 건물의 대안 공간 전시처럼 기획되어 17년째 점잖은 도시 바젤에 젊은 생명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답게 제국의 향수를 담고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번 도큐멘타는 여성감독인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에브가 촘촘하게 설계한 구도 속에서 예술가와 비예술가 300여 명의 작업을 통해 인류가 벌여놓은 비극을 딛고 다시 희망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중심으로 전개된 복잡한 정치와 예술가의 흔적들(한 의사의 미술작품 구하기, 알기에로 보에티의 호텔, 사라진 그 호텔을 찾아 나선 마리오 가르시아 토레스의 여정 등), 독일 나치의 만행 속에서도 창의적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면서 남긴 흔적들(사과사제로 불리는 코르비니안 아이그너의 그림, 아이그너가 개발한 사과나무가 심어진 정원, 혁명가에서 예술가로 변한 구스타프 메츠거,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하기 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린 샬롯 살로몬 등), 디지털 음악장치, 나비정원, 콴텀 물리 실험장치 등 과학자가 만든 발명품이 어우러져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온 창의적 인간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메이드 인 저머니, 베를린비엔날레

2007년 조각프로젝트가 열린지 5년 만에 찾은 뮌스터는 북적거리는 관객이 없어서인지, 조용한 독일 도시에 현대미술이 어떻게 일상 속으로 들어가 있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댄 그래햄, 브루스 나우만, 다니엘 뷔렌, 로즈마리 트로켈 등 과거 설치되었던 작품들이 건물, 길과 함께 약간씩 세월의 때를 탄 채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노버에서 열린 ‘메이드 인 저머니’는 카셀의 도큐멘타 기간 동안 열리는 전시로 독일 출신이거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타국 출신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여러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는데 다른 도시에서 집약된 전시를 여러 개 봐서인지 하노버의 전시는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오히려 개최 장소 중 하나인 스프렝겔미술관의 독일미술 컬렉션이 압도적이었다. 20세 전반에 걸쳐 꼼꼼하게 수집한 상설전은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미술의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베를린의 여름도 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문화관광 행사로 풍성했다. 특히 KW에서 열린 제7회 ‘베를린비엔날레’는 그동안 언론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파격적이었다. 예술 실험실을 표방하는 현대미술센터가 기획한 비엔날레답게 올해는 정치적인 것과 상상력이 만났을때 벌어지는 일을 자유분방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화의 피해, 2008년 이후 드러난 이기적인 경제시스템에대한 조롱, 갈등과 충돌에서 얻은 영감이 아무런 여과없이 펼쳐지는 데 그 급진적 형식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주요 문화행사로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5년 간격으로 유럽에 갈 때마다 여러 전시를 통해 보는 현대미술은 여전히 신선하고 그 뒤에는 ‘생각하는’ 큐레이터와 ‘행동하는’ 예술가, ‘용기있는’ 후원자들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번 투어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유우숙 선생님을 비롯한 세 분의 가이드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개성있고 특별한 안내는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묘미를 잘 담은 ‘김달진아트투어’ 시리즈 덕분에 올해 여름은 더욱 기억될 것이다.



- 양은희(1965- ) 미국 뉴욕시립대 미술사 박사. 뉴욕 갤러리코리아 큐레이터,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커미셔너 역임. 현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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