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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미술관의 진로

이명옥


7월15일 여름기획전을 개최하던 날, 이른바 오프닝 데이(Opening day). 지난 몇 달 동안 큐레이터를 비롯한 미술관 직원들이 밤잠을 설치면서 준비한 전시회를 드디어 관객에게 선보이던 날이다.

직원들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 또한 좀처럼 마음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전시 홍보가 잘 되어야 할 텐데, 미술 전문가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관람객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등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년에 4, 5회 정도 열리는 전시회가 미술관의 인지도 및 대외적인 이미지를 결정짓기 때문에 전시회 오프닝 날에는 기대반 걱정반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곤 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관람객의 반응이다. 요즘 들어 미술관을 찾는 사람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에 관람객의 반응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오프닝에는 참여 작가와 지인들로 전시장이 북적거리지만 평일에는 관람객 숫자가 몇 십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도는 전시장 안을 살펴볼 때마다 가슴은 먹먹해진다.

하긴 머리 품과 발품, 돈 품을 팔아 애써 준비한 전시회인데 관람객의 발길이 뜸하다면 그만큼 낙심할 일이 또 있을까?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한다면 스스로 초라해지고 비참해질 지경이다. 관람객 숫자가 적다고 미술관의 문을 닫을 수도, 전시회의 횟수를 줄일 수도, 소홀하게 진행할 수도 없다. 단 한 사람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더라도 전시장 문은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직원들은 관람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니까.

혹 입장료가 부담이 돼 사람들이 미술관에 오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무료 입장을 고려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입장료가 1000~2000원에 불과한데다 미술관의 유일한 수입원인데 싶어 생각을 접고 말았다. 비단 사비나미술관뿐만 아니라 국내 대다수의 미술관들에서도 자체 기획전에 관람객 숫자가 줄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미술사의 거장이나 스타급 예술가를 미끼 상품처럼 내세워 미술 애호가들을 싹쓸이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회를 개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평소 관람객의 발길이 뜸한 미술관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던 나의 입장에서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중이 미술관을 외면하는 현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문화 선진국의 미술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위기를 돌파하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한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슈퍼스타급 미술관들이 대중을 유혹하는 마케팅 기법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을 것인가? 예를 들면 미국 문화의 상징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덴부르 사원을 시민에게 파티 장소로 대여해주고 돈을 벌어들이는데, 1회 대여료가 5만달러다. 스페인 빌바오 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로 변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격조 높은 문화 공간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겨냥한 레스토랑을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다. 뉴욕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의 아트숍은 최고의 명품을 탐내는 쇼핑객들을 유혹한다.

콧대 높은 미술관들이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관람객 몰이에 나선 것은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미술관의 경쟁 상대인 영화관, 테마파크,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 등이 기상천외한 볼거리로 대중의 관심을 빼앗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트위첼 미국 플로리다대 광고학 교수에 따르면 대중은 예술의 성전인 미술관보다 짜릿한 재미를 주는 장소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는 미래에는 두 종류의 미술관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하나는 개인적인 후원이나 기업과의 제휴을 통한 순수 예술적 활동에만 헌신하는 고급 문화의 전당, 다른 하나는 대중의 취향을 겨냥한 프로그램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엔터테인먼트 센터로서의 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트위첼 교수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7월11일자 문화일보 사회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9일 개봉된 영화 ‘블러드 발렌타인’은 온몸의 모든 감각기관에서 오싹함이 느껴진다. … 4D 영화는 특수안경을 쓰고 3차원 영상을 즐기는 기존 3D 영화와 다르다. 과학기술의 진보로 10여 가지 특수효과를 통해 미세한 진동과 바람, 냄새까지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영화다. … 실제보다 더 실감나는 ‘오감 만족 체험’은 동네 오락실, 놀이공원, 박물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찔한 느낌을 얻을 수도 있고, 공중 점프와 물속 질주 등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체험도 할 수 있어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기사에서도 드러나듯 대중은 영화관, 놀이공원, 체험관에서 경험했던 특별한 재미를 미술관에서도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느끼는 재미는 대중과 다르다. 예술가들은 감각보다 본질, 외양보다 내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최상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도 최고의 재미란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며, 그 일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때 주어진다고 얘기한다. 이 양극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오프닝 행사를 끝내면서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지만 감각적인 즐거움에 중독된 대중에게 최고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하려면 먼저 그들이 미술관을 방문하도록 만들어야 할 텐데…,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 문화일보 2009.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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