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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예찬

최동호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은 나의 오랜 취미 중 하나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박물관에 갔다든가 화가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이상적 여성의 모델을 이집트 고분에서 발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외국 여행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다.

이번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역사의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요 미래의 문화를 창조하는 영감의 산실로 탄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뿌리를 순종 황제가 1909년 설립한 ‘제실박물관’에서 찾았다는 것도 박물관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발상이다. 박물관을 죽어 있는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유구한 영속성을 생각하지 않는 단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대표적인 명품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소장지인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관람객이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국보적 명품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진본을 볼 수 있는 천마총의 ‘천마도’ 앞에 서자 흥분과 감회가 교차하여 몇 번이나 되풀이해 보았다. 첨단장비에 의해 투시된 ‘천마도’를 종전과 달리 새롭게 볼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박물관이 이제 국민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느껴져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980년대 어느 날 당시 경복궁 자리에 있던 중앙박물관에 갔더니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말소리가 점령군처럼 복도에 가득 차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올해 초 발굴된 미륵사지 ‘석탑사리구’나 미국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수월관음도’의 우아한 보살상은 물론 이중섭의 동자 그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청자상감포도무늬동채주자’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중섭 그림의 원천이 우리의 청자상감의 그림에 있었다는 점을 지나쳐 가기 어려웠다. 1966년 석가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나왔던 ‘무구정광다라니경’도 관심을 끌었는데 여기서 한국적 서체의 고대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한국 고유의 서체는 압도적으로 중국필법의 영향을 받았고 이로 인해 그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천오부인 86세 초상’도 선이나 색감 그리고 표정이 생동감을 주었다. 250여년 전 한국 여성의 사실적인 초상화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유명한 청자나 금으로 만든 왕관 못지않게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삶이 묻어나는 유물들이 우리들의 영감을 실제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세기 한국은 식민지시대를 경험했고 그런 까닭에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고 밖에서 역사적 난관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고자 했다. 역사의 단절을 극단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21세기에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한국은 언제나 남을 뒤쫓는 문화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선인들의 창조적 지혜를 배워 여기에 첨단 기술을 응용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다. 최근 외국 대사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관람하는 장면을 지면에서 보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분명히 다른 예술적 형상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기서 오늘날 한국의 디지털적 탈근대 첨단산업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와는 다른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박물관에 가 보라. 거기에 있는 과거의 유산이 죽어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찬란한 문화적 명품이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오늘은 물론 내일의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울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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