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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사건’ 시리즈

이광형


잊을 만하면 또 터져 나온다. “지겹다. 이젠 그만 좀 했으면….” 한숨이 여기저기서 절로 나온다. 미술계를 강타한 사건들 얘기다.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이 불거진 이후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중섭 위작 사건에 이은 박수근 ‘빨래터’ 진위 공방, 삼성 비자금 의혹을 불러일으킨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파동, 국세청 그림로비 의혹으로 번진 최욱경의 ‘학동마을’까지.

미술계의 불미스러운 사건은 왜 자꾸 일어나는가. 신정아 사건은 큐레이터의 역할과 사립 미술관 전시의 기업체 협찬 문제를 넘어 예술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드러냈다. 국내 큐레이터는 대부분 월급도 변변찮고 근무 조건 또한 열악하다. 좋은 전시 기획보다는 기업 협찬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힘 있고 돈줄 있는 권력의 도움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은 작품 소장 경위가 뚜렷하지 않고 감정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 미술계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소장자 또는 출품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이 미술품 판매 원칙이기는 하나 만연한 비밀주의 거래도 위작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국내 콜렉터 중에는 브래드 피트나 엘튼 존처럼 그림 구입 사실과 가격을 떳떳이 밝히는 이는 별로 없다.

진위 논란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도 있었다. 작가는 “어미가 자식도 몰라보겠느냐”며 가짜라고 주장하고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고 주장하며 결국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이다. 1억이냐 10억이냐며 가격 논란을 빚고 있는 전남 강진군의 고려청자도 팽팽하게 맞선 양측의 감정싸움에 이어 법정 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양측 주장의 명백한 증거자료가 없어 결론은 미지수다. ‘행복한 눈물’ 사건은 기업의 비자금과 미술품의 커넥션을 들여다보게 했다. 180억원에 구입한 작품이 300억원으로 올랐으니 크게 생각하면 국가적 이익을 남긴 셈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삼성 비자금으로 작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다시 ‘미술품 구입 자금=검은돈’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인식시켰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은 2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이고.

‘학동마을’ 사건은 그림 로비의 실체가 파헤쳐질지 관심의 대상이다. 그림은 구입 시 일정 부분 면세 혜택이 있는 데다 거래의 비밀이 지켜지고 예술 향유의 의미까지 보태져 오래 전부터 로비용 품목으로 활용됐다. 오죽했으면 2007년 인기를 끈 MBC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도 병원 간부가 청탁을 위해 병원장에게 운보 김기창의 그림을 상납하는 장면이 방송됐을까. 문제는 선물이든 뇌물이든 이런 사건들이 터지면서 미술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미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은 물론 그림을 구입한 인사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마당에 누가 그림을 선뜻 사려고 하겠는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 탓도 있겠지만 요즘 미술시장은 호황을 이루던 2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전시를 해도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고 다들 하소연이다.

그렇다고 울상만 짓고 있을 일은 아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미술품은 높은 가격으로 인해 특권층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이는 미술계의 비밀주의를 관행처럼 뿌리내리게 하고, 건전하지 못한 미술계 구조를 낳게 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뼈를 깎는 자성이 필요하다. 정말 변하지 않으면 사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 국민일보 200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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