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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엔 문화가 없나?

허엽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 연설문을 일일이 열어보면서 기대를 했지만 실망이 앞섰다. 경기회복과 서민경제, 녹색성장을 이끌어온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문화’가 없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이번에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취임 연설부터 31회의 라디오·인터넷 연설, 올해 신년연설을 봤는데 문화관(觀)을 보인 것은 두 차례다. 대통령은 취임 때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간다. 문화로 화합하고 문화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1년이 넘게 지난 작년 문화의 달(10월)에 라디오 연설 한 회를 문화에 할애했다. 여기서 대통령은 “제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도 소득만 높은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문화수준을 가진 문화국가를 만드는 것”이라며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넓히고 지역 간 계층 간 문화향유의 불균형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 지난해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 축사, ‘사천왕사 왔소 2009’ 축하 메시지 등 행사와 관련한 짧은 연설이 전부였다. 취임 첫해인 2008년에는 ‘문화의 날’ 축사 외에 문화를 다룬 대목을 찾기 어려웠다. 특이한 점은 해외 수반 초청 국빈 만찬사에서는 대통령이 꼭 문화에 방점을 둔다는 것이다. “불가리아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문화대국”.

대통령의 연설에서 ‘문화’를 보려는 이유는 그것이 품격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지난해 라디오 연설에서 “선진국 정상들은 회담장에도 책을 가지고 들어와 휴식 시간이 되면 읽는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러한 모습에서 드러난다”며 “기업인 시절, 러시아에서 여러 계층이 공연을 즐기는 것을 보고 ‘이 나라가 지금 힘들지만 이러한 문화적 저력으로 언젠가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런 문화관이 정확하지만, 문제는 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문화국가 이미지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는 실체에 비해 대외 이미지가 미흡한 반면 경제와 기술력의 이미지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 부재’의 대표적 사례가 세종시다. 그동안의 논의를 보면 이 도시에 ‘문화 예술이 숨쉰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역사의 최고 문화군주인 세종의 이름을 땄다는 게 무색할 정도다. 세종시를 비롯해 녹색성장, 4대강 정비, 경제회복, 교육문제가 문화보다 급한 국정과제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제의 지향점이 격조 높은 선진일류국가와 ‘더 큰 대한민국’이라면 그 궁극의 방안들은 문화로 익어야 한다는 말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파리의 술집과 빈민촌을 문화예술 중심지로 바꾼 퐁피두센터, 몰락한 공업도시를 세계적인 명소로 바꾼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문화가 도시 주민의 의식과 브랜드 가치를 높인 사례가 많다.

대통령은 지난해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한 뒤 경제회복전쟁의 지휘관으로 나섰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와 원전 수주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시행하는 정책과 사업은 대통령의 문화 철학을 반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으로만 각인된다면 우리의 브랜드 가치도 그곳에서 멈출 것 같다.

대통령은 비즈니스보다 문화를 먼저 묻는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놀란 적이 많다고 했다. 그들처럼 대통령도 책을 읽거나 소극장 연극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가끔 보여줬으면 한다. 문화도 경제처럼 일상이기 때문이다.

- 2010. 01. 11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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