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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장식은 범죄다

반이정

“떨어뜨리면 마음이 아플 것 같은 휴대폰은 난생 처음이에요.”

지인이 들려준 아이폰 사용기다. 최상의 인터페이스가 구현되고 절제된 디자인. 애플 열성 추종자가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은 여기서 온다. 그저 기능과 서비스만 중시한다면 오로지 아이폰일 까닭은 없으리. 경쟁사들이 추월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보단 애플의 미학에 있다. 군더더기의 제거. 애플의 전통은 출시된 전 제품군을 보나, 매해 맥월드에서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간결한 프레젠테이션을 보나 한결같다. 잡스는 왕왕 앙숙관계인 마이크로 소프트(MS)에 대해 ‘너무 복잡하다’며 야유해 왔다.

장식 최소화라는 미적 태도는 애플과 아이폰만의 것은 아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과거에는 장식품이 고가였고 단순한 물품은 저렴했지만 오늘날엔 상황이 역전되었다며, 단순함이 우리 시대의 진리라고 치켜세웠다. 이보다 훨씬 과격한 주장도 있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미개인의 장식 문화에 빗대, 현대인의 장식 선호를 변태적 취미이자 ‘범죄’라고 낙인찍었다. 우리는 주변에서 제품의 등급이나 인물의 지위 따위가 높아감에 따라 외관이 단순화되는 걸 쉽게 목격한다. 절제미를 통해 고상한 품격이 보장되는 시각문화의 언약이 분명 존재한다.

‘복잡성을 증가시킨 좋은 기술’에 관해선 들어본 바 없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사실도 양립한다. 순백 멸균실을 떠올리는 모노톤 아이폰 매장 내부에, 깔끔한 본체를 ‘장식하는’ 액세서리 코너가 절찬리에 가동 중이란 점. 고도의 기술력으로 본체에서 애써 몰아낸 장식을 구매자의 요구로 다시 덧붙이는 형국이랄까. 고작 한 장에 2만~3만원 하는 보호필름부터 늘씬한 아이폰 몸매를 은폐하고 통통하게 살찌우는 실리콘 케이스까지 즐비하다. 온라인 매장의 생태계는 훨씬 복잡하다. 120만원대 루이뷔통 아이폰 케이스도 팔리고, 필자가 찾아낸 최고가 케이스는 다이아몬드 200개가 박힌 18K 도금 제품으로 무려 1억원대!

수년 전 당시로선 꽤 초박형인 레이저폰을 모토로라가 출시했을 때 상황도 비슷했다. 이용자들은 두툼한 투명 하드케이스로 레이저폰을 ‘보호’했다. 이 때문에 일반폰에 비해 더 두툼해졌고, 투명케이스에 자꾸 생기는 흠집이 본체의 차가운 금속성 매혹을 가려버렸다. 하긴 휴대폰 액세서리 시장의 형성 배경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보호와 장식 아닌가. 하지만 이런 수요의 배경은 타당할까. 본말의 전도는 아닐까. 먼저 장식. 아이폰과 레이저폰에서 보듯 케이스는 각 제품의 강점(단순미와 날렵함)을 결국 훼손하고야 만다. 기능과 형태를 최상으로 결합시킨 기술력과 디자인의 성취를 돈 들여 거스른 꼴이다. 다음은 보호. 작심하고 벽에 투척하지 않는 한, 휴대폰 파손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심려의 근원은 흠집일 터. 그리 애지중지한 휴대폰,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 텐가? 순환속도가 빠른 정보기술(IT) 제품은 몇 달 안에 기능, 디자인 모두에서 구형으로 분류될 운명.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하자. 약정 기간 끝나기도 전에 당신은 또 다른 신형 앞에 무릎 꿇을 텐데! (멀쩡한 하천에 ‘보호와 장식’ 내세워 토목사업 강행하는 게 어느 개인의 독특한 장식 욕망이듯, 후대는 작금의 과도한 장식 유행을 불필요했노라고 평가할 소지가 높다.) 개인들의 취향이니 말릴 도리는 없지만, 원래의 미관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세월의 흠집마저 포용하는 자세가 지혜롭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가 쓰는 아이폰, 보호필름이나 케이스 했을까? ‘아니다’에 100만원쯤 건다.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11173228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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