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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윤재석] 디자인보다 내러티브를

윤재석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곳곳에 오롯이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확대재생산된다”

‘서울’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다양하다. 북한 용마 관악 덕양 등 외사산(外四山)과 북악 낙산 남산 인왕 등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장미꽃 형상의 포근한 지형. ‘거대한 어항’이라는 비아냥이 없지 않지만 이제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즐겨 찾는 명소가 된 청계천과 바다처럼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 그리고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활기찬 역동성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흔적을 오롯이 담은 공간도 빼놓을 수 없다. 경복 창덕 덕수(경운) 창경 경희 등 5궁과 종묘 등 도심 곳곳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조선왕조 500년 도읍의 웅혼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충족하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군데군데 끊어지긴 했지만, 총 연장 17㎞의 한양(漢陽) 성곽과 도처에 남아 있는 갖가지 유적까지.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일제 강점이 남긴 흔적 역시 암울함속에서 잿빛 로망을 꿈꿨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들이다. 르네상스 양식인 옛 서울역사와 한국은행 본관, 34년 만인 작년 6월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 미쓰코시(三越)백화점 경성지점 자리였던 신세계백화점 본점, 독립투사를 고문하거나 처형했던 곳으로 악명 높았던 서대문형무소터 등.

뿐인가! 해방공간과 6·25전쟁 기간 이북에서 내려온 이들이 조성한 해방촌을 비롯, 개발연대 찌든 가난을 벗고자 각처에서 모여든 이들의 둥지였던 산비탈 달동네와 1980년대 강남 개발 붐을 타고 들어서기 시작해 이젠 주거공간의 주류로 등장한 고층 아파트군(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서울의 다양성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풍경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풍경은 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세계인들을 서울로 끌어들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가 올 초 선정한 ‘2010년 가볼 만한 곳’ 31개 도시 중 서울을 3위로 꼽은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물론 어떤 풍경들은 1000만명이 거주하는 메가시티, 서울의 명성에 흠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가 시 당국은 서울을 새로 디자인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다.

건조한 고층 아파트군 일색인 한강변에 변화를 주기 위해 뚝섬, 반포, 여의도, 난지 등 4대 수변을 멋진 공원으로 꾸미고 있는가 하면 용산 등 한강 인근의 슬럼을 고층 주상복합 지역으로 바꾸는 등 디자인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다.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조성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디자인 일변도의 탈바꿈(metamorphosis)이 과연 서울의 매력과 경쟁력을 높여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서울을 찾은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충고에서 해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옌센은 서울의 미래를 위한 제언에서 “서울의 모습이 아닌 서울의 이야기를 팔라”고 주문했다. 서울에 숨어 있는, 세계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발굴해야 관광객이 모인다는 것이다. 관광객뿐이랴! 시민들 역시 서울의 현란한 겉모습보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서울을 호흡하고 또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서울이 어느 선진도시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해진 건 사실이다. 특히 최근엔 자고나면 달라지는 풍경에 어리둥절해질 정도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라지는 만큼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또한 스러져가는 게 현실이다.

최근 서울시가 소단위 맞춤형 재개발을 위해 우선 종로구 공평동과 중구 퇴계로 일대에 대한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싹쓸이식 재개발을 지양하고 문화와 역사를 살리는 쪽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처마 낮은 가옥들, 그리고 골목길을 오가던 이들의 따뜻한 사연들. 이제부터라도 이를 복원하는 데 힘을 기울이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대한민국 대표도시, 서울의 경쟁력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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