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문화와 세상]유인촌 장관과 자전거 문화

반이정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미술평론가 직함을 내세우지만 자전거광으로 약간 알려진 편이다. 자전거 일곱대를 집안에 주차 중인 내게, 아는 미술인이 “자전거계에서 미술계로 귀환하시오”라며 익살맞게 충고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현 정부와 내가 유일하게 코드가 통하는(!) 지점이랄까. 정부의 자전거 정책은 (4대강 사업과의 무리한 연계 꼼수를 빼면) 진정성과 열의에서 평가받을 부분이 적지 않다. 자전거의 생김새처럼 자전거 정책도 두 바퀴가 조화될 때 제대로 구른다. 기술 혁신과 하부구조 구축이 앞바퀴라면 자전거 문화와 철학의 전파가 뒷바퀴에 해당한다. 종래에는 두 바퀴 모두 부실했지만 한강 자전거도로 정비를 필두로 공공 자전거 시스템과 자전거공원 계획까지 부실한 하부구조를 승격시키는 중이다.

국내 브랜드 개발도 속도를 낸다. 이런 성과는 어쨌건 앞바퀴, 즉 기술력이나 하부구조를 세우는 공정이다. 반면 내가 자전거 문화와 철학이라 추앙하는 가치는 더디거나 아예 소홀히 취급된다. 인간 동력의 미학과 생태적 효용을 일선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면 어떨까. 도로에서 자전거를 수시로 무시하는 차량 운전자 교육도 시급하다. 서유럽처럼 차량과 자전거가 도로 위에서 공존하도록 유도하는 게 장기적인 자전거 정책이다. 우리의 자전거 문화권이 여전히 한강을 사이로 도심을 세로줄로 잇기보다는, 차량과 격리된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가로줄을 형성하도록 구조화한 것도, 자전거를 생활이 아닌 레저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하부구조가 탄탄해도 유행이 꺼지면 자전거는 언제든 방치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 포석은 문화와 철학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지난달 말 7㎏대의 접이식 자전거가 국내 산·학·연 협동으로 개발되었다. 지식경제부의 국산 자전거 기술개발사업의 성과다. 일반 자전거 중량과의 비교우위를 내세웠지만 자전거 카페의 마니아들 평가는 싸늘하다. 시장조사 자체가 부실했거나 7㎏이라는 가시적 성과에 조바심을 낸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변속기능이 없고 엉성하게 접히는 16인치 자전거. 거기에 신생 브랜드다. 이 바닥 정서나 문화를 이해했다면 예상 가격 300만원은 어불성설이다.

유인촌 장관이라는 인물도 자전거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게 만든다(어째서?). 자전거광인 그가 부임 초기 자전거 출퇴근을 시연하고 200만원대 고가 브랜드를 타는 걸 두고, 괜히 쇼를 한다고 비꼬거나 서민경제를 고려할 때 사치품이라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런 비난 정서가 이해는 되지만 ‘쪼잔’하다. 서민적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저가형 생활자전거를 몬다면 그게 더 쇼 아닌가? 국무위원 가운데 재산 1위(121억원)인 장관이 수입 수준에 맞게 취미를 누릴 권한도 있다. 유 장관을 자전거 문화와 관련해 주시할 만한 이유는 오히려 끊임없이 반문화적인 그의 언행에 있다(지면이 넘쳐 열거하진 않는다). 인간동력 추종자가 모조리 생태적 이타적 그리고 문화적 인사일 순 없다. 자전거 주행의 자기몰입이 라이더를 난폭하게 변모시킬 때도 실로 많다. 그렇지만 그의 신분이 일국의 문화계 수장일 때는 얘기가 많이 다르다. 자전거의 문화적 품격을 ‘상징적으로’ 깎아내릴 수 있다. 혹은 철학이 부재한 자전거 정책의 귀결을 의인화로 경고한 듯하다면 과장일까. 4월1일 유인촌 장관의 전격 사임 보도가 떴다. 만우절 해프닝이었다.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왜들 자기를 못살게 구는지. 평속보다 느리게 자전거를 몰며 민심 이반의 원인을 자문하시길 권한다. 조롱 아닌 진심이다.

-2010.04.06 경향신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