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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성혜영

일본 세토(瀨戶) 내해의 섬 나오시마(直島)에 다녀왔다.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몇 개까지 세었을까.

다카마츠를 떠난 페리가 내 마음만큼이나 흥분했던 하얀 포말을 서서히 거두어들일 무렵, 거대하고 새빨간, 벌레 먹은(?) 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부둣가의 호박이라…. 낯선 동화 속 풍경처럼 나오시마는 다가왔다.

이 섬은 ‘예술의 낙원’이라고도 불린다. 한때 구리 제련소가 있었으나 버려진 섬으로 시간이 멈춘 지 오랜 이곳이 베네세 그룹의 후원과 거장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청소년캠프장을 필두로 근년에는 미술관과 호텔이 들어섰고, 자연과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고 실험하는 장으로서 예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추(地中)’미술관. 이름 그대로 땅속 미술관은 바다를 한눈에 굽어보는 언덕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다. 도발적이고 무례하기보다는 자연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빌린 겸손한 자세다. 이 집의 행복한 주인은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데 마리아 세 작가의 작품 단 아홉 점. 모네의 ‘수련’을 비롯해 모두 자연, 특히 빛을 존중하는 작품들이다.

‘베네세하우스’는 그 자연과 예술에 인간을 더하여 행복한 삼각관계를 모색한다고나 할까. 미술관 같은 호텔, 호텔 같은 미술관을 통해 삶과 예술의 공생을 도모한다. 선창의 노란 호박, 해안가의 난파된 배, 산정의 찻잔 등 미술관 밖의, 오직 그곳만을 위한 작품(site-specific work)들과의 조우는 예기치 않았던 또 다른 선물이다.

그러나 나오시마를 정말 특별하게 하는 것은 마을의 빈 집들을 독특한 미술관으로 되살려낸 ‘집 프로젝트’다. ‘모퉁이 집’ ‘치과’ ‘바둑 두는 집’ 등의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집의 역사와 기억이 중추가 되는 이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에 대한 일종의 헌사이기도 하다.

지난 기억과 일상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신이 나고, 기꺼이 현대 미술을 위한 꽃 한 송이, 벽돌 한 장이 된다. 자칫 ‘그들만의 잔치’에 안방을 내줄 수도 있었을 위기를 극복한 예술은 더욱 아름답다.

한낱 꿈이었을까? 나오시마에서의 1박2일은 행복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 멀었다. 또 페리에서 뱃멀미에 시달리고,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예술이란, 이게 현실일까 싶은 단 1%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단 1%의 사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상으로 돌아온 내게 예술은 다시금 덧없고 낙원은 아득했다.

그런데 15일, 이우환 미술관이 그곳에 문을 연단다. 머지않아 인근의 테시마(豊島), 이누지마(犬島)의 예술 프로젝트와 연계해 바다축제도 열린단다. 생각하니 또 가슴이 뛴다. 기억 속에 있던 그 빛과 바람과 물, 아름다운 사람들이 기어이 나를 부추긴다. 낙원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시 꿈꾸게 하는 힘, 그게 예술이 아닐까. 그 섬에 가고 싶다.

-2010.06.11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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