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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박물관의 그늘

이강원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공짜'는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가졌던 감사한 마음은 사라지고 당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우리의 간사한 마음이다.

국·공립박물관의 무료화 정책이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무료화는 시한을 뛰어넘어 올해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 정책이 처음 시행되던 2년 전만 해도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즐기는 달콤함이 어느새 국민 정서에 깊이 배어들어 '박물관은 무료로 관람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민의 문화 향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더욱이 평소에 문화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서민을 위해서 문화시설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그러나 박물관 무료화 정책은 보안문제와 유물 소홀히 대하기 등 관람문화 저하와 사립박물관에 대한 피해가 적지 않아서 문화선진국들도 쉽게 도입하지 못하는 제도다. 무엇보다 무료인 입장료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기에 영국과 중국,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만이 시행하고 있다.

우리의 박물관 문화는 지난 2004년 박물관 올림픽인 ICOM(세계박물관위원회) 세계대회 개최를 기점으로 커다란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체 박물관의 절반에 이르는 사립박물관의 존재다.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오늘의 괄목할 만한 박물관 문화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도 하기 힘든 유물 수집과 박물관 건립이라는 긴 과정을 열정 하나에 매달려 묵묵히 걸어온 우인(愚人)들이 사립박물관의 주인이다.

국·공립박물관 무료화의 직격탄이 이미 만성 적자운영의 늪에 빠져 있는 사립박물관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많은 관람객이 '궁전처럼 큰 국립박물관도 무료인데 조그만 사립박물관에서 왜 입장료를 받습니까?'라며 돌아나가곤 한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는 국립과 달리 입장료는 사립박물관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립박물관장들의 한결같은 꿈은 수익창출은 아니더라도 운영 걱정 없이 오랫동안 공들여 모은 유물을 맘껏 대중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적절한 대책이 전제되지 않은 무료화 정책은 서민의 문화욕구를 미지근하게 데워줄지 몰라도 문화의 한 축인 사립박물관을 서서히 붕괴시키는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무료화 정책을 지속하려는 것이 정부의 의지라면 이 제도를 양지로 끌어내어 양성적인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심도 있는 점검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와 교육의 사회간접 자본인 사립박물관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과 심화되는 운영난 타개를 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이 무료화 정책을 박물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해 내는 계기로 삼는다면 단기적인 문화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좀 더 내실을 기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받고 사립박물관은 국가가 할 수 없는 관람문화의 실핏줄의 역할을 수행하는 윈윈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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