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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잡탕' 이우환과 '건달' 백남준이 보여준 것

김태익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이 생전에 화가 이우환을 보고 '얌체'라고 했다는 말을 최근 들었다. 서울에 왔을 때 어느 화랑에서 이우환 그림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이우환의 그림은 어렵기로 이름 높다. 커다란 캔버스 가운데 찍힌 붓자국 하나, 녹슨 철판을 사이에 두고 놓인 돌 두 개….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우환의 작품들은 생존 한국 미술가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싸다.

이우환은 백남준을 '칠칠치 못한 건달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도끼로 피아노를 때려 부수거나, 미인에게 첼로 아닌 텔레비전을 안겨 연주하게 하거나, 브라운관을 뜯어낸 텔레비전에 촛불을 밝히거나…. 어느 것을 보아도 바이크(백남준)가 하고 있는 것은 예술인지 장난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백남준과 이우환이 '건달'이고 '얌체'이기만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예술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며칠 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며 이우환이 했다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구겐하임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이고 이우환은 이곳에서 한국 작가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작가로는 세 번째로 전시를 열었다. 이우환은 '내게 한국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곤혹스럽다. 인정받는 작가라면 한국에 앞서 내 작품을 먼저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한국적인가가 아니라 왜 훌륭한가를 설명해야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남준과 이우환은 1950년대 일본으로 가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이래 50년 넘게 유럽과 미국으로 옮겨다니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두 사람은 작품의 내용도 철학도 다르지만 놀랍도록 일치하는 게 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예술가로서의 소신이다.

이우환은 2년 전 서울에서 조각전을 열면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의 작품에서 일본 냄새가 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민족주의자도 사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이우환일 뿐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살았고 일본서도 살았고 프랑스에서도 살았다. 나는 잡탕이다. 잡탕인 나를 두고 일본식이라고 욕하지 말라.'

이런 얘기는 백남준도 한 적이 있다. '한국성? 나는 일부러 아시아적이라거나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려고 한 적이 없다. 그런 의도로 제작한 예술은 성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속물일 뿐이다.'

백남준과 이우환이 젊었던 시절 한국이란 나라는 존재도 미미했고 그 문화 역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알리는 길은 남들이 안 하는 작업을 하거나 경쟁해 1등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의 싸움, 세계와의 싸움, 외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향한 고국의 통념(通念)과의 싸움…. 자기 온몸을 던져 그 외롭고 힘든 3중 4중의 싸움을 견뎌냈기에 오늘의 백남준도 있고 이우환도 있다.

엊그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5명이나 입상했다. 세계를 내 집 마당처럼 알고 활약을 펼치는 그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음악에서도 일찍이 세계에 나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정상을 놓고 자기를 채찍질했던 앞세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는 것이다. 예술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편적 최고'를 향한 경쟁의 세계가 있다. 나라 안에서건 밖에서건 그 고독하고 눈물겨운 싸움을 멈춰선 안 된다.

- 조선일보 2011.7.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4/2011070401947.html<- 조선일보 20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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