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읽고

조윤선

그림으로 역사와 대화하다
-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읽고

늘 시간에 쫒기는 나는 긴 호흡으로 책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이삼십분에 한 챕터를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손에 잡았던 것 같다. 내 손이 닿을 만한 곳, 이를 테면 침대옆, 마루 테이블, 식탁, 자동차, 사무실 책상등등에 이르기 까지 진도가 달팽이 걸음처럼만 나가는 책들이 여러 권 널려있다. 최근에 가장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었던 기억은 건강검진하기 전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장을 비우는 약을 시간 마다 맞춰 먹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녁 나절 너댓시간동안 후배 의사가 쓴 ‘가운을 벗자’를 읽은 거였다.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게되면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너댓시간은 책을 읽을 수 있어 어떤 책을 가지고 갈지 늘 고민이 되면서도 설렌다. 이번 프랑스 출장때에도 서평을 보고 꼭 읽고 싶었던 책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충렬 저)’을 챙겨왔다. 회의 자료로 봐야 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이나 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지고 왔던 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한 순간, 나는 내가 보물을 찾았구나 싶었다. 단 숨에 다 읽은 것은 물론, 책을 끝내고도 아직 비행시간이 한 두시간 남아 빈 접시에 젓가락 휘젓듯 읽었던 책을 다시 여기저기 펼쳐보곤 했다.

나는 학창시절 역사 과목은 암기과목이라고 여겼다. 역사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역사 과목은 늘 부담이 되었고 점수도 별로였다. 그도 그럴것이 다른 과목들은 교과서만이 아닌 다른 책을 읽기도 했지만, 역사에 흥미가 없던 나는 교과서 이외의 역사서를 읽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 대학교 입학 학력고사에서 국사 세계사 과목 점수가 제일 많이 깎였던 것은 물론, 하필이면 사법시험에까지도 국사와 세계사가 필수로 되어 있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역사과목이 날 참 끈질기게도 괴롭히는구나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사 공부라고까지 할 수 없는 수준의 단편적인 역사 지식을 갖기만 해도 역사 속 어느 때엔가는 반드시 현재 상황의 판박이 같은 상황은 늘 있었고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 역시 대부분이 역사속에 있다는 걸 보게 되었다. 늘 역사가 고팠지만,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몰랐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은 개항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우리 근대사를 풀어내면서 그에 대한 그림을 함께 엮어낸 책이다. 김홍도나 신윤복 같이 사회상을 그대로 그린 풍속화의 맥이 끊겨 한국 작가의 작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외국 화가의 그림을 소개했다. 휴버트 보스, 엘리자베스 키스, 릴리언 밀러등, 당시 오지를 탐험하며 풍속과 풍광을 그렸던 화가들에게 한국은 새롭게 알려진 은둔의 나라였다.

서양미술사를 보면서 화가의 눈은 정말 정확하다는 걸 실감했다. 우리의 근대의 모습을 그렸던 화가의 그림으로부터 다시 한번 화가의 눈은 예리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림과 함께 소개한 짧은 글에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행인의 모습을 그리면서는 ‘유령처럼 흰옷을 입고 꿈속에서처럼 아무 말 없이 걸어다닌다’고 묘사한 ‘서울 풍경’에서부터 속수무책으로 일본의 강점을 막아내지 못했던 고종의 피로하고 지친 모습의 어진에 이르기 까지. 이들이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이들이 그린 인물이나 사회 상황을 어찌 그리 정확히 파악했는지 놀랍다. 이들의 그림에선 하나같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온다.

그 동안 그림이나 삽화, 신문등 시각적 자료를 사용해 역사를 설명한 책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과 화가가 그림 사이에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린 시간과 연유, 공간을 함께 엮어 역사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역사적 순간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를 넣으면서 비로소 과거의 박제가 아닌 현재와 대화하는 진정한 역사의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한국과 외국의 신문기사까지 추적해 마치 탐정이 되어 미제사건을 풀어나가는 듯한 재미까지 주고 있다.

엘리코 카루소, 마리아 칼라스 같은 전설의 서양 가수들이나 갔을 줄로만 알았던 남미에까지 최승희도 공연 여행을 갔었다. 공연 소감을 써서 보낸 글이 국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월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에서 활동하게 된 최승희를 그린 재 러시아 화가 변월용가 그린 ‘공훈 무용가 최승희’를 보면, 배경으로 두룬 휘장하며, 의상과 배경의 배색하며, 의상 장식의 표현, 의상의 질감을 표현한 방법까지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와 너무도 흡사한 분위기가 난다. (책 234면의 그림과 존 싱어 사전트의 여인 전신 그림 비교)
민상호와 고종, 덕혜옹주등의 그림에는 망국의 설움이, 최승희와 홍명희, 피난 시절의 학교와 행상의 그림에서는 분단의 아픔이 스며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라고 했던 E.H.Carr의 말과 달리 나는 역사는 박제된 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랬던 나에게 역사란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대상임을 깨닫게 해준 그림과 화가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 아츠앤컬처 2011. 7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