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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이순신 동상 앞을 지나며

김인숙(김테레사)

요즘 광화문광장은 넓다.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잔뜩 들여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대왕 동상이다. 요즘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듯 세종대왕이야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위대한 임금이다. 그렇다고 이미 이순신 장군이 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곳에 뒤늦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세종은 세종대로 기념하는 방식이 따로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광장의 주인공은 하나의 콘셉트로 가는 게 적절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충무공이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세종로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바로 그게 절묘한 이야기다. 거리의 이름은 성군, 지키는 사람은 성웅의 조합이 얼마나 멋있느냐고. 패러독스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이다.

광화문 일대의 또 다른 변화는 서슬 퍼런 권력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권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곳에서 늘 경찰과 시위대가 만나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와 중앙청이 가까이 있긴 했지만 그곳에는 극장이 있어 젊은이들이 몰렸고, 언론사가 많아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버버리코트 깃을 올린 채 길을 걷던 낭만의 공간이었다.

언젠가 조각가 김세중 교수, 평론가 임영방씨를 함께 만난 적이 있다. 김 교수가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막 완성해 세워 놓고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 예술가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꿈꾸기 어려운 자가용을 운전하며 파리에서 갓 귀국한 임씨에게 동상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우리 일행이 김 교수의 퍼블리카를 타고 동상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임씨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교수님, 지금 이순신 장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김 교수는 항상 진지한 분이라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임씨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장군님은 지금 국제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상영하고 있나 생각 중이십니다.” 조그만 차 안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광화문네거리는 지금처럼 위압적이지 않았다. 주위의 빌딩도 그렇게 높지 않아 동상이 비례적으로 우뚝하니 높은 시선을 차지하고 있었다. 국제극장은 동상의 바른편 쪽으로 납작하니 엎드려 있었으므로 동상 위 장군의 시선이 극장 간판 위로 지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국제극장은 지금 동화면세점 빌딩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하다. 막 솟기 시작한 나라의 기운, 동상을 세울 수 있는 사회의 여유, 동상을 만든 작가의 차로 동상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상황이 그런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환경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훨씬 좁아진 것 같다. 도심에서 농담하고 웃을 수 있는 환경이 좋고 아름다운 것이다.

-국민일보 2011.12.5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61852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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