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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한태]뉴욕 애플스토어 ‘유리 큐브’에 왜 열광하나

유한태

“스티브가 살아서 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5개월간의 공사 끝에 최근 모습을 드러낸 미국 뉴욕의 애플스토어에 세계인은 왜 열광할까. 인생 전성기에 병상에서 숨진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애정을 갖고 직접 디자인해 세세한 것까지 관여한 이 유리 큐브는 무엇보다도 ‘단순함(simplicity)’의 매력이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가로와 세로, 높이 9.8m의 정방형 입방체(cube)인 이 작디작은 구조물의 형태는 원래 있던 것과 같은 정육면체의 유리판 구조이지만 유리 패널의 수와 크기만 달라졌다. 얼핏 봐선 그대로인 겉모습인데도 무려 74억 원의 큰돈을 쏟아 부은 잡스의 집념은 상식적으로는 ‘무모한 실험’ 같아도 오랜 예술적 내공과 끈질긴 인문적 교양의 예술철학이 그대로 집약된 결정판이다.

한마디로 ‘모습은 그대로, 발상은 완전 딴판’이다. 예상과 달리 내부는 변함이 없고 외부 마감재 유리 크기만 바뀌었는데도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는 까닭은 유리라는 물성(物性)보다는 잡스의 예술적 혼과 인문적 정신을 직접 오감으로 체험해 보고 싶은 잡스 팬들의 눈 밝은 호기심이 그 원동력이다. 물론 잡스의 인생을 추모하는 열기도 뜨거웠겠지만 ‘몸의 눈’으로 보이는 유리보다는 맑고 밝은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하는 잡스의 완벽을 지향한 예술 의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작용한 듯싶다.

같은 면적에 작은 유리판 90개가 큰 유리판 15개로 바뀐 것이 고작이지만 잡스의 단순성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는 현장이 돼 버렸다. 하나마나 한 것 같은 싱거운(?) 리모델링 한 달 전에 숨진 잡스의 원래 디자인은 한 면에 유리 3장이 아니라 한 면에 통유리 1장씩 쓰는 유리 큐브였다고 한다. 아마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모든 면이 단 1장으로 된 유리 큐브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음매 없는 기술 혁신과 불굴의 실험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잡스였기 때문이다.

잡스 상상력의 뿌리와 창조성의 원천이 동양의 인문적 교양이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소즉득, 다즉혹(少則得, 多則惑)’이란 구절이 있다. 적으면 얻고, 많으면 어지럽다는 뜻이다. 많을수록 잃고, 적을수록 휘둘리지 않는다고 거꾸로 풀이하면 의미가 더욱 명징하다. 천하의 모든 이치는 태극처럼 단순하고 쉽다. 중국의 열자(列子)도 ‘길이 많으면 양을 잃는다(다기망양·多岐亡羊)’고 했다. 정보의 양(量)이 많을수록 메시지의 질은 약해지는 ‘정보 질량 불변의 법칙’이다.

세상 만물은 자연이 만든 천연(天然)이거나 사람이 만든 디자인의 인공(人工)이다. 진정한 잡스의 유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뉴욕 애플스토어 유리 큐브는 작은 디자인 하나도 창의적 개인의 독특한 예술철학에 따라서는 세계인의 명소가 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 뛰어난 자연 경관만 세계적 관광명소는 아니다. 잡스는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을 절묘하게 결합한 ‘아트놀로지(artnology)’의 새로운 경지를 유리 큐브를 통해 세계인 모두에게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여줬다.
오로지 ‘단순함’이라는 무언의 시각 표현 하나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뉴욕 환경을 배경으로 더욱 돋보이게 하는 대비(對比) 효과는 오히려 매력의 원천이 됐다. 그래서 훨씬 더 돋보이는 대비(contrast) 효과는 차라리 덤으로 볼 수 있다. 작은 공간을 단순함의 큰 의미로 바꾼 잡스에겐 진정한 디자인이 ‘더하기의 장식(ornament)’이 아니라 유리판의 이음매조차 용납하지 않는 ‘빼기의 단순함’이었다. 세상이 워낙 혼란한 탓에 어지러움에 군더더기를 빼고 간명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부터가 작아 보여도 크나큰 사회적 예술적 공헌이 아닐까.

-동아일보 2011.12.6
http://news.donga.com/3/all/20111206/42390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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