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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서울역 엘레지

유인화

현존하는 국내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청춘의 십자로>(1934년)에서 서울(경성)역은 ‘사람’이 담긴 운명적 공간이다. 경성역에서 수화물 운반부로 일하는 영복, 오빠를 찾아 상경하지만 카페 여급이 되어버린 영옥 등 주인공의 애절함이 배어 있다. 떠남과 도착이 공존하는 서울역은 다양한 만남과 유혹이 이뤄지는 욕망의 장소로 정의됐다.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영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년)에도 서울역이 나온다. 여주인공 소영과 살인을 저지른 여성이 서울역을 중심으로 각각 방향을 달리해 걷는 장면은 두 여성의 운명이 상반되게 펼쳐짐을 암시한다. 유현목 감독의 <잃어버린 청춘>(1957년>에선 살인범 최무룡이 서울역에서 만난 애인 이경희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일제강점기의 남대문역(서울역)은 1919년 65세의 강우규 의사가 일본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져 살해하려다 실패한 비운의 장소였다. 해방 후에는 명절을 맞은 산업화 역군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설렘의 공간이었고, 민주화운동의 함성이 문신된 ‘광장’이었다.

1925년 건립된 서울역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역’이 아니었다. 기차 타고 서울에 첫발을 내디디는 사람들의 희망과 다짐이 담긴 꿈의 샘물이었다. 그러나 불량배를 만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무정한 장소이기도 했다. 노숙인들이 잠자리로 삼은 서울역은 긴 여정과 그 종착이 주는 들뜸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복합지대였다. 서울역은 ‘역’의 상징적 뜻보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입구의 의미로 다가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일 옛 서울역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 284’를 공식 개관했다. 사적 284호를 기념해 이름 붙인 ‘문화역서울 284’는 2004년 서울역사가 새로 건축되면서 방치돼오다 지난해 8월 복원됐다. 공식 개관기념으로 오는 6월15일까지 한국 근·현대 일상의 문화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개관전 ‘오래된 미래’를 열며, 다음달 27일까지 ‘덩더꿍 문화역서울’ 공연도 개최한다. ‘문화역서울 284’는 영국의 워털루 역사나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처럼 기차역이 담고 있는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시대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 과거가 있는 추억의 장소로 머물지 않고 동시대인들을 위한 문화생산기지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2012.4.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03211740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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