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엊그제 영국 런던의 런던브리지 근처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더 샤드' 개장식이 열렸다. 높이는 95층 310m. 축구장 8개만큼의 유리로 덮은 건물 외벽이 송곳같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하늘로 치솟았다. 템스 강변을 가득 메운 런던 시민들은 이 '21세기식 유리 피라미드'가 뿜어내는 노랑 빨강 레이저쇼에 열광하며 새로운 랜드마크(상징 건축물)의 등장을 반겼다.
런던은 도시의 고풍스러운 격조를 유지하고 오래된 건물을 아끼는 점에서 단연 앞서 있는 도시다. '더 샤드' 가까이만 해도 런던의 상징이랄 수 있는 타워브리지와 세인트폴 성당, 런던탑, 잉글랜드은행 등 유네스코 문화유산급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이 때문에 '더 샤드'가 완공되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리고 주변의 경관을 해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런던의 으뜸가는 랜드마크는 높이 110m인 세인트폴 성당이었다. 런던의 모든 건물은 세인트폴 성당보다 낮게 지어야 했다. '더 샤드'를 설계한 이탈리아의 천재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세인트폴 성당도 처음 지어졌을 때는 최신식 건물이었다'는 말로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세인트폴 성당이 그랬던 것처럼 이 시대에는 이 시대의 생각과 기술을 담은 최신식 랜드마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는 '친환경 에너지 절약'이라는 새 시대 건축의 메시지를 '더 샤드' 설계에 담았다. 그는 하루 수십만 명이 이용하는 '더 샤드'에 주차장을 만들지 않았다. '누구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그래서 들고 나는 데 교통체증이 없는 초고층 빌딩'을 새 시대 건축의 모델로 제시한 것이다.
사실 지금은 런던 시민들이 '런던을 상징하는 현대건축물 1위'로 꼽고 있는 템스 강변 거킨빌딩도 2004년 건립 당시에는 오이를 반쯤 잘라 세운 것 같은 기괴한 모양으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기울어진 달걀 모양을 하고 2002년 모습을 드러낸 런던시 청사도 마찬가지였다. 논란 속에서도 여러 사람이 지혜를 모아 과거와 현재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내고 후대에 물려줄 새로운 건축을 창조해 내는 게 나라나 도시의 역량이고 수준일 것이다. 오래된 역사·문화 도시인 프랑스 파리가 라데팡스의 신(新)개선문,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퐁피두센터 같은 첨단의 랜드마크들을 잇달아 세우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은 걸 봐도 그렇다.
서울시 새 청사가 가림막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한 건축가가 얘기한 '잘생겼건 못생겼건 이제는 서울 시민들이 잘 키울 일만 남았다'는 말에 새 청사를 보는 사람들의 편치 않은 심기(心氣)가 요약돼 있다. 각종 조사에서 '보기 흉하다'는 평가가 '보기 좋다'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8년에 걸쳐 3000억원을 쏟아부은 건물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덕수궁·환구단 등 주변 고적과의 조화'를 요구하며 새 청사 설계도를 네 번이나 바꾸게 했던 문화재위원들이나, 어쨌든 논란만 피하면 된다는 식이었던 서울시 관계자들은 지금 새 청사가 주변경관과 과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새 청사 옆에 혹처럼 서 있는 우중충한 모습의 옛 서울시 본관 건물은 또 어떤가. 전문가들부터 전통과 창조에 대한 생각이 여물지 못한 결과 우리는 100년 200년이 돼도 남을 수 있는 문화재를 지을 기회를 흘려보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2012.7.1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9/20120709016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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