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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론을 재검토한다-(7) 디트리히 젝켈의 미론

편집부


즉흥적이고도 시원한 활력, 이 한국예술의 묘미

젝켈은 동양 불교미술 전문가로서 하이델베르크대 미술사학과에서 동양미술을 가르치면서, 1962년 ‘불교미술사(Die Kunst des Budhismus)’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의 미륵반가상 조각의 우수성을 발견하며 ‘백제(구다라) 양식’이 일본 아수까 비조시대 불교조각애 미친 영향도 짚어가고 있다. 또한 석굴암의 뛰어난 조각기술, 예술성에 감탄하며 한국사찰과 석탑을 중국과 일본 건축양식?재료와 비교함으로써 한국적 특징을 서술해나간다. 자료부족으로 더 깊게 연구할 수 없음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1960년대 초반은 그가 사용할 수 있었던 자료가 조선고적도보밖에 없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불교미술사’보다 수년 전인 1957년에 출간한 ‘Buddhistische Kunst Ostasieus'에서는 한국불교미술에 대해 “한국미술의 독자성의 결여”,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다리 역할”이라는 평가를 유감스럽게도 남겼다. 젝켈도 당시 중국이나 일본미술을 전공한 학자들이 지니고 있던 보편적 사고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예컨대 영국의 중국고고미술사학자 윌리엄 왓슨 같은 이의 견해다).
젝켈의 한국미술에 대한 견해가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196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하면서 故 김재원 초대국립박물관장과 친교를 맺고 경주 등의 유적지를 둘러본 이후였다. 이후 출간된 ‘The art of Buddhism’에는 한국미술에 관한 부분이 중국미술과 일본 불교미술에 비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며, 유물부족으로 어려운 연구상황에서도 한국불교미술을 동양불교미술의 윤곽에서 거시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발굴될 자료들은 한국미술을 재평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견지명적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젝켈은 1936년 독일 낭만주의문학의 거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횔덜린에게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하자, 동경 초급대학에 독일어교수로 발령받아 떠났다. 그는 1936년~1946년, 10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미술 특히 불교미술을 연구했다. 어디를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찰과 불교미술품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동양미술사는 비록 독학한 것이지만 그에겐 문학, 종교사, 철학, 미술사의 수준 높은 인문적 배경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1945년에 동경에서 출간된 책은 불화의 형식과 용도, 불화의 종교와 철학, 불화의 내용, 불화의 구독, 선, 색을 다루는 등 불화연구의 체계적인 미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런 정의들이 결코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인 구성요소들을 분석해 봄으로써 한국미술에 표현된 ‘특질’과 좀더 자세한 ‘통어법’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젝켈은 이러한 미술품 저변에 깔려 있는 ‘특징적 요소’를 분석해봄으로써 한국미술이 중국과 일본미술과 얼마나 다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몇몇 미술품을 선정해 다음과 같이 표현양식을 분석하는 것을 방법론으로 내세웠다. ①한국미술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가 ②어떤 미술품이 가장 두드러지게 한국적인 내재성과 한국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인가 ③다른 한편 잠재적인 증상을 들어내는 미술품이 있는가 ④같은 주제라도 (동양의 3국이 다 사용한) 한국인은 그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⑤중점적이고 부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가 ⑥특별히 선호한 주제나 미술양식이 보이는가 ⑦미술양식이 어떤 식으로 변천하고 있는가 ⑧어느 미술의 주제나 양식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한국화’ 했는가, 예를 들면 한국의 고려시대미술이나 일본의 우지와라 시대 미술이 그 근원을 중국 당대미술에 두고 있으면서 독보적으로 발전한 점 ⑨동시대의 미술이라도 서로 상반되는 점이 보이는가 ⑩시대가 바뀌어도 전 역사를 통해 두드러지게 일관성 있게 나타나 보이는 요소가 있는가 ⑪다양한 양식적 표현 가운데 기조가 되는 요소가 있는가.
이는 벨헬름 핀더(Wilhelm Pinder)나 다게보드 후라이(Dagebord Frey)의 서양미술사방법론을 이용한 것으로, 한국미술에 보이는 일련의 징후나 일정한 행동양식을 찾아보고자 했다. 이렇게 구체적이면서도 이론적인 방법은 몇몇 작품의 분석만으론 확답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일단의 실마리는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저자는 반문하고 있다.
실제로 젝켈이 분석해본 작품들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조각으로 남산의 보리사 미륵불과 안압지출물 존불, 기와문, 고려동경, 조선칠기 등 공예품과 조선시대 회화물 까치, 이암의 ‘어미개와 새끼’, 국립박물관의 호랑이 그림, 이정, 김홍도, 정선, 강세황의 그림들이다. 젝켈은 한국화에는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아볼 수 없는 구도와 필법으로 발랄한 생성과 움직임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교조각이 전반적으로 육중한 중량감을 느끼게 하며 법의의 주름들을 촘촘하고 정확한 선으로 표시됐지만 양감을 나타내는 데는 치우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위에 제시한 여러 문제를 살펴보는 방법론으론 젝켈은 일단 양식분석론을 위주로 하고 있다. 신라 토기를 “자제력과 뚜렷함, 정제된 조각성과 양적 부피를 느끼게 하는 점, 장식문을 도식화와 추상성이 동시에 보인다”고 했다. 이러한 양면성은 고려 상감청자나 조선시대 칠기문양에도 적용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갑자기 예상 밖의 동물을 주제로 한 도자기의 예는 삼국시대-고려-조선자기에 계속 나타나는 요소로 한국인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농담끼어린 성격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조선분청사기가 왜 일본인의 다도에 심오한 미적 감각을 일깨워 줬는지도 예를 들었다. 이것은 “완벽한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즉흥적이고도 시원한 활력소 같은 에너지가 중점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같은 양식론은 현대 미술사 방법론에서 볼때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젝켈도 한국인에 내재한 창의력을 찾아내기 위해선 민속학적?사회심리학적?역사적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며, 자신의 논문을 초보적인 시도였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젝켈은 한국미술에 심취하고 우연히 한국미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한국미술을 연구하고 심미적 안목을 기른 이들과는 구별된다. 그는 전문 미술사학자로서 유럽의 문화전통과 서양미술사의 훈련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한국미술에의 접근방법을 택했고 양식분석과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미술의 미적?창조적 특징을 찾아내려고 시도했다. 한국어를 모르기에, 또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서 체류했기에 일본학자들이 보았던 한국미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의 연구는 면밀한 관찰력으로 자신의 논지를 객관적으로 서술했고, 또한 앞으로 탐구해보아야 할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 나라의 미술전통은 다양하고 복잡한 조건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이를테면 음악이 소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미술은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볼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므로, 이 능력을 키우는 기본훈련은 양식분석부터 시작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젝켈이 한국미술사를 한국만 따로 떼어내 독립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범아시아 문화권에서 한국미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건 여타 미술사가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서양대학에서 최초로 생긴 미술사 훈련과정이 1974~75년의 하이델베르크대 것이었던 것만큼, 유럽인이 한국미술품을 관찰하는 방법은 ‘비교의 방법’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젝켈은 94세인 올해 초 그의 역작 ‘동양초상화’ 제 2권을 탈고하고 마지막 출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미 출판된 제 1권과 3권에 우리나라 미술 전통의 중요한 분야인 초상화가 짧게 언급된 일은 이해가 되면서도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엄청난 분량의 연구서는 우리나라 초상화 연구에도 많은 참고가 될 자료라고 본다.

박영숙 / 영국런던대 미술사
필자는 하이델베르크 대에서 미술사와 중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후 줄곧 런던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Image of Salvation', 'Handbook of Korea'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The Korean Art Collection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등이 있다.

□ 한국예술에 대한 젝켈의 언급들
● 반가사유보살상. 미륵 또는 석가모니. 신라 7세기 초, 높이 90.8㎝.
“대단히 훌륭한 미륵 반가사유상 같은 작품은 한국적인 특징을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114쪽)
● 석굴암
“경주는 당시 기준으로나 현재 기준으로도 훌륭한 도시였다. 그 번영기에 창조된 훌륭한 불교미술 유산 가운데 무엇보다 석굴암을 빼놓을 수 없다. 석굴암은 인도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마침내 한국에 이른 오랜 석굴사원 전통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의 사원건축은 삼국시대에 중국의 영향 아래 기초가 확립되었고, 당의 건축을 모델로 발전하여 거대한 모뉴멘털리티와 장려함을 이룩하였다.” (117~118쪽)
● 고선사 삼층석탐, 높이 9m, 통일신라, 680년경.
금산사 5층석탐과 계단. 한국 김제. 10세기 말. 탑높이 7.2m.
“한국 특유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석탑들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매우 단단하게 축조되었으며, 대체로 단순하고 간소한 형태를 보인다. 부분적으로 정교한 조각이 새겨지기도 했다. 널찍하게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평면적인 처마는 이들을 첫눈에 중국이나 일본의 탑과 구별짓는다.” (118쪽)
● 성덕대왕신종. 경주 봉덕사에 전래. 청동. 높이 3.78m. 통일신라 8세기 후반.
“한국 특유의 특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커다란 청동으로 만든 범종을 들 수 있다. 종은 아시아의 어느 곳에서나 불교 의식에서 중요하게 쓰였으며, 어느 불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미술품이다. 그러나 한국의 종은 형태가 특히 아름답고, 부조로 된 장식 또한 매우 정교하다.” (119쪽)
● 고려자기
“고려는 이전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받았던 풍부한 문화에 기초를 두고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여 보다 독립적으로 민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매진하였다. 고려시대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자 독자적 특성을 가장 현저하게 보여주는 것은 磁器이다. 고도의 심미안을 통해 귀족적인 형태로 구현된 고려 자기에는 높은 수준의 세련된 미감이 반영되어 있다.” (120쪽)
● 조선시대 자기, 백자.
“서민들은 전보다 기술적으로 간소한 수준의 자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들은 소박한 미감으로 사람을 매료시킨다. 이 자기들에는 대담한 필치로 그림이 그려지거나 장식이 아예 배제되기도 했다. 16세기 이래 이러한 자기들은 일본의 다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120~121쪽)

디트리히 제켈(Dietrich Seckel, 1910~ )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으며, 횔덜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나치 독재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까지 머물면서 일본의 불교미술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본격적으로 동양미술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종전과 더불어 귀국한 뒤 1975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미술사학 교수를 지냈다. 전후 독일에서 동양미술사의 연구와 교육의 기틀을 확립한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교미술’, ‘동아시아의 불교미술’, ‘에마키모노’, ‘像을 넘어’, ‘횔덜린 시의 리듬’ 등이 있으며, 이 밖에 동양미술, 독일문학 및 미학분야의 다수 논문들이 있다.
젝켈은 동양미술사 내에서 한국미술을 고찰했지만, 한국미술만이 지닌 ‘특유의 성과’를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이를 소화하고 다듬어 새로운 조형적 규칙들을 창조해나갔다는 것. 청자에선 ‘선’과 ‘형’의 한국미를 읽어내며, 조선회화에서는 중국회화와는 대비되는 힘찬 양식상의 모험이 시도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200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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