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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론을 재검토한다(8) 혜곡 최순우의 미론

편집부



'무심스럽고 어리숭한 둥근 맛'...한국적 진선미 추구
문학 지망의 청년 최순우를 미술사 전공으로 선회시킨 사람은 고유섭(당시 개성박물관장)이었다. 그런만큼 최순우의 한국미술사를 바탕으로 한 미론에는 두가지 관점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우선 그의 탁월한 문장과 표현력이 그것이요, 다른 하나는 고유섭의 미론을 어느정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스승이 작고(1944)한지 근 십년만인 1955년에 ‘우리나라 미술사 개설’을 ‘새벽’지에 발표한다. 이어서 1957년에는 ‘경기도지’에 좀더 많은 분량으로 ‘한국미술사’를 정리 개관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그가 한국미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서두부터 문제삼는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대부분의 글들에서 한국미론에 치중한다. 미학 수업의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아마도 그의 스승 고유섭으로부터의 훈도가 큰 영향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순우가 송도고보를 졸업후(1935) 박물관에 드나들며 스승으로부터 직접 한국미술사 수업을 받았던 기간은 짧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순우에 있어서는 그 미론의 特長이 위에 언급한 바와같이 수사가 뛰어날 뿐 아니라, 또한 그것들을 순수한 우리말에서 끌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는 스승을 넘어서는 ‘氷寒於水’의 경지를 드러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아마도 그의 타고난 재질과 폭넓은 독서에 힘입은 바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가 남긴 장서를 분석하면 예사롭지 않은 그의 미적 사유의 배경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우선 두드러진 몇가지를 든다면 긴바라 세이고(金原省吾)의 ‘동양미학’(1942)과 미주오 히로시(水尾比呂志)의 ‘동양의 미학’(1963)을 비롯, 독일 미학을 소개한 아베 지로(阿部次郞)의 ‘미학’(1956), 파싸르게의 ‘미술사의 철학’(1964) 등 유럽의 정통미학을 섭렵한 흔적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미론이 근본적으로 그의 탁월한 직관력과 미적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논저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는 것은 소박미론이다. “한국미의 전통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회화보다는 조각이, 조각보다는 건축이, 건축보다는 공예작품이 한층 성숙된 우리 미의 전통을 보여 주었으며 이 공예 작품 중에서도 이조의 목공예품과 더불어 이조 자기는 정말 착실하고 의젓하며 또 소박하게 아름답던 조선의 마음씨 그대로였던 것”으로 정의한다. 한국미를 공예에 비중을 두어 풀어내는 것은 야나기 이래의 시대 미학의 한계로 인식되며, 한편 민중미론에의 경도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도자기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자. “흰 빛깔과 공예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라고 서두를 잡은 후, “달항아리의 무심스러운 아름다움과 어리숭하게 생긴 둥근 맛”이 돋보인다고 했다. 또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신선하게 성공적으로 표현된 것이 이조시대 초기의 분청사기”라고 전제한 후, “잘 생긴 분청사기는 때로 무지한듯 하면서도 양식이 은근하게 숨을 쉬고 있는 듯 싶은 신선한 매력이 있으며, 粗略한 釉胎와 지나친 치기 같은 것이 일면에서 결점이 될수 있지만, 무아의 경지와 같은 禪美, 또는 생동하는 서민적 의지를 느끼게 한다”고 매듭 짓는다.
그가 1964년 ‘코리아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도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를 주제로 해 그 특징을 ‘단순과 질박미(Simplicity and Naivety)’로 함축했다. 특히 목공예에서는 재료의 속성을 가려서, 있으면 있는 그대로 적절하게 이용한다는 소위 ‘適材適所主義’가 지배하고 있음을 그 특질로 내세웠다.
건축에 있어서도 실질미와 단순미가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경회루를 예로 들어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한국인의 성정과 솜씨가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라고 하고, 경회루의 열주에 대해서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요 않은 크기로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건축과 자연과의 ‘諧和’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내고 있다. 가령 건물기둥을 받치는 초석의 경우에도 자연석을 이용하는 것을 ‘덤벙 柱礎’라 명명, 한국미의 자연성을 적극적으로 용인한다. 아울러 건축물의 자리잡음과 조경에 대해서도 자연과 건축을 일심동체로 만들어 마치 자연 속에 點睛하는 신기한 효과를 낼 줄 안다고 하여 ‘占地의 妙’라고 별칭했다. 이에 대한 호례로서는 비원의 부용정, 毓祥宮과 진주 남강의 촉석루 등을 들고 있다.
결국 최순우의 미론은 그 자신이 정의하듯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된다. ①그 색채나 의장이 담소하고 순정적이며 아첨이 없다. ②그다지 끈덕지지도 기름지지도 않으며 그다지 나약하지도 거만스럽지도 않다. ③표현이 정력적이라기 보다는 온전 소직하고, 호들갑스럽다기 보다는 은근해서 꾸밈새가 적다.
이러한 그 자신의 피력을 뒤로 하고, 그의 미론에 대해 미적 수사학적 관점에서 다시금 논의 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그의 표현력은 풍부한 형용사의 구사를 특징으로 한다. 일찍이 독일의 미학자 한스 제들마이어는 작품 해석에서의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의 外化는 결국 ‘형용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각별히 부각시키고 있다.
최순우가 골라낸 단어들 가운데 대표적인 몇 예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미의 담담하고 ‘헤식은’ 맛 / ‘어리무던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백자항아리의 둥근 모습 / 청자 매병의 부드럽고도 ‘흠흠한’ 병어깨의 곡선, ‘연연한’ 고려적인 아름다움 / 청자의 길고 가늘고 가냘픈, 때로는 ‘도도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한, 따스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곡선의 조화 / 백자의 때때로 목화송이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 / 외씨버선의 ‘童濯한’ 맵시 / ‘덤벙’ 주초 등등.
최순우의 미론은 점차 미학적인 견지로 접어든다. 그의 작고 몇 년전인 1981년에 발표된 글 ‘한국의 風雅에 대하여’(1969년에 쓴 글의 개고)에서는 ‘풍아’가 새롭게 등장한다. 일반적으로는 미학적 특징들을 다른 각도에서 풍아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에 있어서의 풍아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미의 가치로서보다는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도덕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민족의 몸에 벤 풍아“라든가, '한국의 고유한 체취와 감정을 짙게 반영한 주택건축의 요람 속에서 한국인의 진리, 풍아, 미가 싹터서 배양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진리, 풍아, 미를 같은 위상에 놓고 있다고 할 때, 풍아를 善의 경지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점은 “아름다움이야말로 한국미의 본바닥을 흐르고 있는 善과 美의 음률“이라고 한 그의 초기 논저 이래의 언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편 풍아와 유사개념인 ‘풍류’를 도자기에 비유해 “풍류미가 가득찬 분청사기”라고 그 특징을 일컫기도 했다. 이 경우에는 풍류와 미룰 동격으로 사용해 미적 범주를 한층 확대시키고 있음을 본다.

최순우의 풍아론은 이론만이 아니다. 고유섭의 권유로 박물관의 길로 접어든후 일생을 그곳에서 보내어 탈속한 분위기에 젖기도 했겠지만, 그의 삶 자체가 풍아적이다. 그는 박물관 전시실에 조선조 사랑방을 재현했을 뿐아니라, 사저에도 선비풍의 전통 서재를 꾸미고, 담백한 백자와도 같은 미적 생활로 일관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최순우의 미학에 대한 평가는 다각도의 조명이 필요하다. 여기에 덧보태 시대 미학의 비판적 관점이 요구된다. 그가 ‘비애미’로 질타를 받았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미론에 대해서 애써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 입장에 서고자 했던 사실을 그의 논저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청자의 선이 비애롭다”든가, “석굴암 11면 관음의 맑고 깔끔한 얼굴에서는 간절한 비원과 그 슬픔이 지닌 아름다움이 지극히 담담한 미소로서 나타난다”든가, “김홍도 풍속도의 해학의 아름다움 속에는 오히려 지체할 수 없는 일말의 엷은 애수 같은 것을 느낄수 있고” 하는 식의 자유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는 점은 그가 이미 야나기를 초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야나기 신드롬에서 벗어나야할 쪽은 우리들 자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권영필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사
필자는 파리 3대학과 독일 쾰른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적 상상려고가 미술사학’, ‘렌투스 양식의 미술’ 등이 있고, 역서로는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등이 있다.


● 혜곡 최순우(1916~1984)
혜곡 최순우는 고고미술사학자며 미술평론가였다. 문화재관련 업무에 종사하기 시작한 것은 1935년 조선고적 연구회 때부터다. 개성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당시 관장이었던 고유섭에게 사사해 미술에 대한 뛰어난 재질과 안목을 배웠다. 1936년에는 개풍군에서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을 담당했고 8·15광복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발을 들여 놓았다.
현대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197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해 작고할때까지 봉직했다. 박물관에 처음으로 ‘보존기술실’을 둔 것도 그였고, 박물관 전시를 보면서 누구나 눈맛이 상쾌하고 마음으로 깊이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배열, 구성, 조명, 배경 등을 어우러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혜곡은 또한 독특한 필체로 글씨를 쓰기도 했으며, 재밌는 데생과 자기의 세계를 담은 간결한 그림을 좋아했고 도자기를 손수 빚는 것을 좋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단원 김홍도 檀園金弘道在世年代攷’, ‘겸재 정선론’, ‘한국의 불화’, ‘혜원 신윤복론’ 등이 있고, 저서로는 ‘한국미술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등이 있다.

『최순우전집 1~5』 최순우 지음| 학고재 刊| 1992| 506쪽 내외
깔끔하고 부드럽고, 구수하며 은유적인 언어구사를 보이는 그의 글들이 분야별로 나뉘어 담겼다. 1권은 총설과 도자기에 대한 것, 2권은 도자기 이외의 공예와 조각, 건축에 관한 글, 3권은 회화에 관한 내용, 4권은 문화재와 박물관에 관한 글들, 그리고 문화비평이, 5권은 한국미와 관련있는 기사와 수필로 이뤄져 있다.
회화, 도자기, 조각 등의 작품 한점 한점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그의 독특한 감상을 즐길 수 있으며, ‘바둑이와 나’, ‘소 닭 보듯이’, ‘초맛’, ‘젓갈’ 등의 수필에선 그의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다.

□ 최순우를 사로잡은 한국예술
●경회루 돌기둥
최순우는 경회루의 열주에 대해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요 않은 크기로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홍도의 봄까치
“한국의 전원풍경을 그려서 단원 김홍도처럼 그 넘치는 정취를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는 없다. 모두 중국의 화첩따위나 들여다보면서 본떠 그리던 세상에 단원만은 한국의 자연을 정과 사랑을 기울여 바라보았고, 이러한 단원의 작가적 자세는 단원으로 하여금 한국회화사에서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한국미의 창조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해주었다. 단원의 그림을 살펴보면 새 한 마리, 나뭇가지 하나에 이르기까지 한국 풍토의 독자적인 멋과 아름다움이 너무나 흥겹게 표현되어 있어서 시속화가들의 그림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점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전집 3권, 304~305쪽)
●백자상감초문편병
“바라보고 있으면 허허 하고 웃음이 나올 지경이 된다. 이 병을 만든 사람이나 이것을 즐겨 쓰던 이조시대 사람들이 모두 이 병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내 심정과 같은 흥건한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세상사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숨김없는 마음의 자세가 이 병에 새겨진 성근 그림처럼 야무지지도 못하고 모질지도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자 한 계산도 없고 또 그런대로 따지고 봐도 별로 서운한 구석도 없어 보이는 점에 오히려 마음이 쏠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집 1권, 460~61쪽)
●백자반합
“이조 백자가 지니는 흰 맛도 희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조 백자가 지니는 독특한 둥근 맛도 또한 희한한 멋을 지니고 있다. 正圓은 물론 아니며 타원형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너그럽고도 도량있는 이조인의 둥근 맛의 참뜻을 우리는 인간의 입장에서나 공예가의 입장에서나 모두 잘 이어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집 1권, 472쪽)
●신라 土偶
“아름다움의 본질적인 면, 말하자면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가식 없는 작업 위에 순수하게 노정된다는 좋은 예를 우리는 이 작은 두 유물에서 역력히 본 것이다. 마구 빚은 흙덩이와 흙타래, 그리고 마구 뚫은 두 눈과 입의 표정에 古拙의 아름다움과 순정의 매력이 얼마나 얼마나 욕심없이 이루어졌는가를 다시금 실증했고, 한국의 아름다움에는 이러한 無心의 아름다움, 무재주의 재주가 이미 삼국시대부터 스며 있어서 한국미가 지니는 체질의 원천적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전집 1권, 396~7쪽)
●비원의 演慶堂
“비원 안에 정원의 정서를 살려서 지은 연경당 같은 이조 주택 건물은 ‘내가 바로 한국이노라’ 하고 소리없는 외침을 부르짖고 있다. 연경당의 아름다움은 바로 겸허와 실질과 소박의 아름다움이며 그 속에 우리는 그다지 흥겨울 것도 없고 그다지 초라할 것도 없는 한국적인 품위와 조국에 대한 안온한 즐거움 같은 담담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전집 2권, 407쪽)
●나전칠기 송죽무늬 函
“수다스러운 듯싶어도 단순하고 화려한 듯 보여도 소박한 동심의 즐거움을 표현한 점이 한국 민속공예의 장식무늬가 지닌 하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별 야심없이 다루어진 무늬들, 특히 조선시대 나전칠기의 좋은 도안들을 보고 있으면 늣늣하고도 희떱고 희떠우면서도 익살스러움이 한 가닥의 즐거움을 자아내 준다.” (전집 2권, 330쪽)
●삼층 찬탁
“이조시대 목공가구 중에서도 탐탁스러운 구조와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으로서 한국의 독특한 공예미를 보여주는 것이 3층 찬탁이다…옹이 없는 松材 또는 결이 고운 잣나무로 소박한 맛을 내고 장식이나 고리는 거멍쇠를 써서 조촐한 맛과 그 簡素美가 이를 데 없이 쾌적하다.” (전집 2권, 328쪽)
●고구려 금동여래입상
“이 延嘉 7년만에 만들어진 고구려 금동여래입상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구려에 맨 먼저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북위식 불상양식을 짙게 간직하고는 있으면서도 비례의 아름다움이나 입체조각을 다룬 솜씨 같은 데서 이미 한국 냄새가 분명하게 풍기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따라서 벌써 생경한 남의 미소가 아니요, 우리 것으로 삭여 가는 과정을 역력하게 보여준 신기한 우리의 미소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완전한 아름다움 같으면서도 어디엔가 좀더 손질이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놓고 있고, 또 막상 손을 대려면 어디에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우리 삼국시대 불상들은 신기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전집 2권,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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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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