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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론을 재검토한다-(12)좌담회: 한국미론의 현실과 과제

편집부


'미적 특질' 읽어낼 감수성 키워야...'넓고 깊은' 개념화 필요

‘한국미론을 재검토한다’가 학계의 많은 관심 속에서 연재를 마쳤다. 그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미론가들의 미론을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그들의 논의를 통해 살펴보는 귀한 자리였지만, 애초에 기획되었던 ‘비판적 검토’라는 부분이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감이 있었다.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필진으로 참가한 학자들과 좌담을 통해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미론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한국미 논의의 방식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학제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되었다./편집자주
일시: 2005. 6. 1(수). 오후 7시
장소: 교수신문사
사회: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 정치학)
참석자: 권영필 한예종 교수(미술사), 민주식 영남대 교수(미학), 이인범 한예종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원(미학)


사회: 이 기획은 지식인 사회나 일반 대중에게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 미술품의 감상을 통해 미의식이나 미론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기획을 평가하면서 향후 보다 심화된 차원에서 한국미를 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과제까지 논해봤으면 합니다. 한국미론의 특징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요.

한국미에 대한 다양한 관점
권영필: 여기 거론된 인물들은 기복이 많았던 지난 1세기 동안 활동했던 대표적인 미론가들이었습니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각각 자신의 틀을 가지고 한국미를 바라봤죠. 그런 점에서 한국미를 바라보는 매우 다양한 관점들이 보여집니다. 특히 윤희순이나 김용준의 경우, 당대의 비평가로의 입장보다는 역사 해석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해 논객의 반열에 들게 된 것으로 이해되는 등 이번 기회에 새로운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인범: 가령 야나기 무네요시를 논한다면, 이제는 고유섭의 본질적 연원으로서만 볼 게 아니라, 야나기의 생각을 좀더 당대의 여건 속에서, 또 야나기의 학문적인 배경까지 아우르면서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나기의 미론이 서구의 조형론과 비교될 때, 그의 한국미론은 좀더 풍부한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한국예술이 갖고 있는 특질을 서구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해낼 수 없다고 봤고, 그걸 민예미론으로 전개해 나갔죠. 그런 점에서 그의 한국미론에는 동과 서의 문명사적 충돌, 서세동점기의 근대성 등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민주식: 젝켈의 한국미론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 미술품에 대해 구체적인 양식적 특징을 들어가며 심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바를 곧 ‘한국미’라 할 수는 없죠. 즉 양식적 특징과 한국미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간극을 채우는 게 과제입니다. 한국미는 애매한 면이 많아요. ‘이러하면서도 저러하다’거나 ‘적요한 유머’나 ‘어른같은 아해’처럼 모순된 개념이 동시에 나타나는게 한국미인 거죠. 미의식이라는 것은 다른 어떤 관념과 달리 인간의 생생한 감각적 차원과 관련되기에 매우 다채로운 면이 있습니다. 그 다양한 편차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식민사관 극복 위한 안티테제
사회: 결국 한국미론을 논하는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네요. 그에 대해 좀더 논했으면 합니다.
민주식: 이번에 한국미를 살펴보는 관점은 대부분 미술사적 시각이었습니다. 즉 미학적인, 이론적인 틀은 부족했다고 여겨집니다. 미술사관이나 감식안 정도만 드러났죠. 또 미론가들이 한국미를 신념적으로 접근해 과학적인 방법론은 허약했던 면이 있습니다.
이인범: 이론적 해석의 문제와 당대의 실천적 차원의 과제, 이 두 가지가 뒤섞여지는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고 봅니다. 김용준이나 윤희순의 경우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들에 의한 한국예술 해석의 지평은 당대의 문화예술계의 실천적인 전략 차원에 밀접하게 연계돼 있지요. 가령 1930년대에는 향토주의, 해방 직후에는 ‘민족문화의 건설’이나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실천적 이데올로기와 뗄레야 뗄 수 없지요.

사회: 큰틀에서 보면 한국미 논의가 방법론의 심화라기보다는 일본에 대항해 민족을 지키는 논의로, 즉 과잉 이념적인 것만 됐다는 지적이군요.
민주식: 지난 1세기는 자기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학문이고 문화활동이었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쪽 심포지엄의 90%가 한국적인 특성과 과제를 살펴보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학문이라 여겼습니다. 이제 제2라운드가 시작돼야 하는거죠.
권영필: 맞아요. 식민사관을 극복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덫에 걸려 있습니다.

사회: 학문전반이 아직도 식민사관에 대한 안티테제 수준에 머물러 정체성은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죠. 그런 시대상황에서 탈출해야 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이인범: 그동안 야나기를 일제 잔재의 상징기호로만 봐왔는데, 그를 ‘비애미’로만 이해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논의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킬 수 있겠지요.
민주식: 19세기 윌리엄 모리스가 서양의 미술부흥 운동을 일으켰다면 20세기 동양의 창조적 미론자로서는 야나기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야나기와 같이 거시적인 틀에서 미론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정신적 내포 드러낼 언어표현 필요
사회: 기존 논의가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면,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가닥잡아 나가야 할까요.

권영필: 예를 들어 디트리히 젝켈은 ‘한국미술의 특성’이라는 글을 쓰면서 하나의 방법적 틀을 제시했습니다. 다분히 서구적 시각이긴 하지만, 동양 3국의 비교 속에서 한국미를 변별해냈죠. 그런 방법론은 합리적이기도 하고 실천적인 면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가 내세운 ‘생명성’이라는 특성 같은 것은 구체성이 약하다고 봅니다.
한편 에버린 맥큔의 경우는 좀더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미를 “세련과 조잡의 두 극단 속에서 힘과 마음을 끄는 정직성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조선의 선비문화에서 구체적인 예들도 찾아냈죠.
두분 다 외국인인데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좀 났습니다. 그건 아마도 맥큔이 한국에 오래 살면서 체득한 경험에서 미론을 끌어냈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그런 점에서 맥큔의 논의는 수용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인범: 한국미 논의는 어떤 면에서 ‘어눌함’ 같은 게 있습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과제죠. 젝켈의 방법론적 틀은 굉장히 유용한 면이 있습니다. 양식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적 감상을 정확히 언어화 했다는 측면에서 대단한 거죠.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언어화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한국미를 논한다는 건 적어도 글로벌한 차원에서 언어로 정리해내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설득하는 것일텐데, 이 부분이 약합니다. 최순우는 유려한 형용사로 미적 직관의 세계를 감지해내는 데는 휼륭했고 우리에게는 감복을 줬지만, 국제적으로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미론에서 현재 시급한 건 개념화작업입니다.

사회: 직관과 이론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듯 합니다.
권영필: 최순우는 독특한 형용사들로 직관력을 나타낸 게 특징이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서 우리가 더 캐낼 것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최순우의 직관에 대해 더 깊이 천착해서 풍부하게 해석한다면 개념화의 실마리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직관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최순우는 직관을 몸소 실천했었습니다. 물론 체계화라는 면에서는 약점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한스 제들마이어의 이론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는 미학과 미술사의 고리를 연결했던 사람이죠. 한국미의 언어화, 개념화 작업은 그에게서 배울 게 많습니다.
이인범: 야나기를 포함해 최순우, 김용준의 격조 높은 취미생활은 일종의 실천적인 지혜로도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론의 차원은 그런 실천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한국미라는 보이지 않는 미적 가치나 미의식을 어떤 근거를 통해 언어로 객관화시킬 수 있을까요.
민주식: 사실 그 부분은 좀 실패했다고 여겨집니다. 미는 향수와 감성의 측면이 있고, 또 학문적인 체계의 작업이 있습니다. 둘은 별개인데, 그런점에서 저는 최순우를 미론가로 보진 않아요. 미론가는 구조화하고 개념화하고 개념과 개념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이론가죠. 최순우의 감화력은 크지만, 개념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권영필: 그건 시대적 특징이자 한계로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미라는 건물이 있다면, 어떤 이는 지하실, 다른 이들은 1층, 2층을 얘기하죠. 그러나 여태껏 1층과 2층의 관계, 전체에 대한 조망 등의 연구시도는 거의 되어있지 않은 형편입니다.


사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술품을 바라보는 체계적인 이론이라는 거죠.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것과 이론 구축, 이 둘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인범: 한국미론이 때로는 공염불로 들리는 데, 지나치게 이념화 되어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뛰어난 직관력을 지녔던 종래의 실천가들의 생각을 반복하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을 가로지르고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형상화해내는 것도 앞서 언급했던 어법의 발굴이라는 측면에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무기교의 기교’라면 그것을 예술학적 가능성 속에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 같은 일이죠.
민주식: 하지만 미술사적 관점, 즉 역사에 초점을 맞춰 외부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미술작품 내부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감상은 자칫 상찬일변도로 흐르는 경우가 많죠. 필요한 건 작품이 좋고 나쁘다의 평가가 아니라, 좀더 묘사적인 언어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작품은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내포를 들어내는 언어적 표현이 필요하죠.
권영필: 사실 이번 기획에서 각각의 미론가들이 구현해낸 한국미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초보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미론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평가 돼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옳았지만, 오늘날에는 오류인 것도 있을 겁니다.

한국미의 심층구조 밝혀야
사회: 이후에도 한국미에 관한 논의는 계속 나올 것입니다. 향후 논의를 위한 과제를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권영필: 방법적인 면을 되돌아본다면, 한국미를 논하는데는 미술의 문제를 포함해 민속이나 문학쪽을 함께 조명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미술은 미술대로, 문학은 문학대로 한다면 한국미를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여요. 이것을 씬테제(종합) 하는 과제가 남았죠. 이것이 미학자들의 몫이기도 하구요. 그런 면에서 조요한 선생의 한국미론이 포괄적인 예로서 중요합니다.
민주식: 여러 장르를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문화인류학이나 민속학, 또 사상사의 논의도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미 논의는 다양한 레벨에서 많이 나올 수록 좋다고 봅니다. 그것들의 종합이 다양성을 포괄하는 큰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을테니까요.
권영필: 직관력과 관련해서 ‘미적 상상력’이란 걸 말하고 싶어요. 흔히 상상력은 직관의 하위개념이거나, 심지어 공상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미적 상상력은 예술 생산의 원동력입니다. 비근한 예로, 조선조의 ‘막사발’ 하나에서도 한국 장인들의 미적 상상력을 캐낼 수 있었듯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그런 것들을 끌어내야 합니다.


사회: 우리가 한국미를 너무 큰 틀에서만 논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한 틀에서 논하면 시대의 가닥가닥을 놓치는 수도 있는데요.
민주식: 한국미의 고유성, 정체성과 같은 틀에서 문제가 설정되다 보니 한국미가 신비화된 감이 없잖아 있어요. 이제는 거꾸로 뒤집어 한국미를 상대화하고, 일반화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인범 : 내부만을 향한 논의는 내면을 강화시켜 줄지 모르지만, 문제는 신비화로 끝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미론의 현실성은 이제 사실은 지난날같이 허약했던 내부를 향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당당하게 외부와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권영필 : 본래 한국미는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그것을 손쉽게 찾고자 구체적인 미술품에 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 사실인데, 더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민속학적, 인류학적 접근이 요구되죠.
민주식: 한국미 논의가 다채롭기도 했는데, 언어의 유희에 홀려서 구조나 심층을 건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것들을 들춰내는 작업을 해야겠죠. 또 보편성으로 한층 더 나가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학계에서 미학이론은 거의 없다시피 결핍돼있습니다.
권영필: 서양미학 전공자들이 이쪽으로 눈을 돌릴 필요도 있습니다. 서양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봐야 한국적 입장이 더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 한국미는 한국미술사, ‘한국미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문학뿐만아니라, 심지어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가 비평적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고 봅니다.
사회: 한국미 논의가 갖는 문제점과 그것을 어떻게 지양하면서 방법론적인 틀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기획으로 다룰 수 있길 바랍니다. 긴 시간 말씀 고맙습니다.


교수신문 2005.6.8
정리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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