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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사적 공간 아틀리에를 오픈하다!- 일산 오픈 스튜디오 2005

백기영

글 ㅣ 백기영

최근 미술계에서는 작업실 공간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풍성하게 오가고 있다.문화관광부가 적극적으로 창작 스튜디오를 신규로 건립하거나 폐교를 활용한 창작 스튜디오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지난 1998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23개소를 건립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정부의 새 예술정책에 따르면 창작 스튜디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창작 스튜디오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더 확대해 갈 전망이다. 이러한 스튜디오 지원정책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회가 운영하는 창동 스튜디오와 고양 스튜디오가 예술가들에게 1년간의 창작공간을 지원하고 있고, 여기에 민간이 운영하는 쌈지 스튜디오나 영은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이 정부가 미처 다 하지 못하고 있는 작가 지원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상의 변화와는 별개로 현장에서는 예술가 스스로 보다 자율적이고 실질적인 자구책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지난해 사비나미술관에서 기획된 <작업실 리포트>전에 이어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예총회관 무단 점거, 그리고 올해 진행된 경기문화재단의 <예술촌 포럼>, <홍대 앞 작업실 네트워크>, 미술인회의가 주관하는 <아틀리에 매핑>, 일산 구산동 성석동 지역의 <오픈 스튜디오 작가 포럼>, 안성의 예술촌에서 진행된 <나는 예술가를 만나러 안성에 간다!> 등이 최근의 창작공간에 관한 폭넓은 논의를 가능하게 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작업실 논의의 중심에는 그동안 예술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머물러 있던 작업실에 공적인 기능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문화예술 인프라가 취약하고 향수층이 전무하며, 그에 따른 예술 소비자와 구매자가 현저히 적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예술가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자구책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러한 작업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프랑스의 사례를 보자면, 예술가가 ‘메종 데 아티스트(예술가협회)’에 가입함과 동시에 일종의 국가가 지원하는 아틀리에 입주 순서를 기다리게 되고, 예술가의 작업실 공간을 지원함과 동시에 지역의 문화예술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적 책임을 부과시킨다. 심지어 이러한 협회에 가입이 되지 않는 예술가들이 도시 공간에 버려진 공간들을 불법으로 점거하더라도 이를 용인하고 예술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독일의 뒤셀도르프의 경우,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일종의 점으로 연결해 동시에 오픈 스튜디오를 개최하고 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거래하는 오픈 스튜디오 혹은 갤러리와 아트페어 등의 미술시장을 연결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쿤스트 풍테(아틀리에를 연결하는 점 조직 www.kunstpunkte.de)는 해마다 10월에서 11월 한번 동시에 오픈 스튜디오를 개최하고 있다.
일산의 성석동과 구산동의 경우, 2001년부터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서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고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일산 지역에 예술가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의 급격한팽창과 신도시 개발이 맞물려 있었던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다. 이들은 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작업실을 얻을 수 있고, 서울 인근에 거주하면서 중앙 미술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가기 위해 일산으로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처지와 형편이 서로 다른 작가군들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군락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서로 계획하지 않았던 자생적인 작가 네트워크가 구축된 것이다. 이 오픈 스튜디오는 2001년 처음으로 <성석동 오픈스튜디오>를 열면서 시작되었고, 2003년부터는 구산동과 성석동을 합쳐 <일산 오픈 스튜디오>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올해는 총 50명의 작가들이 참여해서 작업 공간을 오픈하고, 찾아오는 관람객들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일산 오픈 스튜디오>는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삶과 예술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좀 더 친절한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히 관람객의 방문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반인들과 어린이들을 상대로 작가의 작업을 따라해 보면서 예술가의 작업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작업실 방문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해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이 모든 행사들을 작가들이 참가비를 내고 시간을 내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에게 이중적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일산과 같이 집단으로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효율적인 보호와 육성을 위해서는 지역자치단체나 중앙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과 장기적인 정책 마련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일산 지역의 작가들이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들을 보면, 선진국의 예에서처럼, 예술가로 등록을 하고창작공간을 제공받는 것은 둘째 치고, 대부분 예술가의 아틀리에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사牛舍를 개조해서 작업실로 사용하는 몇몇 예술가들은 작업실이 불법 건축물로 인정된 탓에 작업실을 유지하려면 한 달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공무원들의 수금 등살(?)에 시달려야 한다. 그나마 일산의 많은 예술가들이 유지하고 있는 스튜디오는 ‘근린시설’로 분류되어 그런 문제는 피해갈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예술가들을 위해 작업실을 지어준다는 허황된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아틀리에 건축을 위한 법적 기준이라도 마련되어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지켜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일산 지역의 땅값이 오르면서 땅과 건물을 소유하지 못한 작가들이 지불해야 하는 건물 임대료가 해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제 일산을 떠나 어디론가 더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도시 밖으로 밀려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산 같은 곳에서 그래도 스튜디오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들은 행복한 편이다. 그나마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있거나, 도예와 같이 작업으로 상업적 유통이 가능하거나 건축물 미술장식으로 근근이 돈 벌이가 되거나, 미술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교수이거나 한 작가들이 일산에 거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산 지역의 특성상 급격한 신도시 개발로 인해 이주해온 시민들이 대부분인 탓에 공동체로서의 지역적 정체성을 갖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일산 오픈 스튜디오 추진작가>들은 이러한 예술가들의 공동체가 문화지구를 만들고 새로운 일산의 지역적 정체성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이제 예술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머물러 있던 아틀리에는 오픈되어야 한다. 예술이 예술가 혼자를 위해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소통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예술의 사회적 논의와예술의 공공적 매개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이전의 아틀리에가 재능 있는예술가의 작품생산 장소이면서 주문 장소로서 기능했다면, 또 앤디 워홀의 ‘아트 팩토리Art Factory’가 예술가 집단의 창조적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산업생산 기지로서의 공장과 같은 산업사회의 예술품 생산 장소로서 자리매김을 시도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아틀리에는 지역사회와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예술가는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창작의 산실로서 작업실을 필요로 한다. 이 공간은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예술가의 자율적 상상이 보존될 수 있도록 경제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의 창조적 에너지들이 아틀리에를 넘어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만날 때, 보다 더 이들이 예술을 향유하게 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 지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백기영 | 1969년생으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정원 이주 프로젝트와 생명의 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안양천 프로젝트 예술감독과 미술인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기문화재단 교육기획팀 전문위원으로 있다.
출처-기전문화예술 2005.11ㆍ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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