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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와 윤석만의 그리기 혹은 지우기_어허, 이놈이 끝끝내 사람 잡네

김종길

글 ㅣ 김종길

“더 야하게”, “유치한”, 이 ‘말’字을 ‘말’言으로 읽으시오 2층 비좁은 계단을 올라서면, 시장 골목 어느 떡집에서 쓰였을 법한 낡은 보자기가, 무어라 항변할 수도 없는 몸짓으로 문 입구를 막고 있는데, 그 꼬락서니가 사뭇 위엄 있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서, 왜 이걸 가리개로 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이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휙 걷어 버리고싶어진다. 2003년 이른 봄, 석남 미술상 수상전展을 보러 갔을 때‘ ECHOWORDS_시늉말’이란 주제가 희귀하고 생소해서 자세히 살펴본 기억을 떠 올리며 입장하니, 그야말로 내 기억이 주체할 없을 정도로 팽창하는 것이 아닌가.
유승호는 작업실 한편에 ‘사장님’들이나 쓰는 책상과 가죽소파를 놓아두고 떡 하니‘유화백’이란 명패를 올렸다. 이를테면, 이곳은 유화백의 생산공장인 셈이다. 개인전을 앞두고 두명의 일용직을 고용해 ‘문자 찍기’를 주문하고 있는 행태와 그 발상을 보면,‘사장’유화백이라 불러도 흠이 없을 일이며, 숱하게 찍힌 문자들 위에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을 박아 넣고 있는 모습에서 유희자遊戱者 유화백의 눈빛이 문득 매서운 용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의문할 만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곧바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라 말했던 중국 양나라 화가 장승요의 말이 귀에서 윙윙거렸지만, 그 눈은 오히려 그림이 아니라 유화백의 눈에서 번득거리고 있었단 얘기다. 왜? 유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폭에 글을 쓰거나 문자를 찍는 것이니까. “으-씨”라구? 그래, ‘으-씨’야.
생산공장은 그야말로 ‘말’의 구린내가 빨랫줄에 걸린 귀저기처럼 덕지덕지 붙어서 “날 좀 써 줘”하고 항변하고 있는 바, 이 말이란 놈들은 주워갈 턱이 없는 개뼈다귀마냥 말라서 벽과 천장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이젠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야~호”,“슈-”,“내 목 좀 풀어줘”,“우수수수”,“세월아 돌려다오”,“힘 줘, 여기는 힘 빼고”,“으이그 무서워라”…. 그 옆으로 퀴퀴한 중국 고대 북송의 회화가 시커먼 가죽껍질에 복사된 채 유화백의 손길을 기다리는데, 대개 그것들은 “저 먼저요”해가며 손들지 않아도 심히 무거운 두통을 수반할 만큼 복잡한 그림들이다. 그러니까, 유화백은 고전 회화를 문자 찍기의 실험용으로 차용하면서 그 임상의 결과를 ‘작품’이라는, 지극히 ‘무대뽀’적 인내의 생산물로 귀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 모방이라 말했던 역사적 진술이 유화백의 쓰레기통에서발굴되었다는 긴급 타전이 없어도 이제 유화백의 작품들은 새로운 고전이 되고 있다. 자연을 대상으로 재현하는 것이 모방의 전략이었고, 그 재현을 다시재현하는 것이 시뮬라크르의 멀미였으며, 이 어미 없는 사생아의 이미지 생산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해결하려 했던 미증유의 사건이 아니었던가.그러나 유화백은 이름 없이 떠도는 이 숱한 고아 이미지를 입양해 이름을 지어준다. 이미지의 개성에서 떠올려진 이름들, 그 말들, 그 문자들로 다시 이미지를 채우고, 보란 듯이, 그럴싸하게 재구성하여, 거 봐 이것들은 진짜 이름이 있었다니까, 익살의 콧방귀를 뀌며 손사레 치지 않는가.
이 기막힌 유화백의 유치찬란 전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수사관처럼 생산공장을 수색하니, “참된 바보의, 위장된 바보가 아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머리의 나사를 풀어주자. 자유롭게 날아가도록.”이란 조금은 긴 메모가 화장실로 향하는 바깥문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은 산수회화(‘산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리기’의 재현물을 ‘쓰기’의 재현물로 치환함으로써, 화폭에 써 놓은 말의 소리로 증발시켜 버리는, 일종의 ‘지우기’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다시 기억해야 한다. 이제부터유화백의 작품을 보려거든 가까이 가서 화폭에 적힌 문자를 소리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장탐색하고 나오려니, 최근에 그린, 아니 사람 모양의 도상으로 용龍 형상을 만들어 놓은, 참으로 재기발랄한 그 그림 주변의 구름문양이 떡집 보자기에 그려진 구름문양이 아닌가. 어허, 이놈이 끝끝내 사람 잡네.
‘도요새’字는 ‘도요새’言이 아니라구요! 윤석만, 제씨의 작업실도 퍽이나 인상 깊다. 무릎이 아찔한 5층 계단을빙빙 돌아 올라가니 왼쪽엔 한 평 남짓한 화장실이 있고, 작업실로 사용하는 텅 빈 화실이 맞은편에 있다. 쫄딱 망하고 도망하듯 사라진, 제 몸을 잃은 그림자만 쌓여서 꽉 다문 창문들처럼 침묵하고 있는, 그런 화실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주인의 그림을 받치고 있었을 이젤들이 대꾸 한 마디 없이 취해 누워 있는 꼬락서니가 전날 밤 늦게까지 마셨다던 제씨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
형광등을 켜도 달아나지 않는 어둠 사이로 작품들이 걸려 있는데, 그게 제씨의 작업실 풍경인지 아니면 그렇게 허물어져 내린 얼룩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무엇을 그려 놓은 것도 같은데, 멀찍이 서서 보면 그 그림에는 시야를 붙잡는 명료함이 있는 게 아니라 몸이 달아나고 남은 껍질처럼 허상만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다시, 유화백의 작업실을 탐색했던 것처럼, 퀴퀴한 이 어둠의 곳곳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런 흔적이 없다. 이건 혹 명백한 증거 인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벽과 천장은 물론이고, 작업실 한쪽의 쪽방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 흔한 작업노트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 이를 어쩐다. 이럴 땐 직접 심문이 최고일 터이다.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는 나의 생활 패턴”,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이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말에서 작품 해제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심문 결과 두 개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펜과 먹물이었다. 제씨의 형편은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아 그림을 그려야 할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종이를 벽에 걸어 두고 틈틈이 선을 그려 넣는 작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려야 할 대상을 찾으면, 대상을 종이에 큰 아웃라인으로 그린 후 그 내부를 선으로 채워나가는데, 화려한 채색을 하며 덧칠하거나 지울 필요도 없고,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노동 또한 필요없다. 그저 하나의 선을 시작하고 그 끝지점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된 선의 어느 지점에서 윗선과의 경계를 긴장하며, 의식이 허락하는 만큼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림풀이까지 곁들인 국어사전에서 ‘도요새’를 펼친다. “도요―새[명사] 도욧과의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다리와 부리와 날개가 길고 꽁지는 짧음. 몸빛은 대체로….” 설명구 옆에 도요새 그림이 있지 않겠는가. 제씨는 이 글과 그림의 아웃라인을 종이에 대강 스케치한 후 선을 그어 풀기 시작한다. 제씨의 의식은 글과 그림의 테두리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서 말한 바,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그어지는 대로 끝까지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결말에 이르면 선이 실로 바뀌어 마치 헝클어진머리칼 같을 뿐만 아니라, 문자는 이미 문자의 골격을 잃고, 도요새 그림은 문자와 맞붙어 도무지 그것이 새인지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도요새라는 사전적 의미와 이미지가 선으로 무화되면서 그 형체가 해체되며, 종국에는 문자와 그림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난장판으로 돌변하고, 의미의 확정적 사실이 사실성을 잃고 물결처럼 파동하며 화폭의 전면으로 번져나갈 뿐이다. 이는 문자를 해체하는 것일 수 있고, 사전 개념의 의미를 해체하는것일 수 있으며, 다만, 회화 이미지로 문자를 치환하는 형식일 수도 있다. 이때 문자는 ‘개념’이 제거된 상태의 ‘물질’로 전환된다. 추사 김정희의 시詩를 풀어 헤쳐서 흐물거리는 선의 낱낱으로 바꿔놓은 작품에서 그 전복적 이미지는 폭발한다. 다가서면, 선일뿐인 이것의 정체는, 뒷걸음 칠 때 스스로 이합집산하며 그 형체를 아스라이 드러낸다. 그런데, 그 형체라는 실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오호라! 제 그림자 남기고 도망간 몸들이 이 무형의 실체로 숨어 든 것이구먼.
전복의 언어는 기존의 것을 무장해제하는 데서 오는 것이리라. 설령 이들의 언어가 아직 설익고 씁쓸해서 목 넘김이 무척 괴롭다 하더라도, 취하는 태도와 의식의 행태가 앞선 선배들에 전혀 빚질 바 없는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이 아닌 대상에서 비롯된 느낌에 이름 지어주기를 통한 문자해독 방식의 ‘유화백식’ 재현은 예기치 않은 회화의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있으며, 대상 이미지를 선으로 풀어 헤쳐 개념과 상징의 기의를 ‘회화’라는 물질로 뒤바꿔 버리는 ‘윤석만식’ 회화 또한 결코 회화라는 범주에 한정되지 않는 비상한 문제제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화백의 작품들은 사실 다양한 경향을 선보이며 헛갈림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산수회화뿐만 아니라 서구 회화, 문자 그 자체, 전시장 벽면, 입체에 쓴 문자 등 기존에 관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평면회화의 한계지점을 매우 날카롭게 파고든다. ‘대상’을 잊어버리자고 다짐하며 ‘더 야하게’, ‘(더) 유치한’ 그림들을 재생산하는 그는 마치, 노출 수위를 이미 오래 전에 넘겨버린 매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거름망을 투과한 그 미디어 문자 응집의 육수를 그로테스크하게 펼쳐내는 주방장 같다.
윤석만식 작품은 회화가 점·선·면에서 시작된다는 발생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 사물 고유의 형태를풀어 헤쳐버리는 개념 지우기를 통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의 질서를 다시 묻는다. 시가 의미로 확장되기 전에 이미지 회화로 바꾸거나, 바지를 화면 속에서 해체해 버리는 태도에서 ‘존재-비존재’의 내러티브를 읽게 되는 것이다. 그는 고백한다. “선을 그리는 내 몸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처음엔 균형을 잡는 것이 힘들지만, 한번 몸에 익히면 자신의 몸처럼, (…) 화면 위에서 처음엔 한없이 부자연스럽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화면에 그려지는 선 맛을 즐기게 된다.”
어느 날, 두 제씨가 문자도文字圖와 선도繕圖 속에서 놀고 있더란 풍문이 들려올지 모르겠다.
김종길|미술평론가. 1968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으며 월간 『미술세계』를 통해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 연구를 하면서 월간 『미술세계』에 「작품 속 작가의 내면을 찾아」와 월간 『space』에 「환경미술」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본지 전문위원이다.
박원우|1999년부터 문화예술 전문지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두 차례의 기획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자유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기전문화예술 2005.11ㆍ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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