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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농사와 자식농사_ 추수의 기쁨도 사람을 가르쳐 거두는 기쁨보다 크지 않으리

조은정

글 ㅣ 조은정

가을이 즐거운 것은 수확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농사가 천하의 일이었던 시대의 가을수확은 생명의 유지를 의미하였기에 수확 자체가 기꺼운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농사를 짓는 풍속 그림들은 봄과 여름의 수고, 가을의 풍요로움과 겨울의 한가로움을 표현한 생활의 기록이다. 가을의 수확은 또한 곡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곡식을 타작하는 농부들 뒤로 자리 잡은 정자에서 이루어지는 서당 풍경은 이 시대에 사람을 수확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낟가리 앞에서 책을 읽다 조선시대 풍속화로 이름을 날린 김득신(1754~1822)이 61세에 그린 〈풍속 8곡병풍〉은 회갑을 넘긴 노화가의 인생에 대한 성찰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여덟 폭 가운데 제7면은 추수가 끝난 뒤 낟가리를 쟁여 놓은 만추 풍경이다. 멀리 잎이 소소해진 나무를 배경으로 작은 초가집이 머리를 맞대고 있고,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화면 중앙을 가득 메우는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사랑채, 안채 등 규모가 제법 큰시골가옥이다. 어린아이를 데린 아낙네가 물동이를 이고 들어서는 집 입구에는 벌통의 주저리가 제법 많이 보여 매우 유복한 집안임을 드러낸다. 주인마님이 장죽을 물고 비스듬히 누운 대청 아래로 부지런히 몸을 놀려 새끼줄을 꼬아 섬을 짜는 두 노복이 보인다. 이들 앞에 놓인 둥글고 높은 낟가리는 이 해의 농사가 풍년이었음을 알게 하고, 그 옆에서 한가로이 곡식을 쪼는 닭과 병아리, 그리고 살이 오른 황소의 흐뭇한 표정이 더해져 풍년도 그냥 풍년이 아니라 대풍이 아닌가 싶다. 한편, 사랑채에는 활짝 열린 장지문 너머로 높은 사방관을 쓴 선비가 학동에게 글을 가르치는 풍경이 펼쳐진다. 독일 게르트루드 클라센 소장의 작자미상 〈경직도 8곡병풍〉의 한 장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전체 화면을 이등분하여 상단은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는 장면이고, 짙은 녹음의 나무를 경계로 한 하단은 도리깨로 곡식을 타작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마도 보리타작일 터인데, 이 타작이 이루어지는 곳은 수염을 기른 훈장이 서탁을 앞에 놓고 일곱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기와집 마당이다. 각기 책을 펴들고 글 읽기가 한창인 학동들이 단정한 매무새를 하고 있다면, 타작꾼들은 웃통을 벗어젖히거나 머리에 질끈 수건을 동여맨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노동을 담당한 하층민과 글공부를 전유한 상층부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지만, 수확과 공부가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주시된다. 일찍이 맹자는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恒有産恒有心]”고 했다. 곡식으로 곳간이 차는 이 때가 교육에도 힘을 기울일 수 있는 때로 여겨졌던 것이다.

어린 자녀에 대한 교육은 그들의 신분을 복위시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눈치 챌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활동과 교육을 함께 보여주는 것은 조선 후기에 팽배한 교육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인간 농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교육의 즐거움 교육敎育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매를 들어 가르치고 어린아이를 통통하게 살찌운다’는 의미이다. 『맹자』 「진심편」의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그 중 세 번째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애써 지은 농사 수확의 기쁨과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 장면을 동시에 그린 것은 세속적인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즐거움까지 추구한 조선시대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표현한 것이다. 비록 출세를 위한 기본 덕목이 학문적 소양이어서 〈평생도〉에는 학습하는 장면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학습 장면은 도덕적으로 사는 법을 교육하는 것으로 그려진다.작자미상의 〈서당도〉는 화면 상단의 맨 윗부분은 비어 있고, 그 아래로 장독대가 있는 부엌간에서 앞치마를 두른 아낙이 소반을 받쳐 들고 서당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마구간에는 안장을 얹은 말과 마구들이 있고, 여물을 나르는 남자 뒤로 갓 쓴 젊은이에게 회초리를 맞는 학동이 있다. 훈장이 이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체벌은 스승의 명에 의해 내려진 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댓돌 위에는 신발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고, 학동들의 자세도 제멋대로이다. 그런데 마당에는 닭과 함께 학 두 마리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고 소나무와 매화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고한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애로움과 덕과 고결함이 점심참을 맞은 인간의 일상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서당에 대한 그림 중에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의 〈서당〉은 무엇보다 인물의 개성적인 표현과 상황전달이 뛰어난 작품이다. 연상을 옆에 두고 서탁을 앞에 둔 훈장의 난감한 얼굴 표정은 서당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훌쩍거리는 아이와 이를 지켜보며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거나 잔잔한 미소를 짓거나 노골적인 비웃음을 보내거나 질타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는 등의 학동들의 다양한 표정은 함께 학습하는 이들이 겪게 마련인, 동질감과 경쟁심리를 동시에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학동들의 표정이 천진하기 그지없는 어린아이들의 세계, 교육에 의해 사회적 약속인 도덕으로 무장되기 이전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인간 본성에 대한 화가의 시선까지 포착할 수 있게 한다.
맹모단기의 덕 인간의 본성은 선하므로 교육을 통해 진작될 수 있다는 맹자의 생각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훈화의 영향이 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을 잘 교육하기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은 교육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화인 동시에 백지처럼 하얀 본성을 훈화하는 과정에 교육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편,장성한 맹자가 공부를 하기는 하였으나, 미진한 채로 돌아오자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던 어머니가 하다만 공부는 이와 같다며 짜던 옷감의 실을 잘라버린 맹모단기孟母斷機(또는 단기지교斷機之敎)의 고사는 교육에 대한 부모의 헌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이다. 조선시대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글씨쓰기와 떡썰기를 겨룬 고사와 같이 자녀에게 몸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내용이다.조선시대에도 교육은 집안의 가장 중요한문제였는데, 김홍도와 김득신의 〈자리짜기〉에 이러한 부모의 자식 교육에 대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수록된 〈자리짜기〉는 화면 하단에 자리를 짜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운 밀짚을 엮어 자리를 짜고 있는 아버지의 신분은 망건 위에 사방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양반이다. 그의 오른쪽에는 물레에서 실을 잣고 있는 아낙이 있는데 옷차림이나 몸가짐이 정숙하다. 이들 뒤로 떠꺼머리 어린 아들이 뒤돌아 앉아 커다란 책을 펴놓고 막대로 짚어가며 큰소리로 글을 읽고 있다. 양반이노동에 종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즐거이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글 읽는 어린 아들을 교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다 판 옷감이며 자리는 이들의 양식이 되고 아들의 책값이 될 것이기에 그들의 노동은 좌절이나 궁핍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것이다. 아들의 또랑또랑한 글 읽는 소리야말로 이들 부부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김득신의 〈자리짜기〉에서 어머니는 직접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고 있다. 맹자 어머니가 그러하였듯 아들을 위하여 옷감을 짜는 것이다. 서당의 훈장이나 김홍도의 〈자리짜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방관을 쓰고 있다. 망건 위에 착용한 사방관은 유사들의 신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풍속화는 물론 당시 양적으로 증가한 양반가의 경제적인 몰락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 자녀에 대한 교육은 그들의 신분을 복위시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 눈치 챌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활동과 교육을 함께 보여주는 것은 조선 후기에 팽배한 교육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인간 농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잘 지은 일 년 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좋은 교육을 통한 인간 양성에서 비롯된다.
조은정│미술평론가 겸 미술사학자. 196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아르꼬스모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대원사 기획실장, 한국근대미술사학회 간사로 활동했고 제2회 구상조각회 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 조각미의 발견』, 『비평으로 본 한국미술』(공저) 등이 있으며 현재 한남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출처-기전문화예술 2005.9ㆍ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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