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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행_다시, 미술은행의 목적과 운영원칙을 묻는다

글 ㅣ 임창섭

2005년 8월1일부터 8일까지 미술은행Art Bank의 작품 구입제 중 하나인 ‘공모제’에 의한 작품구입 접수가 있었다. 이보다 먼저 종료되었던 현장구입제와 추천제에 의한 문제점들이 어떤 대안의 접점으로귀결될 지 주목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리란 전망이다.

신진작가의 창작할동 지원과 미술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한 미술은행제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그러나 특정학교와 지역 편중, 신진작가 지원을 무색케 하는 연령 배분이 제도의 취지를 흐리고 있다는 평가와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은행 정책이 성공하려면 운영의 주체가 공정성·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반기 미술은행 시행을 앞두고 재검토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인지살펴보았다.
미술은행이 시행된 후 첫 번째 결과가 나오자마자 미술계가 시끄럽다. 기성작가들만 포함된다느니, 지역 안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느니, 심사위원이 잘못한다느니, 갖가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판의핵심은‘미술은행 운영규정 제11조(작품 구입원칙)’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 듯하다.
'미술은행은 장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진작가의 창작작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여 창작활동 활성화에기여토록 하되…. 작품을 구입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조건을 고려하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은행은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성격을 갖는 중요한 기관이며 기업이다. 개인이 저축하면 그것으로 기업에게 산업자금을 대여해 주는 일로 이익을 내는 공적기관이면서 기업이 은행인것이다. 그러나 미술은행은 운영원칙에‘미술품의 구입 및 대여, 전시활동 등을 통하여 미술문화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국민의 문화향유권 신장에 기여하고, 미술작가에 대한 창작활동 진흥정책을 통하여미술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국내미술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한다’고 명시한 것처럼 기업적 성격은없고 공적기관의 성격만 있는 특별한 은행이다.
첫 출발의 결과만을 놓고 성급한 판단을 내린다고할지 모르지만, 미술문화를 자본으로 삼은 미술은행이 미술문화 활성화라는 공동 이익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 같은 예측 때문에 비난의 소리가 높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과 목표를 내세우고 최신의 운영방법을 가지고 있는 은행이라도 운영하는 주체가 잘못하면 파산한다. 미술은행도 마찬가지의 운명이 될지 모른다.
미술은행의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설립 목표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표가 불명확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신진작가들의 작품 구입으로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장이란 공급과 수요가 서로 부딪쳐 가격이 형성되는 곳이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공급은 많지만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특히 신진작가의 작품은 제한적인 가격 형성조차도 어렵다. 따라서 신진작가의 작품구입이라는 방법으로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상식의 오류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지는 의욕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양팔을 벌려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두 마리 토끼는잡을 수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위원회가 많다는 것이다. 운영규정을 보면 운영위원회가 있고, 추천위원회, 심사위원회, 게다가 가격심사소위원회를 둘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은행을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각 단계별 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들어난 이유이다. 여기에 교묘하게 숨겨진 맥락을 들쳐 보면, 각 위원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을 권력을 부여한 미술은행 설립 주체의 배려가 깔려 있다. 이 배려가 각 단계별 위원회를 설치하여 책임이라는 위험부담을 분산시켜 아예 책임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혹시 책임이 너무 막중하면 위원직을 맡지 않을 것같아서‘위험한 친절’을 베푼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출발한 미술은행이지만, 어찌 됐건 미술계에서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미술시장을 활성화시켜 보겠다는 의욕을 담은 미술은행제도는 그 동안 미술계가 바라던 제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미술시장이 조금이라도 활성화된다 싶으면 세무조사니 뭐니 하면서 시장의 싹을 잘랐던 정부가 미술시장을 위한 제도를 만든 것이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작 고질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은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주체들이다. 기회를 주면 잘할 것처럼 굴더니, 정작 기회를 주니까 일을 엉망으로 만든 꼴이다.
미술은행을 운영하는 주체들은 전부가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있는 이들은 작가, 이론가, 화상 등이다. 그런데도 미술은행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미술계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각 위원회와 위원이 만들어 낸 것이다. 위원이라는 역할을 친분이 있는 작가들, 앞으로 친분을 맺으면 좋을 작가들에게 생색내라고 부여한 것이 아닐 터이다. 미술은행 운영규정 어디에도 이런 항목은 없다.

정부가 제도를 마련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업주관을 맡은 미술은행의 상반기 사업이 완료되었다. 미술은행사업의 핵심은 작품의 구입과 활용에 있다. 이 두개의 핵심내용을 위해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그 틀에 의해 첫 번째 사업이 일단락된 것이다. 2007년 별도의 재단이 설립되기 전까지 미술은행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을 맡는다.

설사 어느 특정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라고 외압이 들어오더라도 미술은행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거부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위원이다. 또 공무원이 미술시장과 미술계의 어려움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점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설득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위원이다. 정작 미술문화의 활성화와 미술계의 발전을 고민해야 할 위원들이 너무 편안하게 미술은행을 운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미술은행이 상반기에 구입한 작품의 작가들을 연령별·장르별로 분석해 보면 이런 의심을사기에 충분하다.
미술은행의 취지를 살리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키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숨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대중이 미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미술은행이 어떤 경향의 작품을 어떻게 얼마나 구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진지한 검토와 반성 없는 위원들의 운영 결과는 미술시장에 더 커다란 문제로 작용해 미술계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책임 지지 않는 위원들 대신에 미술계가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미술계 스스로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을 아둔함을 발휘할지도 모르지만, 미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각은 높아질 것이다. 더욱이 이 모든 피해는 미술은행을 운영하는 위원들의 뒤를 이어 일할 많은 후배들이 입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언급되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미술계 구성원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누군가 외부에서 미술계로 던진 문제가 아니다. 더 좁게 말하면 우리에게서, 나에게서 비롯된 문제이다. 나에게서 비롯된 우리 미술계의 잘못된 사고와 행동이 만든 결과인 것이다. 미술문화의 미래를 생각하고 함께 힘을 합치려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로 인해 나타난 것이다.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개혁은 사회, 정치, 경제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도 개혁의 대상이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예술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예술작품이 이전의 것들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개혁인 것이다.
앞으로 미술은행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첫 번째는 목적을 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야 한다. 미술은행이라는 하나의 제도로 미술계에 산적한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 제도가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쇄신시키고, 국민의 미적 향수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에 맞는 명확한 방법이무엇인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각 단계별로 구성된 위원회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미술작품을 구입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만큼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저 자신의 주위에 생색낼일이 생겼다는 안이한 생각이 생기지 않도록 책임감을 부여해야 한다.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위원을 맡아달라는 의뢰를 당당하게 거절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정부에 의한 뽑기식 작품선정과 구입은 결국 화랑미술제를 비롯한 아트페어의 양상이 정부를 향한 해바라기성 작품들로 채워질 공산이 크다. 이는‘신진작가’ 창작 진흥이라는 정책을 무색케 하는 정반대의 논리이다. 새롭고 창의적인, 실험적인, 전위적인, 디지털 미디어적 성향이 강한 신진작가의 작품은 결코 이 자리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은행에서 구입된 작품이 공공기관에 대여되어 전시되고 있는 현장이다.

그리고 한번 더 말하지만, 미술은행은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일을 하는 은행이다. 그런데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데 공정성과 객관성이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데 엄밀한 공정성과 객관성이란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른 미적 안목을 가지고 있고, 작품에 가치 부여하는 정도가 다른데 어떻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미술작품 구입은 절대적 주관을 가지고 행해져야 하는 일이다. 단, 양심과 도리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절대적 주관이어야 한다. 이런 절대적 주관이야말로 다수가 공감하는 객관성을 끌어내는 척도이다. 또한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미술문화의 대중화가 아니다. 대중들의 미적 안목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미술문화의 대중화이다. 그리고 대중의 안목을 이끌어가야 하는 일이 미술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수비수가 많다고 골 못 넣는 선수는 ‘프로’가 될 수 없다.
임창섭│홍익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4년에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미술평단 평론공모에 당선하였다. 저서로는 『현대 공예의 반란을 꿈꾸며』, 『꿈을 그린 추상화가 김환기』와 『이 그림, 파는 건가요?』가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전시기획으로는 「달리는 전동차 미술관 WoW Project」(서울지하철 7호선), 「Dream Metro」(서울지하철 6호선) 등과 같이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출처-기전문화예술 2005.9ㆍ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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