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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자의 눈] 이 땅에 제대로 된 미술연구소를 허하라!

윤동희

--- 미술이론가의 사는 법에 대한 미술계의 고민이 필요하다

‘떠오르는 지식 패권’. 지난 해, 시사주간지 《한겨레21》http://h21.hani.co.kr은 삼성경제연구소(SERI) www.seri.org를 가리켜 이렇게 정의했다. 연구소 웹사이트 하루 평균 방문객 8만5천명, 하루 평균 열람 건수 130만건(2005년 기준)에 이르는 등 이곳이 우리 나라 지식 정보의 ‘허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단순히 대중의 눈 높이에 맞춘 지식 제공을 넘어 국가의 정책 방향의 흐름을 제시하고, 나아가 이데올로기까지 좌우하는 위치에 이르렀다고 그 주간지는 말하고 있다. 리포트를 쓰기 위한 대학생부터 ‘사오정’을 피하기 위한 직장인 그리고 경제전문가와 연구자까지,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까닭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참여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지난 200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주요하게 다룬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만든 것은 이 연구소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물론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우리 사회의 소수에 불과한 특정 계층에게 유리한 경제 정책을 옹호하거나, 다소 얄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실용적 정보에 치중한다는 점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연구소가 사회의 주요한 트렌드를 직시하고, 대학이라는 무능한 장막에 머물던 지식을 대중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굳이 미술을 얘기해야 하는 이 자리에 삼성경제연구소를 들먹이는 까닭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는 인문학 및 예술 연구자에게 머나먼 나라의 일처럼 비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연구공간 너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 벤치마킹 대상을 찾아서

인정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미술기자의 눈으로 볼 때, 근래 들어 큐레이터와 작가들을 둘러싼 환경은 눈에 띄고 나아지고 있다. 상당수 미술관과 갤러리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잡기 위해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고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비교적 잘 짜여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전속 계약을 맺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미술에 관한 글을 쓰며 먹고사는 이론가들의 삶은 여전히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미술공간에 큐레이터를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만, 이론가를 위한 공간은 넉넉하지 않다. 몇 안 되는 미술전문지에 원고를 기고하고, 작가들의 전시 도록 서문에 반가워하고, 보따리 장수로 불리는 시간강사 등을 전전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평생토록 공부만 할 수 있는 태생적 조건을 타고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미술이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KDI)’ www.kdi.re.kr 으로 상징되는 국가 경제연구기관과 기업에 속한 민간 경제연구기관 그리고 강연과 저술 작업 등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1인 경제연구소까지, 각기 다양한 형태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생산성을 창출하는 경영·경제 분야에 미술을 얹혀보는 것 말이다. 국내 사회과학 연구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연구공간 너머’ www.transs.pe.kr나 ‘철학 아카데미’ www.acaphilo.or.kr, 출판에 관계된 모든 것을 컨설팅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www.kpm21.co.kr 역시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가령 국공립미술관이 신분이 보장된 미술연구원을 양성하고, 사립미술관이 민간 경제 연구소가 담당하는 기능을 맡아주는 것 말이다.
여기에 이미 인터넷이라는 천혜의 환경을 이용하고 있는 소장파 이론가들의 자기 확장이 결합된다면 서구의 시선이 아닌, 우리만의 시선으로 현대미술을 읽어나가는 미술이론가들을 보게 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은 다양할수록 좋은 법이다. 하물며 인간의 정신 세계를 담보로 한 현대미술에서 다양한 입장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건 좀처럼 읽혀지지 않는 미술에 관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미술이론가의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할 때인지도 모른다.

| 윤동희·미술전문기자 hee@n-company.net

* tip _ 미술이론가를 향한 근심, 댓글에서도 드러나

이 글은 어느 미술전문지와 기자가 운영하는 페이퍼에 미리 소개한 바 있다. 특히 페이퍼에 실린 이 글에 관해 몇 분이 아래와 같은 댓글로 의견을 표한 바 있다(편의상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유○○ _ 동감.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미술관련 이론학과들의 입지가 좁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죠.

김○○ _ ‘먹고사는 일’에 밀려난 인문 과학. 여러 면에서 ‘삼성’의 독주가 심히 걱정스럽지만 인재를 곁에 둘 줄 아는 그들의 방식이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먹고사는 일’과 인문과학이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빨리 인식이 되어야 할 텐데요. ‘이 땅에서 이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현실이 될 날이 오기를…

신○○ _ 언제 그날이 올까요!! 미술이론가의 중요성!!!!!!!

주○○ _ 조금 다른 얘기지만 미술관련 이론학과들 사이에서도 빈익빈부익부는 생겨나는 듯합니다. 기존의 ‘미술사’만 중심이 되어서는 근본적인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요.

* http://www.abcpaper.co.kr
2006. 5. 4~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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