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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5) 달항아리

편집부



“어떻게 저리도 잘 생긴 것을 만들었을까”… 너그럽고 넉넉하며 천연스러운 미학

※ 이미지는 첨부파일 참조
▲ 백자달항아리(白磁大壺), 국보 제262호, 높이 49.0㎝ 입지름 20.2㎝ 밑지름 15.7㎝, 18세기, 우학문화재단.
조선 공예품의 대표작으로 백자 달항아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17세기에 등장한 높이와 지름이 거의 1:1을 이루는 둥그런 달항아리는 곡선의 흐름이 하얀 유색과 조화를 이뤄 다른 민족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의 미를 잘 보여준다. 이번 호에서는 아무런 무늬도 들어가지 않은 달항아리가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와 비교해 어떤 아름다움을 지녔는지를 세밀히 살펴보았다. / 편집자주
달항아리는 형태와 색택의 아름다움이다. 달항아리는 문양과 장식 없이 위에는 아가리가 있고 아래에는 굽이 있는 열사흘 열이레쯤의 둥근달과 같은 조각 작품이다. 아가리가 넓고 굽이 좁아서 상체는 정원은 아니나 풍만하고 하체는 아주 조금은 홀쭉한 편이다.
항아리의 키가 동체의 폭보다 조금 크고 하동이 조금은 홀쭉하여 상동보다 길어 보인다. 그래서 너그러우면서 준수하다. 태토는 순백이고 유약은 투명하여 당시에도 설백자라고 하였으며 그 색택이 밝고 명랑하다. 그러면서 형태나 색택이나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뿐 아니라 어느 항아리를 돌려보더라도 형태와 함께 색택 또한 모두 다르다. 항아리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전 세계에 수없이 많지만 우리 달항아리만큼 아무 장식 없이 너그럽고 넉넉하며 천연스럽게 잘생긴 항아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잘생겼다는 것은 어디가 어떻고 여기는 어떠하고 저기는 또 그러하다고 요리조리 조목조목 따져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형태와 색택의 자연스러움 極値 아주 오래도록 수천 번을 바라보아도 볼수록 어떻게 저리도 잘 생긴 것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고맙고 흐뭇해서 그저 참 잘생겼구나 하고 가슴속이 탁 트이고 상쾌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달항아리에 대한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자꾸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고 자칫 중언부언하여 잘생긴 달항아리에 누가 될까 저어함이 있다.
樹話 김환기 화백은 달항아리를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깊이 관조한 분이다. 수화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지평선 위에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있다. 굽이 좁다 못해 둥실 떠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는 틀림없는 한 쌍이다”, “몸이 둥근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나로서는 미에 대한 개안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내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은가.”
나도 40년 이상 달항아리를 보아 왔는데 선생의 글과 그림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달항아리를 깊이 이해하고 또 거기서 자신의 예술정신과 혼을 키워 위대한 예술가가 되실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하여 마지않는다. 달항아리는 크게 백자의 표면인 유약과 태토의 아름다움과 형태 즉 조형의 아름다움으로 나눠 볼 수가 있으며, 내면적인 조형정신의 세계를 또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높이가 40cm 이상으로 덩치가 크고 잘생겼다고 하는 항아리 수십 개를 면밀히 조사하였지만 유약과 태토가 다르며 형태도 조금씩 다르고 각 부위의 크기와 생김새가 다 달라서 서로 비슷하기는 해도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전체를 바라보면 다 같은 우리 항아리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것이 우리 미술품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온 우리 선인들의 마음자리와 습성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와 복숭아나무에 수천 개의 열매가 달렸지만 모두 조금씩 다르듯이 우리 항아리들도 자연에서 잉태되어 나온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항아리를 얘기할 때 앞에 내세울 큰 전제는 ‘항아리는 사람이 만들었으되 인위적인 흔적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박 넝쿨에 큰 박이 초가지붕위에 얹혀있듯이 닭이 알을 낳듯이 자연에서 빚어져 나온 것 같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항아리는 壺라 쓰는 둥근 것과 준(樽, 尊,)이라 쓰는 키가 큰 것 두 종류가 있는데 후자를 충이라고도 한다. 둥근 항아리는 그 속에 무엇이든 많이 담기 위하여 한껏 부풀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부풀리면 가마 안에서 반드시 주저앉기 때문에 正圓 쯤에서 그친다.
그런데도 달항아리는 형태상으로 정원이 없을 뿐 아니라 어느 쪽에서 보아도 좌우의 둥근 맛이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것은 많이 다른 것도 있다. 그래서 달항아리는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가끔 돌려놓고 보면 여러 개의 각기 다른 항아리의 모양을 감상할 수가 있다.
둥근 형태만 다른 것이 아니다. 豪氣나 作爲 부리지 않아 같은 크기라도 아가리(입, 口部)와 굽의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다른 것은 물론이고 항아리 하나하나마다의 아가리와 굽의 높이 깎은 모습 등이 조금씩 다르다. 이와 같이 여러 개의 항아리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항아리에서도 둥근 형태와 아가리, 굽 등에 차이가 있다면 어떻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 법하다.
완벽한 정원에 아무리 돌려보아도 좌우가 대칭이고 아가리와 굽의 높이가 같아 자로 잰 듯 반듯한 완벽한 항아리가 앞에 놓였다면 그 완벽함에 숨이 막힐 것이다. 달항아리는 부정형의 너그러운 둥근 맛과 아가리와 굽의 높이와 깎은 모습의 차이라는 것이 전혀 작위적이고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의 맛이 그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사기 장인이 물레위에서 항아리를 만들면서 쌓아올리고 깎고 다듬으면서 너무 호기를 부리면 작위적인 겉멋이 생기게 마련이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어 물레를 돌려 성형하면서 장인마다 조금 더 개성있는 조형감각을 살려냄으로써 조금 더 새로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깎았으되 지난 번보다 잘 되었구나 하고 마음이 흐뭇한 상태라면 거기서 새로운 맛이 생겨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기장인 당대에 되는 것이 아니고 수백 년 이어 내려오면서 그 시대시대마다의 조형성과 조형감각에서 아주 서서히 새로운 창조를 위한 노력이 쌓였기에 가능하였다. 특히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특별히 고뇌하고 무한한 진통을 겪었던 17세기라는 시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암울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면서 거기 항상 여리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한 줄기 빛(자아의 인식, 자성, 실학)이 그 시대의 희망과 생명선같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17세기는 임진·정유의 왜란을 겪어 우리 백자산업이 황폐할 대로 황폐한 시대였으며 광해군의 번민과 인조의 반정, 병자, 정묘의 호란, 명나라의 패망 등이 우리 민족을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몰고 간 시대였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도 자아의식이 예전보다 뚜렷해지면서 끊임없이 예전보다 조금씩 새롭고 다른 여러 가지 조형적 모색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대였다.
17세기의 항아리들을 보면 형태, 아가리, 굽 등이 16세기 후반 가까운 무렵까지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태와 아가리와 굽의 모양을 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조형들은 이후에도 없다. 별의별 항아리가 다 있고 거기다가 별의별 아가리와 굽이 생겨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후퇴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꼼꼼히 전후시대를 살펴보면 17세기의 이러한 모색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몸부림으로 참으로 대담한 변화요 새롭고 위대한 모색이었다. 새 시대에는 모든 형태의 항아리와 항아리의 아가리와 굽 등이 크고 잘생긴 달항아리로 귀일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조형뿐만이 아니다. 17세기 항아리들은 태토와 유약도 여러 가지여서 백자의 색택도 어둡고 갈색이 비낀 것이 많고 푸른색도 있으며 양질백자도 있고 조질 백자도 있어 항아리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였다.
그런데 새 시대에는 색택도 밝고 명랑해진다. 태토가 순백이고 유약은 투명한데 아주 조금 푸른빛을 머금고 있어서 상쾌한 맛이 있다. 달항아리는 자연에서 빚어진 것 같이 천연스럽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고 아랫몸체가 상체보다 약간 홀쭉하며 공중에 떠 있는듯하여 준수한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넉넉한 품성을 지녀서 너그럽고 원만하다. 이 세상의 희로애락을 모두 다 포용하고 감싸 안고도 태연자약하다.
수화선생 말씀같이 달항아리는 조형과 색택에서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으면서 결점도 찾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사실은 수많은 결점이 자연과 같은 아름다움을 창출하였기 때문이다. 자연보다 아름다운 인간이 만든 조형은 없다. 백자 달항아리(둥근 항아리, 壺)와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키가 큰 항아리, 樽)는 조선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서슴없이 조선시대 백자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할 것이다.
희로애락을 포용하는 泰然自若 지금까지 남아있는 달항아리는 크고 잘생긴 항아리가 우리나라에서 열 개는 꼽을 수 있고 아마 전 세계에서 찾아본다면 몇 개는 더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잘생긴 포도문 항아리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항아리 하나 밖에 없다. 이 포도문 항아리(높이 53.8cm)외에 국보로 지정된 자그마한 철화포도문항아리(높이 30.8cm)가 있고 역시 자그마한 철사와 청화로 그린 포도문항아리 등이 있지만 크고 잘생긴 형태나 포도그림의 기막힌 맛은 두 개의 작은 항아리에 비하여 큰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리 큰 과언은 아닐 것이다.
조선백자는 아무런 문양장식이 없는 백자가 기본이어서 실제로 백자 가마를 조사해보면 19세기 이전까지는 문양이 있는 파편 자료는 눈을 씻고 봐도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파편이 모두 백자 일색인 것이다. 순백자는 백자문화의 본바탕이고 순백의 항아리들은 항아리의 기본이고 그림이 그려진 것은 19세기 이전까지는 예외적이고 희귀한 예이다.
따라서 크고 작은 순백의 항아리가 당시에는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순백의 크고 잘생긴 둥근 항아리와 키 큰 항아리들은 모두가 전세품이기 때문에 한말의 혼란기와 일제 침략시대, 6.25 사변 등 혹독한 시련기를 수없이 겪으면서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 시대 백자 항아리에 그림을 그린 예가 아주 희귀한데 그림을 그린 예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천에 만에 하나이고 보면 눈물이 나게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자철화포도문큰항아리(樽)가 바로 그 예다. 이 항아리의 상체는 둥근 항아리와 거의 같다. 하체는 상체와 반대로 홀쭉하게 조금 길게 밑으로 빠지다가 좁은 굽에 이른다. 상체의 불룩한 선과 반대로 하체의 오목한 선이 넉넉한 상체를 받치고 있다. 상체의 넉넉하고 풍만한 선과 이와 반대로 하체의 홀쭉하게 휘어들어간 선이 어울려 이 항아리의 형태에 특별한 운치를 불어 넣었다.
이뿐 아니라 항아리의 넉넉한 상체에 포도송이가 달려 있는 포도넝쿨을 능숙하고 활달한 필치로 그려 넣었다. 상체에 여백을 넓게 남겨두고 어깨 바로 밑에서 시작된 포도 넝쿨이 비스듬히 아래로 뻗어 항아리의 동부 중심까지 이른다. 순백의 백자피부에 담갈색과 진한 갈색으로 그린 포도넝쿨은 대담한 사선의 동적구도로 포도넝쿨이 우에서 좌로 뻗어 내리고 있다.
항아리상체양면에 비스듬히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포도넝쿨은 그림이 아니라 백자 피부 위에서 살아서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포도잎과 열매에 절묘한 농담의 차가 있음은 물론 양면에 있는 포도그림에도 서로 다른 농담과 필치로 흔연한 변화를 주고 있다. 이러한 구도와 필치와 농담의 구사는 가히 신필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백자의 명랑한 색택과 넉넉하고 준수한 형태에 포도넝쿨은 금상첨화요 화룡점정 이상의 별격의 운치를 자아낸다.
크고 잘생긴 백자 달항아리 앞에서도 고마움과 놀라움과 감탄으로 마음 설레지만 포도문항아리 앞에서도 또 다른 고마움과 놀라움과 감탄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것은 두 걸작품이 각기 다른 조형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 정양모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 필자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장 및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경기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의 도자기’, ‘고려청자’ 등이 있다.

※ 출처-교수신문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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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正圓의 美
우학문화재단의 달항아리가 유일한 국보라면 리움미술관의 달항아리는 가장 먼저 지정된 보물이다.
몸체가 완벽히 대칭을 이루어 완전한 원형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드문 것인데, 위의 달항아리가 불균형에서 아름다움이 나온다면, 이 항아리는 완벽한 균형감에서 또 다른 美를 구현한다.
순백의 태토 위에 투명한 백자 유약이 씌워졌으며, 몸체 중간의 이음새가 말끔히 다듬어지고 굽의 깎음새도 단정하다.
굽은 수직이며 입술 바깥이 볼록하고 둥글게 마무리되었다. 표면의 얼룩은 안에 무엇을 담았다가 스며든 것으로 여겨지는데, 옅은 갈색 얼룩이 독특한 조형미를 형성하고 있다. 
 
※ 출처-교수신문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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