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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의 도시

편집부


백지숙(인사미술공간 프로젝트 디렉터)

1. 역사가 없는 도시
현대미술에서 도시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도시는 공간이자 구조이고 일상이자 네트워크이며 무브먼트이자 기호이고, 무엇보다 국제전시이자 비엔날레 그 자체이다. 그런까 지금, 도시는 현대미술과 동의어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미술현장에서 벌어진 매크로급 국제전들이나 메가로급 비엔날레들은 명시적이던 함축적이던 간에 도시라는 화두와 연관이 있다. 도시가 현대미술의 신천지로 떠오르게 된 것은 그곳이 역사의 압박과 단선적 시간의 압력 속에서 벗어나, 공간의 장소성과 다성성을 복원하기에 적절한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 우리 앞에 펼쳐진 현대미술의 도시는 거대한 기계적 신경망과 복잡한 중세적 미로들로 연결된, 인식불가능한 영역, 차라리 무의식의 심연처럼, 일상적으로 길을 잃고 마는 이상한 지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근대도시의 마천루를 수평적으로 펼쳐놓은 이 포스트모던정글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좌표는 차라리 지도가 아니라 기억의 단서를 통해서 얻어질지도 모른다.
2. 공통기억의 함량 또는 기억투쟁
이런 맥락에서 2005년 한국의 민중미술을 새삼 추적해보는 것은 광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공통의 기억이, 한반도 안팎을 관통하는 도시들의 새로운 역사를 구술하는 새로운 축으로 설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면 민중미술은 실패한 기획이고 조급한 결론이었지만, 그 도전과 탐구와 모험의 흔적은 분명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 민중미술의 두터운 체험 터널을 통과하면서, 미학적 서발턴(subaltern)으로서, 지역 미술가들은 이 자신들이 미술의 질서 잡힌 세계체제로 표상했던 것이 실상은 쉽게 하나로 통합할 수 없는 타자적이고 이질적이며 분산적인 지역미술들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의 과정은 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현장에서는 카니발적인 흥분과 소란과 활력과 시끄러움을 동반하고 있었고, 이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러니까, 민중미술 이후에는, 더 이상 서구 현대미술이나 지역미술을 대하는 종래의 관습적 태도를 답습하지 않아도 될만한, 자신감 즉 이른바 ‘뱃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뱃심을 갖고 지금 80년대의 한국 민중미술은 평양, 베를린, LA, 그리고 뉴욕, 네팔, 벨그레이드로 떠나고 있다.
3. 정치와 미술 또는 민중미술과 모더니즘
정치와 미술이 맺는 관계방식은, 유형화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에 따라 특수한, 수많은 양상과 경우의 수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모든 정치적 미술은 국제미술의 대립어라고 할 수도 있다. 민중미술은 식민과 냉전, 분단과 독재라는 조건에서 정치와 미술의 다양한 상관관계를 다각도로 ‘실험’해 본 지역미술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민중미술의 체험은 모든 미술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정치와 미술은 궁극적으로 어느 한 쪽으로 포섭되지 않는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교훈도 주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한국 모더니즘이야말로 모더니즘을 가장한 키치일 수밖에 없다는 추문을 밝혀낸 바 있다. 한국 모더니즘은 역사적 상황과의 정치적-미학적 연관, 특히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보여주었던 그러한 연관을 결여한 채 서구의 모더니즘을 외형적으로 모방하고 흉내를 내면서 성장해왔다. 이 경우 한국 모더니즘은 서구 모더니즘을 진정한 것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싸구려로 대량생산해내고 모방한, 하나의 키취가 된다.
나아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현실’에 대한 감각(이 감각은 필연적으로 예술가적 노동과 상상의 방향타가 된다)을 상실했을 때 민중미술이 곧바로 키치화되고 만다는 역설도 보여주었다. 역사적 상황이 바뀌자 정치적 각성과 맞물려 있던 예술적 소박함 때문에 민중미술은 쉽게 키취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가 더 민주화 되고 자본주의적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이 역사적-미학적 상황에서, 민중미술 작품은 소재나 발상이나 기법에 있어서 전근대적인 민속적 키치로 전락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상업적 대중시각문화의 보급은 이런 상황을 가속화시켰다.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중미술가들이 새로운 변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거나 극복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관성적 스타일과 기법을 고집하면서 단순히 반복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 만족하게 될 때, 민중미술은 키취로 타락하고 시장은 이를 꿀꺽 삼켜버린다.
민중미술의 관계설정에 대한 실패와 그에 따른 반성은 한편으로는 서구 모더니즘의 지역적인 재구성이라는 미완의 기획을 연장하게 했고,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모더니즘의 잔여범주에 대한 추적이라는 반작용을 낳기도 했다. 한국 모더니즘의 방계에 해당했던 70년대의 잊혀진 개념미술가들의 어법과 방법론을 당대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등 사회주의리얼리즘 시기를 빠져나온 발칸지역의 젊은 작가들에서 6-70년대 자국의 개념주의 미술에 대한 추적을 발견한다.) 물론 주로 담론의 차원에서 그리고 민중미술의 후예를 자처하는 극소수의 예술가들을 통해서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과연 얼마나 포지티브한 생산성을 갖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의 이러한 뒤늦은 모더니즘에 대한 ‘구애’는 90년대 이후 이어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의, ‘한국적’ 왜곡 및 자가당착적 수입구조의 재판(再版)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적합성을 가늠하기 더욱 어려워진 지점이 있다. 그러나 박찬경의 <파워 페시지> 같은 작품은, 이렇듯 중층화된 권력통로의 방해공작을 뚫고, 생산과 수용의 각 단계에서의 더블 코드 즉 지역성과 전지구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주의와 정치적 미술의 교묘한 기호의 탈착(脫着)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포스트민중미술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와중에서 다소는 작위적으로 그리고 다소는 즉흥적으로 튀어나오게 된 것으로, 어찌 보면 이는 정치과잉이라는 한국사회 특유의 조건에 서 착상된 또 다른 방언(사투리)이자 (종교적)방언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에서 열거한 민중미술의 정체규명을 둘러싼 시끌벅적함 한 켠에서, 일군의 작가들이 성장하고 있었고, 이들은 몇 가지 핵심적인 활동의 시소러스를 구성해 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계급보다는 주체를, 거리보다는 도시를, 혁명보다는 개혁을, 재현보다는 언어를, 매체보다는 기호를, 소통보다는 성찰을 주요한 개념어들로 뽑아낸다. 이들의 등장은 동구권의 몰락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 전지구화된 자본주의, 초고속정보화시대라는 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며, 문화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공공적 미술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문화적 변수를 매개로 한다. 세계사회 전반의 광범위한 층위에서 이루어진 “great divide”의 여파 때문일지 아니면 사회적 변화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예술 고유의 지체현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비유하자면 80년대의 어떤 사회적 유전자가 예술세대에서 격세유전한 셈인데, 이 유전자의 줄기세포를 새로 이식한 ‘패거리’들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자체가 점점 더 예술가에게 뿌리 깊게 적대적이 되어간다는 통찰력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가난한 미술과 포틀라취로서의 미술이 공동전선을 펼 수도 있으며, 유연한 자본을 능가하는 보다 유연하고도 지능적인 실천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제 문제를 일러스트하는 ‘미니멀한’ 미술이 아니라, 특정 국면에 개입하여 새로운 사고와 실천의 공간을 열어젖히는 ‘맥시멀한’ 미술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진정으로 환영할 수 있게 된다. 전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미술은 바로 이 모바일 전선을 따라 종종 지역을 관통하는 공통의 의제를 도출한다. 도시를 미디어로 하는 그룹 플라잉시티의 슬로건과 프로덕션 그리고 그들의 활동방식은 급변하는 한국의 근대적 시공간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 자유의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중미술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의태(擬態)’할 수 있는 지 적시해준다.
우리가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이론적 개념에 기대서 미술의 세계체제라는 것을 상정해 본다면, 서구 현대미술은 그 헤게모니의 우산을 나머지 지역의 복수태의 미술 위에 뒤덮어 씌우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미술의 세계체제는 서구 현대미술의 정전 체계와 미학적 규범을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지역 미술들에 강요한다. 각 지역미술의 입장에서는 미술의 세계체제 안에 편입되기 위해서 이 기준을 내면화시키고 거기에 정신적으로 종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치적 예술로서 한국 80년대 민중미술이 그것의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갖는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면, 그러한 미술의 세계체제가 반드시 돌파되거나 파열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켰고, 또 그 세계체제를 해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탐구했었다는 데 있다.
이제 “최대한의 소통”에서 관건은 소통의 대상이나 지역이 아니라 소통의 언어가 되었다. 이는 누구와 소통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언어로 소통하느냐가 중요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중심’ 언어로 회귀하는 번역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의 부정적 효과는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하고 겉 넘어 버리게 되거나, 아니면 정 반대로 지나친 세부의 전달에 사로잡혀 오그라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융복합 미디어가 일반화되면 될수록 번역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그만큼, 도리어, 소통의 불투명함, 소통의 오해는 자명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 만연한 오역의 시대에, 우리는 그저 번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억압과 긴장에서 유래한 문제적 이디엄들을 크로스체크하면서, 일정한 통역의 기준들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지역 대 지역 간의 직접 소통은 우리를 보다 신중하고 한층 래디칼하게 만들 것이다. 가장 간단한 플래시 언어와 간결한 사운드를 조합하여 각 지역의 역사적 금기들을 위반하고 있는 장영혜중공업의 웹아트가 그 실례인데, 이들의 작업은 일종의 정치적 ‘이모티콘’을 새로운 번역의 언어로 제시한다.
4. 작가들의 도시
이러한 민중미술의 기억의 자장 속에서 압축성장과 개발독재의 독을 먹고 급성장한 근대도시는 이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퇴한다. 분단국가의 미래와 현재를 대표하는, 베를린과 서울을 가로지르며, 고승욱 Koh Seung Wook은 개발육체의 시간성을(<철인삼종경기Triathlon>), 노재운Roh Jae Oon은 시각적 정치학의 구조물을()를 각기 삼단화의 형식을 통해 때로는 말할 수 없이 비속하게 때로는 놀랄 정도로 장엄하게 구축해낸다. 다른 한편, 냉전과 통일의 현장으로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짝패는 평양이다. 박찬경Chan-Kyong Park의 <비행flying>과, 민영순Yong Soon Min의 작품 <비 오는 날의 여인들The Rainy Day Woman#63- 반갑습니다>은 평양에 대한 서울의 노스탤지어 또는 서울에 대한 평양의 선망을 간단하게 압축시켜 버린다. 이 두 도시 사이는 박찬경의 작업이 보여주듯 물리적으로는 겨우 1시간 거리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민영순의 작품이 제시하듯 비전향장기수들의 투옥기간을 모두 합산한 것만큼이나 길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글로벌화된 도시는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타운”의 비균질화된 영토의 조합이 되었다. - 이태리타운,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 등 이주민들의 게토로 시작되었던 그 타운의 총합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90년대 서울의 철거민운동 지역을 답사하면서 사진아카이브를 만들었던 신지철Shin Ji Cheol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LA, 뉴욕의 여러 “타운”들을 가로지르면서 수 년동안 도큐멘트를 해왔다.(<해브어나이스데이HAVEANICEDAY>) 성공을 위해서 미국과 유럽으로 떠나 코리아타운을 형성했던 한국의 이민세대들에게 한국으로 일거리를 찾아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타자에 다름 아니다. 믹스라이스mixrice는 이 도시이민의 역사를 역전시켜, 관광의 도시를 글로벌 마켓의 노동도시로 표상시킨다. 동남아의 이주노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믹스라이스의 활동은 이들이 부딪히는 각종 사회문제가 인종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다시금 노동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 이 발제문은 전시 “the Battle of Visions' (Dr. Peter Joch & 백지숙 공동기획, Kunsthalle Darmstadt, 2005. 10 2~12.3)를 위해 쓴 글의 일부를 편집,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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