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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7) 담양 소쇄원

편집부


가지에 스치는 바람, 잎새에 머문 햇살, 그 한적함과 넉넉함
원림이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조경삼아 적절한 위치에 정자와 정원을 조성한 곳을 말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산수가 빼어난 곳에 원림을 지어두고 학문과 예술을 즐겼다. 많은 전문가들은 담양의 소쇄원을 한국 최고의 원림으로 꼽아왔다.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계곡에 집이며, 나무며, 바람이며, 햇살이 서로 어울려 기막힌 시각적 아름다움과 청각적 즐거움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전남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사적 제304호)은 1530년경에 梁山甫(1503-1557)가 조영한 별서(別墅)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저택에서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別邸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림이란 정원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원이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소쇄원을 조영한 양산보는 15세에 조광조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스승이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화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의 무상함을 깨닫고 고향에 은둔하게 되었다. 이때 양산보의 나이 17세였으니 창암촌의 계곡에 소쇄원을 꾸미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소쇄원은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풍광을 관상하며 여유를 즐긴 장소요, 이상을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산실이었다. 김인후를 비롯하여 송순, 정철, 송시열, 기대승 등 최고의 지식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사유와 만남의 지평을 넓힌 곳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에 있어서 수양과 학문뿐 아니라 풍류와 사귐을 통한 선비문화의 형성 또한 중요한 일이었으니 그를 위한 장소인 정자나 별서를 경영하는 일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서 무등산 원효계곡에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식영정, 환벽당, 독수정 등의 정자원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소쇄원은 주거기능을 갖춘 별서로서 한국 최고의 별서원림이라 할 것이다. 양산보에서부터 3대에 걸쳐 조영된 소쇄원에 대한 예전의 모습은 송시열이 그린 그림을 1755년에 板刻한 ‘瀟灑園圖’가 있어 짐작할 수 있었으나 목판자체는 안타깝게 분실되고 말았다. 특히 이 목판화에는 양산보의 사돈인 김인후가 1548년 당시 소쇄원을 보고 쓴 48수의 시제가 새겨져 있으니 이를 ‘소쇄원48영’이라 한다.
그렇다면 소쇄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왜 소쇄원을 최고의 원림이라고 칭하는가. 소쇄원은 우선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그 사이를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 수많은 나무와 화초, 몇 단의 축대와 단아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아담한 공간으로 인지된다. 그러나 이들 이외에도 ㄱ자로 꺾인 담장과 조그마한 草亭,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 물을 흘러가게 하는 홈이 파인 통나무, 네모난 연못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로 가득하다.
축대 위에 있는 조그마한 초정은 소쇄원에서 가장 오래된 터에 근래에 옛 모습을 본 따 새로이 지은 것이다. 이를 待鳳臺라 한다. 봉황을 기다리는 곳이라 하니 귀한 손님 오기를 기대하는 정겨움이 가득하다.
대봉대 뒤쪽은 담장에 박힌 愛暘壇이란 글씨처럼 따뜻하게 담으로 둘려 쌓여진 마당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효의 공간으로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따뜻한 곳이다. 애양단을 지나 계곡을 건너려면 조그마한 통나무 하나로 줄타기하듯 지나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겸손하게 한다. 떨어질까 하여 양반 걸음 위엄을 갖추면서 걸을 수 없다.
통나무 다리 밑으로는 五曲門이라는 글이 새겨진 담장 밑으로 흘러 내려온 물길이 다섯 번 굽이쳐 돌면서 작은 소(沼)를 이루기도 하고 일부는 갈라져 통나무 홈통을 타고 작은 연못으로 내려간다.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위에서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시며, 거문고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여유롭다.
계곡물은 소쇄원의 영역을 둘로 나누어 놓는다. 풍부하지 않지만 면면히 이어져 소쇄원의 생기를 돋우는 생명수가 되고 있다. 조그마한 연못이라 칭하는 조담(槽潭)에서 머무르고 小瀑을 만들어 떨어져 십장폭포를 이룬다. 계곡물은 굽이굽이 오곡류를 이루며 흐르다 떨어지나 일부는 통나무홈통으로 연결되어 두 개의 네모난 연못에 이른다. 이 물은 물풀과 물고기를 키우고, 넘치면 계곡으로 떨어져 조그마한 水車를 돌리기도 하였다.
소쇄원의 사랑채와 같은 光風閣에 이르는 길은 위와 아래로 통한다. 손님이 저 아래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 광풍각 아래에 이르러 霽月堂에 있는 주인을 부른다. 광풍각은 온돌방의 따뜻함과 협소함, 마루의 시원함, 작지만 당차고 아담한 공간의 핵심으로 모든 것이 모이고 확산되는 정점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 앉아서 외부공간을 느끼며 주변을 바라보는 것은 소쇄원의 백미이다.
제월당은 몇 개의 단을 올라 높이 위치하는데 梅臺의 길다란 담장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른다. 제월당은 구들방과 루마루가 있어 안채와 같다. 높은 기단을 오르는 단이 있고 넓지 않은 토방에는 신방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마루 위에 걸린 각종 詩文에는 시간의 흐름이 쌓여 있다.
특히 김인후가 1548년에 지은 소쇄원48영이 돋보인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대숲의 바람과 소쩍새 울음, 엷은 그늘과 밝은 달, 그리고 취중에 나오는 시와 노래다. 청각적인 소리, 시각적인 빛과 그늘의 대조, 그리고 관람자의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소쇄원의 진가를 포착한 것이다. 소쇄원의 구성과 영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입구 아래에서부터 뒷산인 옹정봉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넓고 가득하나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자연한 가운데 있으며 소박하고 개인적인 정서가 농축된 소쇄원에 비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창덕궁의 후원은 궁궐의 정원답게 다양한 시설들이 있어 호화롭고 다소 인위적이며 세련미가 가득하다. 창덕궁 후원은 금원이라 하였는데 이는 왕실만의 것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었으며, 일제가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하여 왕조의 권위를 떨어뜨리고자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면서 비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창덕궁의 후원은 부용지, 애련지, 옥류천 등의 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수많은 정자와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활엽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우리 전통원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물과 나무를 중심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특히 우리의 연못은 전통적으로 중앙에 둥근섬을 만들었는데 이는 天圓地方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중국과 일본은 타원형이거나 굴곡이 많은 모습이다. 규모에 있어서도 우리연못은 중국의 연못처럼 턱없이 넓어서 위압감을 주거나 일본의 것처럼 적고 인공적이어서 답답함을 주지 않는다.
소쇄원은 건물이나 나무, 계곡을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출렁이는 나뭇가지,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떨어져 구르는 낙엽,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가득한 푸르름, 위로 속삭이듯 빛나는 햇빛 등을 비롯하여 자연 속에 녹아난 한적함과 넉넉함, 이러한 아름다움은 결코 하나 둘에 한정되거나 끝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 드나들었던 소쇄원은 시각적 차원을 넘어선 청각적인 정원이며 궁극적으로 시적 감응을 불러일으킬 문학적인 정원이다.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합치하는 곳, 그곳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청각과 음영의 효과, 이제는 우리도 문학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소쇄원의 건축적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 천득염(전남대·건축학부)
필자는 고려대에서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의 명원 소쇄원’ ‘한국의 건축문화재’ ‘운주사’ ‘광주건축10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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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24) 中·日 원림과의 비교
中, 호화로운 경관에 기암괴석 … 日, 깔끔하고 섬세한 人工美
한국의 원림을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하여 평가절하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기암괴석과 연못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경관을 이루는 중국이나, 일본의 원림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하고 섬세함으로 이루어진 세련된 아름다움을 한국과 비교하여 수준이 낮다고 비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의 자연환경이나 선조들이 지녔던 조형의식이나 지적 감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서 원림의 근본이념이 된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와 순응의 지혜로움 그 자체였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원림은 기암괴석을 쌓는 중국정원이나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인위적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정원과 다르다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주에 위치한 중국의 대표적인 원림 졸정원은 전체부지의 6할정도에 이르는 인위적인 넓은 연못, 여럿이 연결된 연못속의 섬, 녹음이 우거진 언덕, 태호석으로 꾸며진 가산과 다양한 건축물들로 이루어져 중국최대를 자랑하는 사가원림이다. 졸정원이 조성된 시기는 명대의 왕헌신이 관직에서 추방되고 실의에 빠져 고향에 돌아 온 1509년으로 그 건립시기와 배경은 소쇄원과 비슷하다.
졸정원은 넓은 중국의 정원답게 12,500평에 이르는데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구역별로 각각 형식을 달리 하고 있다. 더욱이 연못에 면한 건축물들은 여러개의 다리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주변을 거니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관상지점을 설정하고 관상로를 조성하였는데 이는 상대적인 대비와 자연의 경치를 차경하는 등의 기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 1100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는 수많은 정원이 있다. 대표적인 정원은 금각사정원을 비롯하여 2조성정원, 용안사방장정원, 은각사정원 등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정원구성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곳은 은각사정원이다. 足利義政이 1482년에 조영한 별장형식의 산장인 東山殿을 禪寺로 바꾼 것으로 지금은 사찰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전형적인 일본정원으로 무로마치시대에 만들어진 池泉廻遊式庭園이다.
몇 동의 정자처럼 보이는 불교전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넓은 연못과 그 안의 섬, 섬과 뭍을 연결하는 다리, 정원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릉, 수많은 수목 등으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정원이다. 錦鏡池 안에 있는 中島는 仙人洲가 떠 있는 모습이다. 연못을 만들기 위해 호안에는 많은 돌을 사용하였고, 연못가운데에 있는 浮石은 조그마한 기암들이 사용되었다.
半島나 中島에 가설된 돌다리도 주변경관과 잘 어울린다. 깨끗한 연못의 수면에는 연못가에 있는 건물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새하얀 모래로 이루어진 枯山式庭園의 바닥은 물결모양이 표현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있는 원추형으로 만들어진 月臺는 일본정원의 참신한 독창성을 지닌다. 이는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함축된 공간이기도 하다.
한중일 동양3국의 정원은 나름대로 특징이 뚜렷하다. 이는 자연환경과 자연을 인식하는 조형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적 정서로 보면 자연을 흉내 내려고 인위를 가하는 것은 과장과 허세이며, 지배의 대상으로 여겨 다듬거나 꾸미는 것은 경망스러움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주는 善, 그 자체에 적응하며 동반하는 지혜가 바로 한국적 조형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그 실질적인 예를 소쇄원이나 창덕궁 후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천득염(전남대·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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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24) 전문가 조사: 한국의 최고 원림
유교이념과 자연의 조화
소쇄원의 아름다움과 함께 학자들의 찬사를 받은 곳이 창덕궁의 후원이다. 최고의 원림으로는 소쇄원을 꼽았지만 창덕궁 후원 또한 우리 한국의 미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정원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소쇄원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으로 지정되었던 것도 창덕궁 후원의 가치를 더해준다.
15세기 초에 조성된 창덕궁 후원은 13만 5천여평의 넓이로 자리하는데 건물의 위치 등을 고려할 때 부용지 주변, 애련지 주변, 관람정 주변, 옥류천 주변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연못과 그 주변에 방형, 육각형, 다각형, 부채형의 ‘건축기법이 특이하고 기묘한 정자가 여러 동 있으며’ 건축들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어 그 주위의 자연 경치와 잘 어울린다’(장경식)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창덕궁의 후원은 낮은 야산과 골짜기등 본래의 지형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꼭 필요한 곳에만 다양한 연못, 정자, 괴석 등의 인공을 가하고 있지만 주변과 괴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움은 결국 한국인의 전통 미의식과도 맥을 잇고 있다.
한국인의 미의식, 즉 친자연의 경향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곳으로 ‘인위적인 기교나 정형화된 규칙성 장식, 겉치레 등의 인공적인 요소가 최소화 된’(임석재) 창덕궁 후원을 앞세워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창덕궁 후원은 한국 정원의 典型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정원을 만드는 전문 책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수학)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그 역할 면에서 창덕궁의 후원은 ‘왕가의 휴식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고 후원조성의 원리상 정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원기회복과 재충전의 공간’(이종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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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 ★★★★★★★★★★ ㅣ 창덕궁 후원 ★★★★★★ 경주 안압지 ★★★★★
※ 추천해주신 분들: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렬 한예종, 김지민 목포대, 이강근 경주대, 장경호 기전문화재연구소,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 주남철 고려대, 천득염 전남대 이상 총 9명 가나다순.
※ 출처-교수신문 2006.12.11
▼ 눈 내리는 겨울, 좌측에서 바라본 광풍각 모습이다.
▼ 소쇄원 계곡, 낮게 흐르는 계곡물은 넘실넘실 흐르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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