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헤르메스의 빛으로](3) 천지창조 순간에 서서

편집부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가운데 ‘아담의 창조’.
아무것도 빛나지 않는다. 이 어둠 속에는 모든 것들이 있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마침내 어둠을 쪼개며 어슴푸레 빛이 열린다. 저 멀리로부터, 검은 바닥 위로, 밝음과 어둠 사이를 가르는 선이 그어진다. 그 선 아래는 땅, 그 위는 하늘. 땅을 덮고 있던 어둠의 덮개를 서서히 들추면서, 빛은 초록의 산과 숲을 드러내며, 푸르게 굽이치는 강과 바다를 펼쳐놓는다. 새들이 쏟아져 나와 창공을 날고, 사람들이 새싹처럼 돋아나 바쁘게 오고간다. 온갖 빛깔과 형체를 뿜어내는 아침 풍경은 마치 세계가 새롭게 태어나는 천지창조의 모습이라 해도 좋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창세기·기원전 15세기말?) ‘하나님’이란 유태교의 ‘여호와(야웨)’인데,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 역 성경’에는 ‘테오스(Theos)’로 표현돼 있다. 그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기원전 8세기)도 ‘신통기(神統記)’(116~138행)에서 천지창조를 노래한다. 태초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카오스(Chaos)’다. 흔히 ‘질서’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와 대립되는 ‘혼란’으로 이해되지만, 원래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빈 그릇’을 뜻한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거대한 몸집의 신(神·theos)이다. 그가 창조주인가? 유일한 신인가? 아니다.
태초에 카오스가 품어낸 것은 ‘가이아’(Gaia·땅)다. 가이아를 품은 카오스는 짙은 ‘어둠(에레보스)’을 아들로, 깜깜한 ‘밤(닉스)’을 딸로 낳는다. 성경에서와 달리 어둠과 밤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신이다. 최초의 남매인 에레보스와 닉스는 맑은 ‘천공(아이테르)’과 밝은 ‘날(헤메라)’을 낳는다. 환한 하늘이 짙은 어둠으로부터 열리는 찬란한 아침 풍경, 유태인에게 그것은 유일신 여호와가 창조해 인간에게 베풀어 준 은총이지만, 그리스인에게 그것은 어둠과 밤의 사랑이요, 천공과 날의 힘찬 탄생이다. 유태인의 신은 세계 너머에서 세계를 창조하고 연출하지만, 그리스인의 세계는 신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는 신 자체이며, 신들의 운동이다.
한편 헤시오도스가 그려주는 ‘가이아(땅)’는 모든 것을 낳는 여신(女神)이다. 그녀는 ‘하늘(우라노스)’을 낳아 위로 들어올리고, 많은 ‘산(우로스)’을 낳아 품에 안는다. 평평한 땅이 울퉁불퉁 굴곡을 드러내며 산과 산맥을 빚어낸 것이다. 꿈틀거리며 솟아나는 지평선을 상상하라. 발기하듯 돋아나는 산들의 융기, 심장의 박동 곡선처럼 일렁이며 봉우리와 골짜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가이아는 ‘바다(폰토스)’를 낳는다. 땅이 녹아내려 물이 되고, 거대한 바다를 낳은 것이다. 하늘도 산도 바다도 성경에선 창조주의 작품들이요, 객체이지만 헤시오도스에겐 신들의 탄생이며 운동의 주체다. 시인은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의 내면에 역동하는, 보이지 않는 신들의 모습을 꿰뚫어 본 것이다.
빛으로 그어지는 하늘과 땅의 구분선은 날마다 어둠 속에서 지워지고, 어둠 속에서 하늘과 땅은 한덩어리로 뒤엉킨다. 가이아가 아들인 우라노스와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살 섞음. 그로부터 대양(大洋·오케아노스)과 별(휘페이론), 기억(므네모쉬네)과 법도(테미스)…그리고 시간(크로노스)이 탄생한다. 막내로 태어난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압하고 최고의 신이 된다. 시간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운명. 세월의 흐름을 도대체 무엇이 이겨낼 수 있겠는가? 세계는 크로노스의 힘 앞에 시들고 만다.
하지만 유태교의 신은 시간을 제압한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며, 시간 속에서 다른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고 섭리한다. 시간은 피조물을 규정하는 물리적 존재조건일 뿐, 언감생심 신이라니! 성경의 신은 유일하다. 여호와 외에 신이란 없다. 인간만이 “그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창세기) 신의 여운과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신일 수는 없다. 인간은 그 이외의 어떤 존재도 신으로 섬겨서는 안된다(출애굽기). 여호와는 창조자로서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이며, 피조물을 초월한 존재다. 누가 그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는 없다가 생겨난 것이 아니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간 너머에 그저 그는 ‘있다’.
그런데 그는 피조물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없는 곳이 없는 존재라고 한다. 만물과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떨어져 있지 않은 존재. 마침내 신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나타난다.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요한복음) 인간이 된 신(神), 신비로운 존재의 전이. 그가 예수이다.
반면 헤시오도스는 어둠과 빛, 밤과 낮, 하늘과 땅 등 자연 현상을 단순하게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고 신비로운 힘을 지닌 신 자체로 보았다. 그뿐이 아니다. 기억과 시간, 사랑, 법도, 지혜, 운명 등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들도 신으로 형상화된다. 모든 현상은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아니다. 모든 현상은 신비로운 힘을 가진 신 자체의 현시다. 평범함 속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정신세계. 이곳에서 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과 어울리고, 헤라클레스처럼 인간마저 신이 되기도 한다. 철학자 탈레스는 말했다.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고”, “신은 우주의 정신이며, 만물은 살아있고, 신령으로 충만하다”라고.
-경향신문 2007.1.2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