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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31)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편집부


全身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힘··· 인자한 미소와 조화 이룬 이상적인 美
종묘란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을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최고의 사묘건축으로 단연 종묘정전을 으뜸으로 뽑았다.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와 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종묘는 유교 건축으로서 사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단순하고 절제된 기품있는 미를 보여준다.

압도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석굴암 본존여래좌상을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석조 조각으로 추천했다. 석굴암의 본존여래좌상은 신앙적인 의미와 조형적인 가치가 훌륭히 조화를 이룬 신라 조각 미술의 결정체이다. 세계적인 보물로 당당하게 평가받고 있는 토함산 석굴과 석굴암 불상들을 살펴보며, 신라인들의 佛國土 염원을 느껴보고자 한다.
석굴은 인도에서 발원하여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서 번창했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믿어지고 있는데 그 결실인 토함산 석굴, 이른바 석굴암은 세계 석굴의 정점이고 그 석굴의 불상군들은 세계 불상조각의 꽃이라 말해지고 있다. 사실 토함산 석굴이 세계 사람들 입에 널리 회자되고 마침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토함산석굴과 그 불상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유사에는 경덕대왕(景德大王) 때의 재상이던 김대성(金大城)이 전세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창건하고 현세부모를 위해서 불국사(佛國寺)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다. 전세 부모는 태종 무열왕계의 역대 대왕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토함산 석굴은 국가왕실을 위하여 창건된 국가왕실의 사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김대성이 혜공왕 10년인 774년에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국가에서 마침내 완성했다고 한 사실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토함산 석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챠이티야인 예배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제일 짜임새 있는 굴이며, 본실과 전실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본존불과 여러 보살, 신중들은 사실적인 아름다운 조각으로 세계 제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토함산 석굴의 구조는 과학적으로도 치밀하고 기하학적으로도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화강암 판석을 짜서 방형의 전실(前室)을 구축했고 짧은 연도를 사이에 두고 둥근 원형의 본실(本室)을 판석으로 짜올리고 있다. 원형은 하늘이고 방형은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전방후원식(前方後圓式) 석굴인 셈인데 이러한 구도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 뜻하는 바의 천지(天地)인 우주와 천은 진리이고 방은 세속이라는 이른바 진리와 세속이 하나의 세계라는 불교의 우주관과 핵심의 진리 사상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진리관과 우주관의 상징은 입면구조(立面構造)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석굴의 입면 구조는 모두 원과 원이 이루는 조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역시 원(圓)이 상징하는 연기의 불교진리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토함산 축조석굴 속에는 총 38구(원래40구)의 불상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각형의 전실(前室)과 보다 작은 사각형 연도, 그리고 둥근 주실(圓形主室)의 평면상에 돌을 짜서 벽과 천정을 축조한 축조석굴이자 불상을 예배하는 예배굴 이른바 차이티야(Chaitya)굴인데 굴의 벽면을 따라 부조상을 배치하고 주실 중심부에 두리새김의 본존불상을 배치하였고, 주위 벽 2층 감실 속에 보살상을 봉안한 것이다.
이른바 커다란 판석을 사용하여 전방후원식(前方後圓式)으로 짠 축조 석굴로 주실은 본존 부처님과 이 주위를 상하로 나누어 아래쪽에는 두 천신(二天), 두 보살, 십대제자, 십일면관음보살이 배치되고 위의 감실안에 보살들을 안치하여 중층구조(重層構造)의 부처님의 세계(佛世界)를 나타내고 있다. 이 앞의 사각형 전실에는 8부신중(八部神衆)과 금강역사, 연도에 사천왕을 배치하여 부처님을 지키는 외호세계(外濠世界)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외호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하게 나타낸 석굴사원은 이들 불 · 보살 · 천신(天神)무리의 유기적이고 조화 있는 배치로 장엄하고 조화 있는 아름다움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원과 사각형의 대비와 좌우 대칭적인 불상배치는 균제와 통일미를 묘사한 것이며, 더구나 주실의 원과 불상대좌의 원, 돔의 둥근 천정, 원과 원의 중심공간원이 이루는 삼원(三圓)의 절묘한 원음미(圓音美)는 통일신라가 지향했던 이상미를 적절하게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38구(원래 40구)의 불상군은 크게 세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본존불(本尊佛)과 인왕상, 사천왕상과 주실벽 주위의 모든 도들새김의 부조상 양식군, 둘째 주실 감실속에 봉안된 두리새김의 보살상 양식군, 셋째 전실벽에 도들새김한 8부중상(八部衆像) 양식군 등이다.
제1양식 불상군은 본존불이 중심인데 515cm의 16尺 이른바 장육불상(丈六佛像)이라는 거대하고 위엄찬 형태의 조형성과 전신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힘과 얼굴과 근육에 나타난 긴장된 탄력감 그리고 불의(佛衣) 등에 표현된 간결한 조형성 등이 조화되어 이루는 이상적인 사실양식이다.
즉 8각 원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습은 위엄하고 당당한 좌상의 형태로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마군을 항복 받고 있는 항마촉지인상이다. 계란형의 위엄찬 얼굴, 반개한 눈, 꽉 다문 입 등 활력 넘치는 모습이며 상체의 우람한 형태,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넓고 힘찬 자세 등 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이상화된 위용 넘치는 거구의 장육존상(丈六尊像)으로 세계 조각사에서 길이 빛날 위대한 불상이라 할 수 있다.
원형의 본실에 봉안되어 있는 본존의 명칭에 대해서는 이론들이 있지만 교주 석가불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석가불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마왕이 계속 괴롭히자 땅의 지신(地神)을 오른손으로 가리키면서 내가 깨달았음을 마군에게 알리라고 한 성도(成道)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석굴암의 석가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영원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대승적 석가불상을 형상화하며 신라인들은 물론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고자한 것으로 믿어진다.
이들 제1양식의 모든 상은 약간씩 다른 특징도 보이고 있다. 즉 제석 · 범천의 2천신, 문수 · 보현 등 2보살, 10대제자, 11면 관음상 등은 8등신의 늘씬하고 세련된 형태미, 우아하고 아름다운 양감, 치밀하면서도 힘찬 선묘, 화려하고 호화로운 치레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고, 사천왕상은 위엄차고 늠름한 형태미, 억세고 자유분방한 측면성, 치밀하면서도 세찬 선묘 등 통치자의 위엄과 권위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仁王像)은 험상궂은 얼굴에 남성미 대회에서나 봄직한 툭툭 불거진 근육 등 나체적인 남성미, 힘에 넘치는 고부조의 양감, 역동감나는 세찬 선묘 등 남성미의 절정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11면 관음보살상은 본존불상 뒷벽면의 정 중앙에 안치한 부조상인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얼굴이 풍만, 우아하고 신체는 늘씬하고 우아하며, 천의는 물결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고 영락이나 팔찌 등 장신구들이 정교하고 호화찬란하여 뛰어난 기량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보경사 11면관음상이나 일본 관음상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묘한 11면관음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제2양식 불상군은 본실 감실 속에 봉안된 8구의 보살상(유마거사상 포함)은 제1양식과는 커다란 차이는 없다. 다만 제1양식에 보이는 간명하고 웅대하며, 세차고 늘씬한 특징은 나타나지 않고, 우아하고 세련되며 풍만하고 온화한 특징만 강조된 것이다. 특히 오른손을 내려 오른발을 감싸고 세운 무릎 위에 왼손을 손등으로 갸우뚱한 뺨에 대고 있는 고혹적인 제2상은 감각적인 조각미의 절정을 나타내고 있다.
제3양식 불상군은 8구의 8부중상인데 1 · 2양식과는 여러모로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체적인 비례감각과 단정 온화한 인간적 형태미 좌우 대칭적인 규칙성과 정면성 그리고 둔중하면서도 규칙적인 선묘 등
현실적 사실주의 표현이 강조된 제3양식의 8부신중상 가운데 龍의 모습
제1, 2양식의 이상적 사실미 보다 한층 변모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가운데 천(天)과 용(龍)의 상에서 보이다시피 얼굴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온화하고 평안하며, 자세도 무척 자연스럽고 대범해서 현실적인 인체모습을 훨씬 닮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소 경직된 면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1, 2양식은 8세기 중엽 때에 절정을 이룬 이상적 사실미의 완성작품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경덕왕때(742~764) 조성했다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제3양식은 이상적 사실미에서 변모된 현실적 사실미가 강조된 것으로 김유신묘 12지상이나 경덕왕릉 12지상 등과 함께 8세기의 4/4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삼국유사에서 말한 석굴암이 완성된 때인 8세기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이 석굴암 불상들은 8세기 후반기에 조성된 걸작품으로서 사실에 가까운 인체미를 종교적으로 이상화시켜 숭고함과 신비함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세계 최고의 이상적 사실조각을 완성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상적 사실조각의 최고를 자랑하는 인도의 굽타불상양식과 중국의 성당양식 등을 종합해서 신라식의 이상적 사실조각으로 완성한 이 석굴암 불상이야말로 우리는 토함산 석굴조각양식이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 문명대 동국대· 불교조각사

필자는 동국대에서 ‘석굴암 불상조각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한국의 불상조각’, ‘토함산 석굴’, ‘한국불교미술사’ 등이 있다. 현재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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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度· 中國 석굴 조각과의 비교
친근한 사실적 표현 돋보이는 석굴암 불상의 原流
석굴사원이란 쉽게 말해서 바위를 뚫어 조성한 사원이라는 뜻이다. 바위 속의 굴실이 금당(金堂)이 되고 강당(講堂)이 되고 승방(僧房)이 된다는 것이다.
인도는 혹독한 무더위 때문에 수도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도하기 적합한 곳은 자연동굴이었다. 수도자들의 수가 증가하자 자연동굴로써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인공으로 석굴을 개착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불교도들이 가장 많이 석굴을 조성했는데 장려하고 정교하며 절묘하게 아름다운 굴실이어서 세계적인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석굴은 예배굴(禮拜窟 = 單一窟)과 수행굴(修行窟 = 複合窟) 등으로 나누어 지는데 예배굴은 탑이나 불상을 봉안하고 예배만 하던 굴실이며 수행굴은 예배실, 강당, 승방 등이 함께 있는 굴실이다.
토함산 석굴은 불상을 봉안하고 예불하던 예배굴실이다. 따라서 토함산 석굴의 원류는 인도의 예배굴에 있다. 예배굴은 차이티야라 부르고 있는데 인도 아쟌타 석굴 가운데 9, 10굴과 19, 26굴 등이 가장 유명하며, 초기 차이티야 가운데 바쟈석굴 등도 저명한 편이다. 초기(소승불교) 챠이티야 굴에는 탑을 봉안했지만 후기(대승불교)에는 불상을 봉안하거나 초기석굴의 탑에 부조불상을 첨가하기도 했다.
서역과 중국에도 수많은 석굴이 조성되었다. 키질 석굴, 돈황석굴, 운강석굴, 용문석굴, 천룡산석굴 등은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불후의 걸작으로 손꼽혀지는 대표적인 석굴들이다.
이 가운데 토함산 석굴의 원류가 되는 대표적인 석굴은 운강20굴, 용문 빈양중동석굴이나 봉선사동 석굴, 돈황 328굴이나 천룡산 18굴 등인데 석굴의 조성기법이나 봉안불상 등이 꼭 일치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토함산 석굴은 바위를 뚫어 개착한 석실이 아니라 판석을 짜서 조성한 축조석굴이기 때문에 이들 기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 보다는 파키스탄의 스와트, 붓카라, 제3사지석굴이나 서역의 베제클릭석굴 또는 남조의 저명했던 혜원 스님이 조성했던 동림사의 불영굴 등이 그 원조라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토함산 석굴불상의 원조는 인도의 나식석굴 불상, 아쟌타 26굴 항마성도상이나 칸헤리 석굴 불상 또는 중국 용문석굴 빈양중동굴의 본존이나 봉선사동 불상군 그리고 천룡산 18, 20굴 등의 불상군 등이라 할 수 있다.
양식상 석굴암불상의 원류는 용문석굴 봉선사동 석불군 등이 대표적이지만 이들은 초기 사실양식이어서 다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보다 친근성 있는 사실 조각은 인도 사르나트 초전법륜상, 천룡산 18굴, 보경사 항마촉지인석불상 등을 손꼽을 수 있지만 이들은 토함산 석굴 본존불상이나 주위제상들에 비하면 치밀 정교한 배치구도나 정교 우아한 조형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토함산 석굴의 불상군은 단연 독보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 문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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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31) 전문가 조사 :한국최고의 석조 조각
신라인의 염원 스며든 아름다움의 극치
세계 어느 유적보다도 아름다운 조각솜씨와 당당한 건축적 구조를 자랑하는 석굴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한국 최고의 조각으로 석굴암의 본존여래좌상에만 표를 던지는데 아쉬움이 남아서였을까.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입상과 금강역사상 역시 이에 버금가는 수작으로 꼽았다.
석굴암 본존불의 뒷면 둥근 벽의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11면관음보살상은 그 양식적 특성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끈다. 이 부조상은 머리 위에 작은 아홉 개의 얼굴이 있고 그 위에 관음의 얼굴 하나가 더 있어 본체와 합해 모두 11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얼굴이 11면이나 되는 것은 중생의 고통을 두루 살펴보기 위한 자비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머리가 다소 커 보이긴 하지만 신체 전반에서 보이는 우아한 형태미는 그 어느 조각보다 뛰어나 이 불상이 왜 가장 중요한 본존불 바로 뒤에 배치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길고 늘씬한 몸에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 온몸을 덮고 흐르는 영락(纓珞)과 정교하게 조각된 귀걸이나 목걸이 등은 그 화려함을 더욱 극대화한다.
석굴암의 전실을 떠나 주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면, 금강역사상이 각1구씩 배치되어 있다. 금강역사상은 보통 ‘인왕상(仁王像)’ 또는 ‘야차(夜叉’)라고도 불리며, 언제나 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석굴암의 다른 조각상들보다 고부조로 만들어져 위력 있는 금강역사의 모습이 한층 두드러진다
두 금강역사의 머리 부분에는 둥근 모양의 두광(頭光)이 있는데, 이는 '석가의 신성한 지혜'를 상징한다. 이는 석굴암의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굳세고 강인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신성한 지혜’까지 함께 갖추고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즉, 금강역사가 단순히 힘으로써 외부의 위협을 제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혜로 그러한 위협을 설득하고 항복시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요소를 하나의 작품에 담은 신라인들의 솜씨와 정신이 놀랍기 그지없다.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 석굴암 11면관음보살입상★★ 석굴암 금강역사상★★
>>추천해주신 분들: 강희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곽동석 국립중앙박물관, 배진달 용인대, 이주형 서울대, 임남수 영남대, 임영애 경주대, 정은우 동아대, 최성은 덕성여대 이상 총 8명 가나다순.
/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 출처-교수신문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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