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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39) 예천 용문사 목각탱

편집부


극락왕생·上品으로 태어나고픈 ‘간절한 소망’
목각탱은 평면적인 불교회화를 나무 조각으로 입체화시킨 것이다. 오직 조선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특징적인 종교 미술품이다. 강렬한 명암대조가 두드러지며 나무로 조각해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유마리 학예연구관은 목조각이라는 재료는 다르지만 작품에서 표현하려는 주제가 같다는 면에서 <관경변상도>와 비교하면서 심도 있게 분석했다. /편집자 주
1684년에 조성된 예천 용문사 목각탱은 목조 아미타삼존불좌상 뒷면에 봉안된 후불목각탱이다. 이는 조선후기에 집중된 7점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아미타후불탱화를 나무 조각으로 입체화시켰다. 예천 용문사 목각탱은 일반적인 아미타불화와 다르게 하단부의 연꽃에 九品이 먹으로 쓰여져 있어 그 내용이나 도상이 흔치 않다. 구품이란 불교의 일파인 정토교에서 나눈 계위(階位)를 말하는 것이다. 구품과 아미타극락회가 결합된 것은 이러한 목각탱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도상은 1341년에 조성된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의 아미타경 사경변상도와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채색불화로 그려진 예가 없었기 때문에 고려말에서 조선초 사이에 유행한 관경변상도(극락도)가 조선후기 목각탱으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아미타경 사변상도와 관경변상도에는 둘 다 ‘아미타삼존불과 구품연못’이 한 組로 등장한다. 그러나 관경변상도에는 원인(序分)과 결과(16觀)라든지, 현실세계(序分)와 극락세계(16觀)가 극명하게 대립되어 아미타경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극락왕생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경변상도를 통해 극락왕생을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토(淨土) 아미타사상을 극대화시켰다.
원래 용문사 金堂을 창건할 적에 봉안됐던 이 목각탱은 나무에 도금을 하고 尊像의 머리와 이목구비 등에 부분적으로 채색했기 때문에 화려하며 강렬한 느낌을 준다. 세로 265cm, 가로 218cm의 직사각형 화면을 두른 좌우 틀에 화염불꽃모양의 장식판을 붙인 목각탱 형태이다. 사각형의 나무틀에는 각 장면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명문과 畵記 외, 梵字와 한자, 팔괘문양, 연꽃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아미타극락회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미타극락회는 화면 한 가운데 키모양의 광배를 갖춘 아미타불을 두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에는 여덟 보살과 두 제자를, 아랫단에는 사천왕을 새겨 넣었다. 이 아래는 극락구품연꽃이 넝쿨처럼 좌우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강조하였다.

목각탱 하단장면은 연못을 대신한 청화백자꽃병에서 솟아나오는 9송이의 둥근 연꽃 안에 각각 ‘上品上·上品中·上品下, 中品上·中品中·中品下, 下品上·下品中·下品下’ 의 먹글씨 외에도 ‘當極樂之界寶池九品’ 의 명문에 의해 극락구품연꽃임을 알 수 있다. 구품연못에 반드시 등장하는 왕생자는 구품의 등급을 표시한 연꽃으로 암시되었지만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1782)의 경우에는 구품 연꽃 안에 왕생자를 볼 수 있다.
구품은 觀無量壽佛經變相圖(관경변상도, 극락도)에 주로 그려진다. 경변상도란 경전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관경변상도는 관경을 說하게 된 동기를 표현한 관경서분변상도와 관경16관변상도로 구분되기도 하고, 한 화면에 그려지기도 한다. 서분변상도는 인도 마가다왕국의 아사세태자가 父王을 害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비극을 묘사한 것이며, 본변상인 관경16관변상도는 극락정토를 관상하기위한 16가지의 방법을 그린 것이다.
이는 아미타불화 가운데 아미타극락신앙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불화라고 볼 수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관경도가 經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반면 조선후기 목각탱의 작가는 보다 대중의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 아미타삼존불(9관-11관)의 극락회와 구품(14관-16관)으로 압축하면서 관경16관변상도와 같은 내용이면서 보다 훨씬 표현하기 쉬운 아미타경을 뒤늦게 채용하여 인상적인 목각탱이 창조되었다.

<염불왕생극락도>라고도 할 수 있는 구품(14관-16관)은 각각 제14관의 上品上生者, 上品中生者, 上品下生者, 제15관의 中品上生者, 中品中生者, 中品下生者, 제16관의 下品上生者, 下品中生者, 下品下生者의 九品으로 세분되기 때문에 흔히 구품이라고 한다. 즉 “수행이나 신앙의 정도에 따라 아홉 종류의 인격의 차가 있으며 그에 따라서 극락왕생하는데 시간적 차이와 정토국의 영접을 받는데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상품상생자는 1일 내지 7일만에 극락에 왕생할 수 있으며, 아미타삼존불이 구름을 타고 왕생자의 집으로 온다.
반면 하품하생자는 五逆 내지 十惡을 범한 愚人이기 때문에 惡道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나 임종 때 至心으로 南無阿彌陀佛을 염불하면 면죄 받아서 극락왕생할 수 있다. 그러나 十二劫이 지나야만 구품연못에 비로소 연화가 피게 된다. 이러한 하품하생자는 흔히 ‘투명한 연봉오리 안에 꿇어앉은 왕생자’나 아직 열리지 않은 ‘연봉오리’로 상징된다. 이와 같이 상품상생자와 하품하생자는 큰 차이가 있다.
화면 중앙에는 서방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불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극락회를 조각하였다. 수많은 佛土가운데 아미타불이 거주하는 곳을 西方淨土, 즉 極樂이라 한다. 극락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는 곳으로,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중생이 염불을 하고 一念이라도 至心廻向하면 곧 왕생할 수 있게 해 주는 부처님으로, 임종시 서방에서 聖衆이 와서 그 사람을 맞이해 간다고 한다. 이러한 아미타불토가 묘사된 목각탱은 ‘像三尊後佛木幀大彌陀會’ 뜻 그대로 아미타극락회는 아미타불좌상의 좌우에 입상의 여덟 보살과 사천왕, 두 제자가 3단으로 배열된 모습이다.
높은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상은 상반신을 약간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른손을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양 무릎 부근에 위치한 오른손 바닥은 아래로, 왼손 바닥은 위로 향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손모양은 앞 시대와는 구별된다. 나발(螺髮)의 머리 가운데 반달모양의 중앙계주와 육계(肉) 위에 낮은 원통모양의 頂上계주가 장식되었으며 방형의 얼굴표정은 엄숙하다. 두꺼운 大衣자락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모양으로 덮고, 대좌 사이사이에 대의자락이 길게 늘어져있다. 키형광배에는 연당초문·태극문·팔괘문·귀갑문 등이 선각으로 새겨져있다.
여덟 보살은 여의가지를 든 문수보살·연봉오리를 든 보현보살, 손에는 淨甁을 얹은 연화가지를 든 관음보살·經冊을 얹은 연화가지를 든 대세지보살, 상단에는 금강저를 얹은 연봉오리를 든 금강장보살·劍을 든 제장애보살이 짝을 이루고 있다. 연꽃모양의 용화수와 봉오리를 각각 양손에 든 미륵보살과 錫杖을 짚고 寶珠를 든 지장보살이 대칭으로 배열되어있다.
불상과 닮은 보살상은 방형 얼굴에 4등신의 체구, 두터운 天衣, 신체에 비해 얼굴과 손, 발, 持物 등이 강조되었다. 미륵보살과 제장애보살은 복부에 花紋 장식의 腹甲 및 무릎의 甲帶 등을 착용하고 있다. 아미타불 좌우로 석가불의 협시인 문수보살·보현보살이 배치된 점이 특이하지만 지장보살이 등장했으므로 畵記에 적힌 대로 아미타극락회가 분명하다.
합장한 老비구인 가섭존자와 젊은 아난존자는 무릎 꿇은 자세이다. 하단의 검을 든 남방증장천왕, 여의주와 용을 든 서방광목천왕, 비파를 든 동방지국천왕, 幢과 寶塔을 든 북방다문천왕은 투구 혹은 보관을 쓴 무인상으로 갑옷에 부리부리한 눈 등 위엄을 갖춘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미타극락회 사이로 연봉오리·연꽃·연잎 줄기, 구름 등이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은 극락이 연꽃으로 덮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각 존상의 특징은 전면에 배치된 환조의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과 유사하지만 단신의 신체 등 전체적으로 다소 경직된 것은 화면의 크기에 비해 많은 상을 조각해야 되는 부조상이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인 듯하다.
반면 다종다양한 연꽃과 연봉오리, 연잎, 연꽃을 뒤집은 모양의 天蓋, 최상단의 불법을 듣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는 부처 등, 운동감이 나타난 극락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이 목각탱은 일반적인 아미타설법장면에 관경 또는 아미타경의 구품을 첨가해, 극락왕생, 더 나아가 극락에 上品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영가천도(靈駕薦度)의 대중적인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 유마리 / 국립고궁박물관·학예연구관

필자는 동국대에서 ‘한국 관경변상도와 중국 관경변상도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경주 남산 9세기 마애불상의 고찰’, ‘조선조 아미타불화의 연구’외 다수가 있으며, 공동 저서로 <불교회화>와 <고려시대 오백나한도의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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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관경변상도와의 비교
中, 97점 대부분 당대 작품···日, 카마쿠라시기 전후 성행
5세기에 성립된 관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나 극락왕생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한 관경변상도는 唐代(618-907) 가장 성행했던 경변상도로 아미타불화 가운데 기본이 된다.
중국 북쪽 돈황에 위치한 막고굴은 366년부터 元代(1227-1368)에 걸쳐 조성된 수많은 石窟 중 492개의 굴에 그려진 불교벽화와 막고 17굴 장경동에서 발견된 천여 점의 탱화로 유명하다.
이 중 2백여점의 아미타불화 가운데 97점의 관경도(벽화84점, 탱화13점) 대부분은 唐代 작품이다. 이후 관경변상도는 강남 사천 대족 석각으로 이어져 발전한다. 대족 석굴의 石刻은 唐末이래 南宋에 이르기까지 조영이 계속되었던 곳으로 석조각 대부분이 北山과 寶頂山에 집중되어 그 광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하고 있다.

보정산 석굴 대불만(大佛灣)의 말굽형 계곡에는 남송대 석각이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거기에는 불교, 유교, 도교 등의 彫像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경변상이 거대한 불·보살상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일반 신도들의 모습이 당시의 풍습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걷는 사람은 불교설화 안에 살아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제18龕의 마애조상인 관무량수불경변상은 그 규모(높이 8.1m, 폭 20.2m)도 대단하지만 밀가루로 빚은 듯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느낌의 조각술은 북방과는 매우 다른 남방 특유의 精致함을 보여주고 있다.
상부의 장대하고 비만한 아미타삼존불 아래, 염불왕생의 ‘三品九生’이 넓게 펼쳐져있다.
16관 중 아미타삼존불(9관-11관)과 극락구품(14관-16관)장면이 강조된 반면 나머지 觀(1관-8관, 12관, 13관)이 북산석굴 제245龕 唐末 관무량수불경변상과는 달리 대칭을 이루지 않은 것은 요철이 있는 마애의 특성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많은 장면을 간단, 명료하게 압축해 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고부조·환조·저부조·선각 등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구품연못, 즉 극락에 다시 태어난 왕생자는 갓난아기인 동자로 환생하였는데, 연꽃 위에 꿇어앉은 자세로 아미타불을 향했으나 등을 보인 모습, 아직 열리지 않은 연꽃 속에 얼굴만 내민 모습 등 다양하다.
물결이 표시된 이 구품연못에는 동자를 연꽃대좌로 맞이하는 불·보살상 외, 연꽃·연봉오리·연잎 등이 가득하며 각 장면마다 사각형의 석판에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관경서분변상도가 생략내지는 축소된 대신 구품이 강조된 조선조 관경변상도는 보정산 석각관경변상에 가깝다. 즉, 돈황의 관경변상도가 서분과 16관이 한 폭에 모두 표현되었다면, 南宋代에는 서분이 생략되고 구품이 부각된 관경변상도가 한국으로 유입되어 조선조 아미타정토도 관련 불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관경변상도는 唐代 대두되었고 일본은 카마쿠라시기(鎌倉 : 1192-1333)를 전후로 성행했으나 고려말 조선시대 관경변상도는 보다 많이 남아있어서 그 발전과정은 한국불화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중국, 일본의 관경변상도는 지역별, 시대적인 특징이 나타나지만 축약된 관경변상 내지는 아미타경이 유일하게 도상화된 용문사 목각탱이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조선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부조된 존상의 조각수법이 다소 평판적이지만 업보에 따른 극락왕생의 의미를 간결하게 구품연꽃으로 상징화한 화면 구성은 앞시대의 구품장면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조선조후기의 미의식을 대변하는 걸작품이라고 하겠다. /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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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39) 전문가 조사: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
강렬한 명암대조 … 입체적 조형미 일품
예천 용문사 목각탱 ★★★★★ |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 ★★
화면을 불화의 배치 구도와 동일하게 하면서도 뛰어난 장식성과 치밀한 구성을 선보이는 목각탱. 목각탱은 나무에 부조(浮彫)로 새겨 회화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을 모두 담아내야 한다. 보통 본존불상을 장식하고 그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강렬한 명암 대조가 빚어내는 입체적인 조형미가 일품이다. 그 가운데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예천 용문사 목각탱이 단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선정된 한국 최고의 목각탱으로는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이 추천됐다.
실상사 목각탱은 1782년에 제작된 것으로 화면을 상하단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전반적인 크기는 가로 183cm, 세로 181cm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유려한 옷주름이나 인자하게 웃는 표정 등은 한 장의 통나무로 조각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게 한다. 하단에는 광배가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이, 상단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한 네 보살상과 두 제사상을 배치했다. 불상의 형태는 얼굴과 신체 모두 사각형이며 근엄하면서도 친근함이 넘친다. 조선후기 목조탱 가운데 가장 간략한 배치구도를 갖고 있다. 확실한 제작연대와 정교한 세부 조각이 돋보여 조선 후기 목각탱화 가운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추천해주신 분들: 강희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곽동석 국립중앙박물관, 배진달 용인대, 이주형 서울대, 임남수 영남대, 임영애 경주대, 정은우 동아대, 최성은 덕성여대 이상 총 8명 가나다순.
※ 출처-교수신문 200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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