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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날 길 없는 인문학의 꽃

편집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졸지에 실직자가 되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누구나 실직의 두려움으로 자유로운 국민이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떠 오른 청년실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냥 하염없이 노는 남자가 100만을 넘고 있고 경비원이나 청소원 같은 직종의 인력을 공모하면 고 학력자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그 경쟁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이는 그만 큼 살기가 팍팍해졌다는 반증일 터인데 그나마 이런 삼디업종의 일자리라도 미술동네 특히 ‘인문학의 꽃’이라고 하는 미술사, 박물관학, 미술관학 전공자들, 미술이론전공자 등등의 수많은 고학력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에게 일자리는커녕 계속해서 교통비만 받더라도 책사보고 공부할 수 있는 자리라면 가리지 않을 이가 허다하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현실이다.
공급은 꿈틀, 수요는 찔끔
이러한 공급과잉 현상은 1980년대 이후 예체능대학의 무한정 신설과 졸업정원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선발한 대학생들을 학교와 정부당국의 허언으로 졸업정원의 적용을 받지 않고 모두 무사하게 졸업함으로써 비롯된 일이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이 정부 들어 잘 나가는 몇몇 코드 맞는 386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386세대들은 사회에 나오는 순간 이미 고학력 저임금의 구조 속에 내 던져진 셈 이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만한 경제적 구조와 생산의 틀을 갖추어 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권력과 벼슬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투신 한 것처럼 행동하는 일부 정치권력들은 여기에 취해 손을 놓고 모든 것을 ‘민간’과 ‘경쟁’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고자 했다.
그 결과 수요를 예상하지 못했거나 수요를 창출할 능력도, 계획도 없는 채 양산된 고급학력자들은 이제 70년대 고졸자 수준의 삶과 사회적 인정 속에서 체념한 채 살아가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큰 양극화의 주인공들이 되고 있다.
요즘 들어 이공계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실용주의와 ‘돈 되는 것 아니면 가치가 없는’ 세상에서 인문학 분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봉착해있다.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면 한국의 인문학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전국의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을 살려달라고 나섰겠는가.
그런데 이런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와 종교, 정치와 사회를 미술품을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고 해석해내는 미술사 분야의 취업난 또는 취업 후 환경은 실로 참담하다. 게다가 수년전부터 급증한 미술이론 학과의 증설 즉 박물관 미술관학과, 큐레이터학과, 박물관 미술관 경영학과 등 신설학과들이 앞 다투어 개설되어 미술이론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은 괄목 할만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참담한 현실을 감내해야만 하는 인내심과 배고픔 정도는 다이어트 한다고 생각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면 학자로서의 길을 접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학과를 개설하면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던 학교당국이나 문화예술의 지원과 육성이 주 업무인 문화관광부 그리고 당사자인 미술계 모두가 방관하거나 무관심한 가운데 읽지도 않으면서 변변한 평론한 편, 제대로 된 미술사 책 한권 없다고 불평하는 형국이다.
미술사를 비롯한 미술이론 전공자들의 양산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잉태된 비극이었다. 문화부가 처음으로 정부기구로 만들어 지면서 문화부는 1000개의 미술관 박물관을 10 년 안에 건립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미술관 박물관이 1000개가 개관한다면 최소 삼천 명에서 오천 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은 자명한 일. 많은 우수인력들이 미술사나 미술이론, 박물관미술관 경영학과로 진로를 선회했고 대학들도 앞 다투어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학과를 개설하고 대학원에 전문과정을 설치했다. 학부에 큐레이터 학과까지 신설하는 발 빠름을 보여준 학교마저도 생겼다.
그러나 미술관 박물관의 개관은 지지부진했고 목표달성의 어려움을 거의 생득적인 감각으로 인지한 문화부 담당 공무원들은 박물관 미술관 설립자가 해당 박물관, 미술관의 유물과 유사 또는 인접한 전공을 한 경우 전문 인력을 두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을 개정하면서 실적 달성에 몰두했다. 따라서 그들의 실적 때문에 전문가 없는 전문박물관 미술관, 무늬만 미술관 박물관을 양산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계량적 목표인 1000개소의 박물관 미술관시대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담당 공무원은 최선을 다한 공이 인정되었을 터이다.
이렇게 수요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서 세운 목표는 달성하고 마는 공무원과 공직사회의 실적주의는 미술사와 미술이론가를 희망했던 이들에게 좌절과 패배감만을 주고 말았다.
미술이론을 전공한 이들은 그들의 선택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1000개의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어 문화입국을 열어가겠다던 정책의지를 불 태웠던 이들은 이미 거의 모두가 정부 관료로서 영예로운 고위직을 거쳐 이제는 은퇴해서 여생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미술은 있어도 미술이론과 미술사는 없다.
이후 공급이 수요의 수 십 배에 이르면서 이들은 청소원이나 경비원 같은 일이라도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사는데 그리 불편함이 없는척박 하고 격 없는 한국사회에서 미술이론가들의 설 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인문학 여타의 직종과 직군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술사나 미술이론, 미술행정이나 큐레이터 전공자들, 미술비평가로 한국에서 최소한의 인생을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버겁다는 것이다.
그간 미술부문의 종사자 대부분은 창작자들이었다. 한국의 미술대학교육은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렇게 특정 집단의 양성과 육성에 전념하면서 이론가들은 가물에 콩 나듯 스스로 선택해서 공부하는 이들 몇몇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왔다. 왜냐하면 수요가 전혀 없었거니 있어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미술 100년사를 돌아보면 미술이론, 미술사학부문의 전문가들이 100여명을 넘지 않는다. 이런 불균형은 결국은 일반 관객들과 미술 창작인들을 매개하는 미술비평이나 교양으로서의 미술이론 기능이 사라지면서 오늘날 작가들만이 악전고투하는 환경 속에서 작업 아닌 고행을 해야 하는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스스로 빠져들어 간 원인이 되었다.
척박한 환경이기는 마찬가지인 문학비평이나 문학사에 비해 미술비평의 경우 그 깊이에 비해 폭은 매우 좁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간 한국의 미술사가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오늘날 괄목할 만 한 성과를 확보해 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미술동네 창작인들은 미술사나 미술이론, 미술행정과 정책 같은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술전문지는 늘 적자이고 그나마 제대로 된 글을 실을 지면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미술사를 전공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형편이다.
이들은 미술동네 내에서도 인정받기 어렵다. 한국 문화예술계 원로들의 모임이라 할 예술원마저도 수 십 권의 저서와 평론활동을 통해 한국미술의 초석을 다져온 팔순 노 논객을 ‘미술평론’은 이론이니 ‘학술원’회원자리를 알아보라는 주장을 하는 형편이다.
또한 각 언론사 마다 앞 다투어 미술전시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올리려 하지만 미술평론을 신춘문예에서 공모하는 신문사는 단 한 곳뿐이다. 또 이들마저도 수익사업을 위한 미술전을 준비하면서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 보다는 일용직으로 일을 나누어 주고 관리만 한다. 늘 일용직, 계약직으로 언제 실업자로 전락 할지 모르면서 주어진 일에 자신의 학문과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소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좀 나은 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부나 지방정부가 설립주체가 되고 그들이 운영 또는 감독하는 국공립미술관들의 경우도 더 하다. 아니 차라리 이들이 시범을 보이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국공립미술관들은 미술관의 전문성을 담보해 낼 미술사, 미술이론가들로 구성된 학예 연구직들은 종래의 종신직에서 거개가 계약직 또는 일용직으로 바뀌는 중이고 이미 바꾼 곳도 있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 정부 들어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행한 개혁치고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문화예술계의 개혁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문화예술기관의 전문 인력들을 경쟁력을 담보해 낸다는 명목으로 ‘물갈이’를 시도했다는 것일 것이다. 그 물갈이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 간에 결국 전문 인력들의 그 전문성에 대한 평가를 인사권을 행사하는 관료들에게 넘겨줌으로써 미술관, 박물관의 전문 인력들은 통상적인 계약관계에서‘갑’의 입장이 아닌‘을’의 입장으로 확실하게 전락하면서 이제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전문성보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철저한 행정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행정전문 관료들에게 미술관의 전문성을 위임하고 그들은 다시 전문가들의 마치 하청을 주듯 비정규직인 전문가들을 통해서 성과를 얻어내는 구조와 조직이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행정전문 인력들의 구조조정이나 물갈이는 없이 미술관의 전문직만 손을 댐으로써 테크노크라트들의 철밥통은 건재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하다. 행정전문가들이 미술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구조와 함께 더 비극적인 것은 미술관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각종 요직 즉 석 박사급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 또는 전혀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는 중 졸 고졸로 학력조차 미달이어서 전문 원서조차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서 미술사 전공자가 일용직이 되어 그들의 성과와 실적을 대신 생산해 내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런 국공립미술관의 행태는 사립미술관으로 이어져 운영상의 어려움을 들어 ‘로또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미술관의 기본인 ‘공공성’ ‘비 영리성’은 제쳐두고 대관 등 영리활동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인턴’제도라는 명목으로 전공자들의 임금착취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5인 이하의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설립자 즉 주인마음대로 해고통지를 남발한다. 그리고 어쩌다 얻게 되는 대학이나 대학원의 강사자리 또는 겸임교수라는 강사자리도 밀려오는 후배들 때문에 한시적으로 시간을 얻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것이 미술관련 석박사급들이 겪는 하루살이 인생이자 인문학의 꽃을 전공한 전공자들의 현실이다. 그림속의 인문학의 꽃(畵中之花)은 언제 현실에서 피어날 수 있을까.

- 상계학사 홈페이지 http://www.forumcjc.com/ (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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