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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뜯어보기 (3) 호(號)당 가격의 허와 실

편집부

-최윤석·서울옥션 기획마케팅팀 과장
미술시장에는 호당 가격이란 말이 있다.
호(號)라는 것은 그림의 크기를 재는 단위로, 인물화(F) 기준으로 1호는 22.7X15.8cm, 10호는 53.0X45.5cm, 50호는 116.8X91.0cm, 100호는 162.2X130.3cm를 말한다. 인물화냐 풍경이냐 해경(海景)이냐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며, 인물화·풍경·해경 순으로 조금씩 작아진다.
호당 가격이란 말이 성립하는 것은 그림의 가격이 크기와 어느 정도 비례하기 때문이다. 호당 가격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같은 개념이 존재하고, 뉴욕과 런던 등 해외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그림 값이 크기에 비례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볼 때 호당 가격제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미술시장에서 가격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객관적 기준을 준다는 점에서 호당 가격제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 순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호당 가격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나아가 최근 국내 미술시장에서 ‘크기’라는 변수가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먼저 호당 가격의 적용은 단순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30호 크기의 작품 가격은 10호의 2배, 50호는 10호의 3배, 100호는 10호의 4~5배 정도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큰 위험이 따른다. 작가들마다 호당 가격의 적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시장 내 입지가 확실한 작가들일수록 크기가 커짐에 따라 가격 상승폭이 크다. 반면 입지가 덜한 작가들의 경우 100호 가격이 10호의 3배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컬렉터들은 사려는 작가가 크기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 작가인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둘째, 특정 작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크기에 따르는 가격에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특정 작가가 주목 받기 시작할 때 가격 상승은 크기가 작은 작품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작품은 상대적으로 싸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이에 따라 경쟁도 심해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때 작은 작품의 값이 2배 상승했다고 크기가 큰 작품의 값도 바로 2배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작품의 가격과 크기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크기와 가격을 각각 x축과 y축에 놓고 그래프를 그리면 어느 순간 그래프가 갑자기 꺾이거나 더 이상 상승곡선을 그리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작품이 너무 크면 개인 컬렉터들이 주거 공간에 수용할 수 없어서 그 작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해외 자료를 인용해보면 2004년 호주 퀸즐랜드 공대의 앤드루 워싱턴(Andrew C. Worthington) 교수의 조사에선 6.70㎡의 크기까지는 크기와 가격이 정비례하지만, 이를 넘어설 경우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당 가격제와 관련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최근 국내 미술시장에서 크기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점차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작품의 질적 특성’이라는 변수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커지고 있다.
일례로 ‘농원’의 화가 이대원(1921~2005)의 경우를 보자. 그 동안 이대원 작품의 경우 제작 시기별로, 즉 1970년대와 1980년대, 1990년대와 2000년대로 구분해 호당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이른 연대의 작품일수록 호당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었고, 같은 연대의 작품인 경우 작품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었다.
그러나 최근엔 같은 연대의 작품일지라도 화면 구성의 안정성과 붓 터치의 세밀함 등에 따라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서울옥션 106회 경매에선 100호 크기의 1986년 작품 ‘나무’가 3억1000만원에 낙찰된 반면 이보다 훨씬 작은 크기인 30호 작품 ‘못’(Pond·1983년)이 오히려 더 비싼 3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미술작품의 ‘질’이 강조되는 것은 시장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작품의 질적 특성에 따른 가격 차별화가 강조되면 투기 자본의 유입이 어려워지고 컬렉터들의 작품 구입도 신중해지면서 시장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컬렉터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단순히 크기를 보고 가격을 계산하던 것에서 나아가 작품의 세세한 특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과제를 받은 셈이다.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호당 가격에 집착하면 별로 뛰어나지 않은 작품을 비싸게 사거나, 반대로 좋은 작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호당 가격은 ‘작품의 질 차이가 크지 않다면 미술품 가격은 어느 정도 크기와 비례한다’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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