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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18] 제3제국의 미술

이주헌


히틀러의 광기 퍼나른 선봉대
히틀러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선동가다. 그가 팔을 흔들며 대중에게 연설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이 선동의 귀재가 막강한 소통의 힘을 지닌 예술을 그냥 두고 보았을 리 없다. 모든 전체주의 권력이 그러하듯 히틀러의 제3제국 역시 예술을 선전과 선동을 위한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았다.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던 미술이어서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권력이 예술을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극단적 인종주의에 충실하게 복무
권력에 의한 ‘예술의 타락’ 본보기
1933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독일 수상에 임명된 히틀러는 이듬해 총통이 되기까지 모든 권력을 확고히 틀어쥐게 된다. 그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서두른 정책의 하나가 교육·문화 기반의 재구축이었다. 선전장관 괴벨스가 총책임자였는데, 그 급진성은 가히 일당독재다운 과격한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 제3제국의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미술과 닮은 점이 많다. 정치적 목적이 우선시된 미술이라는 점이 그렇고, 당의 노선과 대중성을 중시했다는 점이 그렇다. 미학의 최종 심판관이 당의 지도자라는 점과 형식면에서 사실주의만을 고집했다는 점도 닮았다. 당시 두 미술 모두 영웅적 사실주의(heroic realism)로 불렸다.
하지만 제3제국의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만큼 탄탄한 미학적 논리를 갖추지는 못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형성되기까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벌인 치열한 논쟁이나 역사적·과학적 탐구 같은 것을 제3제국의 미술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그 미학의 핵심적인 가치가 인종주의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제3제국의 미술은 그 어느 미술보다 비합리적이고 편협했다. 권력의 요구에 즉자적으로 부응한 기회주의적인 미술이었고, 권력의 광기를 즉물적으로 퍼 나른 ‘돌격대’ 미술이었다. 문제는 당시 독일 정서의 한구석에 이에 대한 적극적인 수요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3제국 미술의 인종주의는 <예술과 인종>이라는 책을 쓴 나치 건축가 파울 슐체 나움부르크의 생각 속에 잘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나움부르크는 기형이거나 질병을 앓는 사람, 장애인 등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를 전위적인 현대미술의 ‘난해한’ 이미지와 비교했다. 현대미술이 하나의 ‘질병’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는 현대미술의 이런 ‘병적인’ 성격이 인종적인 뒤섞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인종적으로 순수한 아리아인만이 진정으로 ‘건강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치는 이런 인종주의적 결벽증을 토대로, 서양미술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을 모든 부정적인 영향, 특히 유대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가장 순수한 미술로 보았다. 또 중세 독일의 정신세계를 하나의 이상으로 고취했다. 그런 까닭에 이런 미술과 정신에 직접적으로 이어진 미술만이 진정한 아리아인의 미술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추상을 비롯한 현대 전위미술의 형식들은 결코 이 미술의 영역에 거주할 수 없었다. 이런 형식은 오로지 유대인들의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고의 오염물이자 독일 정신에 대한 테러였다.
제3제국 미술의 이런 순수주의는 그로 인해 이 미술이 늘 ‘오염물’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를 설명하는 방식을 띠게 만들었다. 그래서 1937년 뮌헨에서 제국 미술의 총결정판인 ‘위대한 독일미술전’이 개최될 때 나치는 이에 비교되는 오염 사례로 ‘퇴폐미술전’을 나란히 열었다. 대중들에게 두 미술을 비교하게 함으로써 ‘더러운 것’을 일소해야 할 독일의 ‘위생학적 책무’를 명료히 보여주겠다는 발상이었다.
‘퇴폐미술전’은 현대미술에 대한 나치 탄압의 절정을 이룬 사건이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압박은 이미 히틀러의 집권 초부터 시작됐다. 일찍이 클레, 딕스, 베크만 등의 현대미술가들이 교직에서 쫓겨났고 진보적인 미술행정가들이 미술관에서 해임됐다. ‘공포 미술의 방전’, ‘혐오전’ 등 현대미술을 부정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들이 여러 곳에서 잇따라 열렸다. 이 과정에서 놀데의 작품 1052점을 비롯해 헤켈, 베크만 등 독일 현대미술가들의 작품과 반 고흐,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다른 나라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경향 각지의 미술관들로부터 대거 압수됐다. 이 압수품을 토대로 마침내 현대미술가들을 크게 비웃어주는 ‘퇴폐미술전’이 뮌헨을 비롯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12개 도시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뮌헨에서 열린 넉 달의 전시 동안 ‘퇴폐미술전’의 관객 수는 무려 200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기간에 ‘위대한 독일미술전’을 관람한 관객 수의 3.5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숫자는, 무엇보다 대중은 ‘우등생’보다는 ‘왕따’에, 칭찬할 것보다는 조롱할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대중은 비웃음이나 적개심을 일으키는 소수자를 보면 그들에게 모든 악을 뒤집어씌우는 경향이 있다. 나치는 이를 교묘히 이용했다. 나치의 선동에 놀아나게 되면 박해는 매우 능동적으로 열정적으로 일어난다. 나치는 이렇게 다수를 공범자로 만들고 그 공범의식을 미학적인 연출로 강고한 우월의식으로 치환한다. ‘퇴폐미술’을 보고 조롱한 관객은 ‘위대한 독일미술’을 보고, 혹은 보지 않아도 그런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순수성을 표방했지만, 제3제국의 미술은 근원적으로 이런 악의를 담고 있었기에 볼수록 공허와 위선을 느끼게 된다.
그 공허와 위선은 주로 들판과 가정에서 일하는 농민이나 운동선수, 신화적 영웅 등 외형적으로 건전하고 건강한 아리아인의 이미지를 통해 퍼져 나간다. 그들은 인종적으로 순수하고 대의에 복종하며 군국주의의 정신에 충만한 사람들이다. 불행한 것은 그들은 결코 깨어 있는 영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원한 허상이요 객체들이다.
아르투어 캄프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신화의 주인공들을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리아인의 표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인간 중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아도니스가 막 사냥을 떠나려 한다. 그러자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그를 만류한다. 구릿빛 피부의 멋진 조각상 같은 남자, 그리고 우윳빛 피부의 건강하고 아리따운 여자. 뒤에는 고결한 백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순결함이 세계를 ‘세척’할 것이라고 화가는 호소하고 있다. 도대체 이렇게 순수하고 우월한 아리아인이 타락한 현실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누가 구원한단 말인가?

제3제국의 화가들이 그린 히틀러 상에서도 그런 구원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화가들은 그를 하나의 이상을 향해 독일인들의 마음을 결집시키고 나라의 썩고 병든 것을 치유할 존재로 표현했다. 하인리히 크니어의 <히틀러의 초상>에서 우리가 보는 것도 그런 ‘나라의 위생사’다. 고집스러운 그의 얼굴에서 그 위생 처방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가져올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세계도 예술도 이들에 의해 구원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3제국의 미술은 그렇게 한순간의 불꽃으로 타오르다 사라졌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www.hani.co.kr/arti/SERIES/201/337757.html
» 크니어 <히틀러의 초상>(왼쪽), 캄프 <비너스와 아도니스>(오른쪽)
» 마르틴 아모르바흐 <씨뿌리는 사람>귀족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과거의 혈통으로부터 찾듯 제3제국 또한 제국의 우월성을 과거의 독일로부터 찾았다. 자연에 동화되어 직접 손으로 씨를 뿌리고 소와 쟁기를 사용해 농사를 짓는 순수한 독일 농부들. 그들의 거인 같은 모습에서 제3제국의 자부심이 생생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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