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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13] 바니타스: 세상의 부귀영화 헛되고 헛되도다

이주헌


중세말 끔찍한 재앙과 비극에서 배양돼
생과 사·색과 공 모두 하나 “메멘토 모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 전도서 1장 2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짙은 허무주의의 정서가 느껴지는 이 구절이 서양 바니타스 정물화의 핵심적인 주제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허무·허영·덧없음을 뜻한다. 이 주제의 정물화가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많이 그려지게 되는데, 이는 중세 말의 비극적인 세계 경험과 이어진 칼뱅주의의 감화가 화가들로 하여금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표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대표 격인 하르멘 스텐비크의 <정물-바니타스의 알레고리>를 보자.
무엇보다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인 그림이다. 왼쪽 상단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다. 오른쪽 하단은 사물들로 복잡하다. 그 구성으로 인해 발생한 대각선은 세계를 일도양단으로 가르는 것 같다. 그 대각선과 교차하는 대각선이 있으니 바로 광선으로 인해 생겨난 대각선이다. 빛이 왼쪽 상단으로부터 오른쪽 하단으로 비쳐 들어온다. 뭔가 극적이고 강렬한 대비와 긴장을 느끼게 하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이승과 저승, 구원과 멸망의 이분법적인 의식이 느껴진다.
정물들 가운데는 해골이 가장 눈에 띈다. 바니타스 주제의 근간을 이루는 정물이다. 골고다 언덕의 골고다는 해골을 의미한다. 예수의 책형을 그릴 때 그래서 화가들은 십자가 밑에 해골을 그려 넣곤 했다. 성 히에로니무스나 막달라 마리아 같은 참회의 성인들을 그릴 때도 그들은 항상 해골을 함께 그렸다. ‘메멘토 모리’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바니타스 정물화에서도 해골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해골 주변으로 보이는 것은 책과 악기, 일본도와 조가비, 비단 천, 시계, 불 꺼진 램프, 도기 그릇 등이다. 책은 배움과 지식의 한계, 악기는 세상의 즐거움이 지닌 무상함을 나타낸다. 일본도와 동남아산 조가비, 비단 천은 진귀함과 부를 나타낸다. 그 모두가 허영과 관련이 있다. 불 꺼진 램프와 시계는 생명의 유한함을, 깨지기 쉬운 도기는 인간의 연약함을 의미한다. 인생은 이런 도기에 물이나 소중한 것을 넣어 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볼수록 깊은 명상에 잠기게 하는 작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런 바니타스 정물화는 17세기에 주로 그려졌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많이 생산된 시기를 꼽으면 1650~60년대다. 무엇보다 직전에 발생한 30년 전쟁(1618~48)의 영향이 컸다. 강대국들 사이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펼쳐진 이 유럽 최대의 종교전쟁은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여러 나라를 황폐화시켰다. 물질과 육체가 지닌 무상함에 대해 사람들은 깊이 사색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적으로 따지면, 네덜란드의 레이덴이 바니타스 정물화를 가장 전형적인 스타일로 발달시킨 곳이다. 그 시초는 1620년대쯤이다. 스텐비크의 그림이 이 스타일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데, 그는 레이덴 출신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공부했다. 레이덴이 전형적인 바니타스 스타일의 배양지가 된 것은, 칼뱅주의의 요충지이자 대학 도시로서 세속적인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지적인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한층 겸허한 삶을 살고자 하는 태도는 동서고금, 어느 시공간에서나 발견된다. 유명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개선 행진을 벌이던 고대 로마의 장군 뒤에서 “죽음을 기억하라”고 줄기차게 외친 노예의 외침으로부터 왔다. 영광의 절정에 있을 때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도록 한 이 로마의 풍습은 바니타스 정물화의 먼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니타스 정물화의 탄생에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은 죽음에 대한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관념이 아니라, 중세 말의 극심한 재난과 재앙이었다. 14세기~15세기 중반, 끔찍한 재난과 재앙이 끊임없이 서유럽 전체를 덮쳤다. 농업의 황폐화로 기근이 만연했고, ‘흑사병’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전쟁이 도처에서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양문명의 역사’의 공저자 번즈는 “평화로운 동정녀 마리아가 중세 전성기를 상징했다면, 히죽히죽 웃는 모습의 해골은 중세 말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비뇽의 유수 이후 발생한 교회의 대분열(1378~1417)로 교황이 둘, 심지어 셋이 나와 대립한 상황 또한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뿌리부터 흔들었고 불안을 부채질했다. 권위를 회복하고자 교회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공포를 강렬하게 환기시켜 신자들을 다잡는 ‘협박 전략’을 구사했고, 이로 인해 죽음에 대한 강박 관념에 시달린 신자들은 마침내 인생을 ‘고뇌의 드라마’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이 시기의 미술은 자연스레 슬픔과 고통, 죽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성모의 이미지에 돌로로사(아들의 죽음으로 비탄에 잠긴 모습)와 피에타 이미지가 첨가되었고, 바싹 마른 주검이나 짐승으로 뒤덮인 주검, 지옥의 모습이 생생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음의 무자비함과 예외 없음, 무상함을 알레고리 형식으로 표현한 ‘죽음의 춤’ 주제도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 주제의 그림은 보통 해골의 모습으로 의인화된 죽음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춤추며 이끄는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구성은 17세기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해골이 다른 정물들을 ‘진두지휘’하는 구성으로 이어진다.
바니타스 정물화가 아직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 16세기, 중세 말의 해골 이미지를 계승한 흥미로운 ‘초상화-정물화’들이 만들어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얀 호사르트의 <카론델레트 이면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이면화의 왼쪽 패널 앞면에 고위 성직자인 카론델레트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 해골이 그려져 있다. 해골은 초상화의 주인공에게, 고대 로마의 노예가 개선장군에게 하듯 ‘메멘토 모리’를 외치고 있다. 벽감 상단 종이 위에 쓰인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자는 모든 것을 쉽게 비웃을 수 있다”는 라틴어 문구가 이를 잘 나타내준다. 이렇게 양면 그림의 한 면에 ‘클로즈업’된 해골이지만, 이 해골 정물화를 통해 우리는 머지않아 전형적인 바니타스 정물화가 나타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양미술의 이런 바니타스 전통과 그 짙은 우울증적인 표현은 오늘날까지 이 미술의 중요한 정신적 에너지로 기능하고 있다. 서양미술이 동양미술에 비해 짙은 파토스를 느끼게 하고 멜랑콜리한 표현에 능해 보이는 것은 상당 부분 이와 관련이 있다. 그 의미심장한 최근의 걸작으로 ‘화가들의 천국’전(서울시립미술관, 내년 3월 22일까지)에 내걸린 게리 힐의 비디오 작품 <암송(프롤로그)>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테이블 위에 새와 작은 짐승들의 유해가 널려 있는 모습을 명상적인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유해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낭독을 하는 사람의 입 안이 보이는데, 생과 사, 색과 공, 태초의 말씀과 모든 것의 사멸이 결국 하나라는 매우 심오한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 호사르트, <카론델레트> 이면화 왼쪽 그림 뒷면, 1517, 루브르 박물관
» 힐, <암송(프롤로그)>, 1989, 비디오, 퐁피두 센터
»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의 알레고리>, 164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http://www.hani.co.kr/arti/SERIES/201/330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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