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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0. 미술 마케팅 성공의 조건

이대형


눈앞에 끝이 조금 떨어져 나간 커피잔이 있다. 손잡이는 오랜 세월을 말해 주듯 누렇게 변색되었다. 이도 나가고 손잡이도 변색된 이 초라한 커피잔이 경매에 나왔다. 이 작품에 당신은 얼마의 추정가를 매길 수 있나? 100원 혹은 1000원? 얼마의 가격을 매겨도 아무도 사 가지 않을 것 같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라.
만약 이 초라한 커피잔이 영국 왕실에서 소중히 물려 내려온 엘리자베스 여왕의 애장품이라면 어떨까? 이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매일 아침 이 잔에 커피 마시기를 고집해 왔다면 어떨까? 자, 그럼 이 커피잔의 추정가는 얼마일까?
똑같은 커피잔이라도 커피잔의 배경설명을 듣는 순간 낡은 커피잔은 더 이상 평범한 오브제가 아니다. 이처럼 어떤 문맥, 어떤 프레임으로 대상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 어려운 것은 적절한 문맥을 찾아서 최적화된 환경 속에 팔고자 하는 오브제를 올려 놓는 일이다.
이 부분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오브제에 대한 선입견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분리시키는 작업이다. 이미지에 투사된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다.
예 를 들어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토끼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재현한 플라스틱 토끼가 똑같은 포즈를 취한 채 앉아 있다. 또 그 옆에는 토끼를 정교하게 종이위에 수채화로 그린 작품이, 그 옆에는 유명 사진 작가가 카메라로 찍은 토끼가, 또 그 옆에는 그걸 사실적으로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 있다. 똑같은 빛깔의 털을 가진 똑같은 토끼다.
자, 그럼 이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토끼를 고르라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너무 고민하지 말라. 어떤 문맥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토끼의 가치는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으로 보면 자연의 모방이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진짜 토끼보다 플라스틱 토끼나 사진이나 그림이 더 아름답기는 어렵지만 영화 매트릭스처럼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 즉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을 수 있다는 인식 안에서는 진짜 토끼보다 거기서 파생된 가짜 플라스틱 토끼, 사진, 종이 위의 그림, 캔버스 위의 그림이 더 아름답고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소위 작품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사진과 종이 위의 그림과 캔버스의 유화 그림을 살펴보자. 장르별로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손쉽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장르별 미술시장의 가격을 고려해 유화 그림, 사진, 종이 위의 수채화라고 손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그 러나 만약 그것이 16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 알프레드 듀러(1471∼1528·독일)의 수채화이고 여기서 영감을 얻은 한국의 유명 사진작가가 토끼를 그대로 연출해 촬영한 것이고 그 사진 속 토끼가 너무나 좋아서 미술대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열심히 보고 베낀 유화 그림이라면 어떨까? 이제 순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래서 고정관념화된 가치의 우선 순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토끼가 아닌 토끼가 위치한 문맥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걸 어떡하냐고? 문맥을 읽어 내는 일은 말 그대로 문화적 배경을 읽어 내는 일과 여기에 색다른 프레임을 대입해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일이 결합된 작업이다. 어려운 만큼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가치상승은 커진다.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분리하고 이들이 보다 넓은 문맥 속에서 새롭게 재조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가치 변화의 기본 전제다. 현대미술을 제대로 바라보고 즐기기 위해서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분리 즉 고정관념 속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즐겨야 한다.
기업이 미술을 이용해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을 시도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미술의 속성을 정확하게 읽어 내고 마케팅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기존의 이미지에 투사된 고정관념을 벗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성공을 좌우하는데 이는 스타작가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얘기다.
국내의 경우 너도 나도 미술 마케팅을 외치지만 정작 성공적으로 미디어와 소비자의 관심을 얻은 경우는 많지 않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접근 자체가 소극적이거나 기존 성공사례를 답습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가치를 올린다는 취지에 따라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회사 신상품의 론칭 쇼를 하거나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벽지나 가방의 커버 디자인으로 차용하는 매우 소극적이고 상투적인 방법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최근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서울 전시를 주최한 신세계백화점이나 작가들에게 특정 주제를 주고 인사동 갤러리에서 그룹전을 기획한 화장품 전문 회사 클리오의 경우는 좀 더 진보적이고 세련된 방식을 보여줬다.
하 나은행이 발간하고 있는 사보는 미술과 문화만을 다루고 있는 유일한 은행 사보다. 이 사보 어디에도 금융관련 이야기가 없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그 뒤에 숨어 있는 하나은행이 빛날 수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 업들은 명심해야 한다. 미술을 단순히 포장하는 껍질로 사용해서는 미술 마케팅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술관 전시라고 다 볼만한 건 아니다. 어떤 전시는 사람이 몰리고 어떤 전시는 조용히 사라진다. 루이뷔통이 바네사 비크로프트라는 작가를 후원하며 작가 브랜드와 자신의 명품 브랜드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샤넬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획기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성공적인 미술 마케팅을 원한다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손쉽게 유명 작가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들이 성공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기획력으로 전에 없었던 이벤트를 만들어 낼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은 조용한 우등생보다 사고뭉치 소란꾼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미술을 활용할 거라면 ‘노이즈’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래야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 샤넬이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요청해 만든 움직이는 미술관 샤넬 모바일 아트 입구. 홍콩, 도쿄, 뉴욕, 런던, 모스크바를 거쳐 코코 샤넬의 고향인 프랑스 파리로 여정이 이어졌다. 전 세계 패션 소비 중심 도시를 돌며 샤넬의 명품 가치를 한껏 자랑했던 프로젝트다.
▲ 세계적인 사진·퍼포먼스 작가인 바네사 비크로프트가 프랑스 패션그룹 루이뷔통의 의뢰를 받아 파리의 새로운 가게 오픈을 기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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