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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33. ‘아트 퍼니처’를 아십니까

이대형


“형식은 자유롭고 가벼워야 한다. 그러면서도 구조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시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은 위험스러워도 좋다.” 프랭크 개리가 알루미늄 의자 디자인을 구상하며 제시한 가이드 라인이다. 건물을 짓는 양반이 웬 의자 하나 만드는데 고심하며 구조와 형식, 철학을 따지는 건지 궁금하지 않은가?
세계적인 알루미늄 업체 이메코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프랭크 개리가 손을 잡고 알루미늄 의자를 만들었다. 지난 2004년 공동작업 이후 두 번째 시도다. 80%를 재활용한 알루미늄 55㎏만을 사용했다. 놀라지 마라. 이메코의 항공기 재료가공 기술과 프랭크 개리의 아트 디렉팅에 힘입어 12만원짜리의 평범한 알루미늄 패널이 4억원을 넘어서는 초호화 의자로 둔갑했다.
지 난해부터 이어져온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소비둔화 속에서 외식보다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경기불황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이다. 이 불안정한 정신상태는 종종 집을 꾸미는 욕구로 발전한다. 그래서 집과 방을 매력적으로 꾸밀 수도 있고 소장가치도 있는 가구에 대한 관심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높아진다. 디자인사무소 도시 레빈을 비롯해 프랭크 개리, 톰 딕슨, 론 아라드, 마크 뉴슨과 같은 스타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가 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독 일 가구산업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개월간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전했던 미술시장과는 다르게 가구시장은 1.5% 이상의 성장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최근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아트 퍼니처’라는 단어 역시 이 같은 시장흐름의 변화 속에서 읽어야 한다. 아트 퍼니처에 대한 관심은 한국은 물론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국제적인 컬렉터들은 가구를 더 이상 기능만 강조한 실용주의 오브제로 보지 않는다. 오래 간직하며 손때 묻히며 사용할 수도 있고 거기다가 투자의 대상으로도 손색없는 미술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트 퍼니처가 하나의 미술투자 포트폴리오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가 구를 투자 대상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도시 레빈, 론 아라드, 러브그로브, 톰 딕슨 등 슈퍼스타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그 뒤에는 이탈리아의 모로소와 같은 디자인 가구 전문 업체의 역할이 컸다. 창의적인 정신을 최우선 모토로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통해 가구의 가치와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의 브랜드를 극대화시켰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현대미술 시장이 움직이는 메커니즘과 매우 흡사하다. 회사 브랜드가 아닌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브랜드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 제 가구시장은 이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실정은 어떤가? 반도체, 통신 등 최첨단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미술과 디자인은 수입품이 대세다. 한국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아직도 수입 브랜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소극적인 현실 속에서 한국적인 가구 디자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한국 작가들을 전시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갤러리는 어디 없을까?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청담동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수입가구 매장이 즐비한 청담 사거리에서 그미그라미 김금희 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은 무모해 보일 수 있는 그의 도전에 대해 물었다. “한국 스타일로 만들어진 가구가 수입가구와 견주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짧고 강한 답이 주저 없이 돌아왔다. 이어 “현대인의 화두인 건강, 자연, 느림의 미학 등의 트렌드와 더불어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어요. 특히 나무가 주는 따뜻한 에너지와 자연스런 느낌은 도시화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지요.” 실제로 올 1월과 2월 극도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김 대표의 갤러리는 판매가 늘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정섭 목수와 스위스 매트리스 회사 ‘휘슬러 네스트’와 함께 소파 겸 침대를 공동 제작했고 영국 찰스 왕세자의 소유인 ‘두치 오리지널스’에서도 가구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일본 가와이 준지가 디자인한 철제 다리와 결합한 테이블도 만들어졌고 곧 팔렸다.
김금희 대표는 그미그라미에서 선보이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이탈리아나 독일 가구에 견주어 손색없는 경쟁력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악기에나 쓰일 법한 나무로 만든 가구, 단순히 기능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부여가 가능한 가구, 전통적인 비례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결합된 가구, 효율성이 아닌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구의 가치를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신념 아래 그는 어려운 불황기에도 고집스럽게 전시를 유치해 냈다. 코르크 마개를 끼워서 만든 의자, 숫자가 밖으로 도망쳐버린 시계, 레고 퍼즐처럼 조합이 가능한 테이블 등의 기발한 가구 작업을 선보인 한정현 작가의 전시, 한국의 전통적인 디자인에 현대적인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패브릭 디자이너 장응복과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가구로 유명한 하지원의 공동작업을 이끌어낸 기획전, 현대적인 세라믹과 이정섭 가구의 만남을 그린 신동원과 이정섭가구전 등 김금희 대표는 가구작가들의 가치를 어떻게 올려놓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 갤러리를 오픈 했을 때는 수입가구 못지 않은 가격에 “왜 이렇게 비싸”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대량생산이 아닌, 작가가 직접 손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알아봐주는 고객들이 점차 많아지며 품질과 예술적인 가치 이외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자신에 찬 발걸음으로 항상 동분서주하는 김 대표이지만 그미그라미 갤러리 안에서 만큼은 ‘슬로 슬로’ 리듬을 타고 여유를 되찾는다. 그윽한 나무 냄새에 정성껏 천천히 만들어낸 작가들의 작품에서 흘러 나오는 좋은 기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금희 대표의 목표는 단순하고 뚜렷하다.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는 한국 가구디자인을 알리고 포장해서 수출하는 것이다. 기능에만 치우친 지루한 의자 디자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가치를 제시해줄 수 있는 의자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시 이외에도 지인들과 고객들을 갤러리에 모시고 다양한 형태의 아카데미와 다과회를 연다.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트퍼니처의 산업화와 한국 작가들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장이 성숙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반드시 그 해당 산업의 시장 구조 속에서 방향을 잡아간다. 그래서 시장의 역할과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격이 아닌 가치, 대량생산에 대한 유혹이 아닌 퀄리티를 강조한 소량생산, 안전한 타협이 아닌 조금은 위험스럽지만 실험적인 디자인을 알아보고 소비해줄 때 한국 가구의 미래가 있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원문 :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730163412&cDateYear=2009&cDateMonth=07&cDateDay=30
▲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니파 도시와 조나단 레빈이 공동 운영하는 디자인사무소 도시 레빈의 대표작. 니파 도시의 인도풍 재료와 색상에, 조나단 레빈의 현대적인 산업디자인이 만나 따뜻하고 색다른 가구를 완성시켰다. 인도와 영국의 문화적 하이브리드 정신과 산업과 수공예의 절묘한 조화가 엿보인다.
▲ 코르크 마게를 끼워 맞춰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한정현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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