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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역사] <12> 이름표 붙이고 나온 고려청자 매병

편집부

입 지름은 작고 목은 짧아… 풍만한 어깨선 유려한 S라인
일반 청자와 달리 큰 그릇… 당시 명칭·쓰임새 알 길 없어
고려청자 중 일반적인 병과는 달리 유난히 풍만한 어깨선과 유려한 S라인을 뽐내는 큰 그릇을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모양의 청자를 우리는 ‘매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매병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고려 사람들은 이 그릇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없다. 매병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중국에서 허지형(許之衡·1877∼1935)이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라는 책에 “매병의 입은 작고 목은 짧으며 어깨는 극히 풍만하고 넓으며, 다리로 갈수록 좁아 든다. 입 지름이 매우 작아 매화의 여윈 가지와 어울려 예로부터 이름을 매병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한 이후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8세기까지는 매병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고, 20세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지금은 모든 나라가 매병(한자로는 梅甁, 영어로는 Meiping)을 학술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청자상감유로죽화훼문매병
굵은 골 6개를 내어 참외 모양처럼 만들었다. 갈대, 버드나무, 대나무, 모란, 국화, 황촉규 꽃 무늬가 있고, 각각의 아래 부분에는 오리 2마리가 노닐고 있다. 또한 꽃 위에는 나비도 날고 있다.
그럼 고려 사람들은 무슨 용도로 이런 그릇을 만들었던 것일까. 사극을 보면 왕실이나 귀족들의 방 한쪽에 으레 매병 하나쯤은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때로는 꽃병으로 쓰이기도 한다. 과연 고려 사람들은 사극에서처럼 매병을 장식용으로 사용한 것일까. 2010년 7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 앞에서 고려 매병의 새로운 면을 알려주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9년 마도 인근 해역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조사팀은 고려시대 곡물 운반선 마도 1호선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다. 동시에 주변 지역도 탐사했다. 2009년 9월 말 마도 1호선 발굴지점에서 900m 정도 떨어진 지역을 탐사하던 조사원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식을 알려왔다. 새로운 침몰선을 발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탐사작업을 할 때 바닷속 갯벌은 1m 정도 깊이까지만 조사하는데, 계속해서 나무들이 드러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탐사단은 1.5m 깊이까지 파내려갔고, 결국 또 하나의 고려시대 선박 마도 2호선을 찾아낼 수가 있게 됐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9월 말∼10월 초 북서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물 속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한낮에도 30㎝ 정도의 거리만 파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탐사단은 약 보름간 집중적으로 탐사작업을 벌였고, 선체의 일부로 보이는 목재들과 청자 그리고 도기항아리 등을 발견한 것이다. 그중 탐사단의 눈길을 끄는 청자 파편 한 점이 있었다. 고려청자 고유의 비색과 연꽃이 매우 섬세하게 새겨진 그것은 매병 파편이었다. 우리나라 수중발굴 조사를 통해 고려청자는 8만여점이 발굴되었으나 온전한 형태를 갖춘 매병은 한 점도 발굴된 적이 없고 깨진 조각 파편도 겨우 몇 점 있을 뿐이었다. 조사단은 2010년 마도 2호선의 본격적인 조사에서는 매병의 다른 파편만이라도 발견되기를 기원하며 그해 조사를 마무리지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2010년 5월 초 드디어 마도 2호선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마도 2호선 역시 곡물운반선의 성격을 띤 고려시대 선박이었고, 곡물류·도자기·목간 등이 꾸준히 발견됐다. 그런데 조사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매병의 나머지 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조사단은 아쉬움 속에서 아무래도 다른 부분은 유실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며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청자음각연화절지문매병
연꽃 무늬가 매우 세심하게 새겨져 있는데, 연꽃 줄기에는 가시돌기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점을 찍기도 했다. 다른 고려 청자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표현기법이다. 함께 발굴된 죽찰을 통해 매병을 성준이라고 한 점과 꿀단지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도 2호선 안쪽을 채우고 있던 갯벌을 거의 제거해 나갈 무렵이었다. 잠수사의 머리에는 수중카메라가 설치돼 있어, 잠수사가 보는 바닷속 풍경은 물 밖 조사선에서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7월 어느 날 물 안팎에 있던 수중발굴팀은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고려청자 매병 완형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점이 아니라 2점이었다. 수중발굴조사 역사상 처음으로 최상급의 온전한 형태를 지닌 매병 2점을 발굴한 것이다. 그 매병들이 인양돼 물 위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자 조사 선박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한동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발굴된 매병은 무늬 종류나 새김 방법이 다른 2점이다. 먼저 크기가 39㎝로 비교적 크고 ‘S라인’이 매우 잘 살아 있는 ‘청자상감유로죽화훼문매병(靑磁象嵌柳蘆竹花卉文梅甁)’이 발굴됐다. 몸통은 참외 모양처럼 세로로 굵은 골을 만들었다. 참외 모양 주전자는 흔하지만 참외 모양 매병은 매우 드문 형태다. 6개로 나눠진 부분에는 각각 갈대, 버드나무, 대나무, 모란, 국화, 황촉규 꽃 무늬가 있는데 모두 상감 기법을 사용하였다. 모든 무늬 아랫부분에는 오리 2마리가 노닐고 있다. 모란, 국화, 황촉규 꽃 위에는 나비도 예쁘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각 면마다 무늬를 두르는 마름꽃 모양도 표시하였다. 목 부분에는 돌림무늬가 어깨 부분에는 구름무늬, 다리부분에는 연꽃잎 무늬가 각각 새겨져 있었다.
두 번째로 발견된 매병은 어깨에서 굽까지 유려한 S자형의 ‘청자음각연화절지문매병(靑磁陰刻蓮花折枝文梅甁)’으로 역시 크기는 39㎝였다. 어깨에는 구름무늬가, 몸통 전체에 걸쳐서는 연꽃과 연잎이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또 4개의 연화절지문도 새겨져 있다. 꽃다발 형태로 중앙에 만개한 연꽃을 두고 위아래를 연잎으로 장식한 것을 말한다. 다른 고려청자에서도 줄곧 나타나는 무늬지만, 마도 2호선 발굴 매병에서는 줄기에 일부러 점을 찍어 실제 연꽃에 보이는 가시돌기와 같은 부분이 표현돼 있어 매우 독특하다. 맑고 투명한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이 매우 잘 드러난다.
마도 2호선에서 출토된 고려 매병이 특별한 것은 그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발굴된 죽찰을 통해 고려청자와 생활상을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 매병 2점 모두 대나무 화물표가 걸려 있었다.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정밀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精蜜盛樽封)’이라고 적혀 있는 죽찰은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죽찰 내용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중방(고려시대 무신들의 최고 협의기구)의 도장교(하급장교) 오문부(이름) 댁에 올림(택상). 꿀(밀)을 매병(성준)에 담음’이 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매병을 ‘성준’이라고 불렀다는 점과 매병을 꿀단지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이 작은 죽찰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신종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문헌 기록에도 ‘준’이라는 용어가 있어 추정하고 있었는데, 매병=준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또한 고려후기에 제작된 매병 몸체에 술과 관련된 기관명이 적혀 있어 매병을 술 담는 데 사용하였다는 것도 추정하고 있었는데, 마도 2호선 매병과 죽찰을 통해 이외에도 꿀과 같은 귀한 식재료를 담고 운반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매병 용량을 측정해 보니 9ℓ 정도를 담을 수 있는 크기다. 귀하고도 비싼 꿀을 큰 크기의 매병에 담아 보냈는데 누가 왜 오문부라는 하급 장교에게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밖에도 마도 2호선에는 많은 죽찰이나 목간이 있어 판독이 완료된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도 2호선에서 발굴된 이 두 점의 매병은 미술사적 가치뿐 아니라 기록이 많지 않은 고려시대의 여러 가지 면을 알려주는 훌륭한 유물이다. 오랫동안 난행량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수히 많은 선박들이 침몰한 태안 마도해역. 뱃길을 오가던 사람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바닷길이었겠지만, 당시의 많은 해난 사고는 바닷속 타임캡슐이 돼 한국 수중고고학 발전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신종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세계일보 2010.10.6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01005003498&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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