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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예술

이선영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예술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영경은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자신이 순간 몸담은 공간의 특수한 장소성과 역사성에 주목해왔다. 어디엔가 정주할 수 없는 유목민의 입장은 사진작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에게도 울산은 처음이다. 레지던시에서 있었던 개인전 부제 ‘울산이여 안녕!’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처음 만나서, 3개월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곳을 떠나는 마음으로 붙인 제목이다. 문자만이 아니라 음성의 지원을 받는다면 언제가 만났을 때의 안녕인지, 언제가 헤어질 때의 안녕인지 확실할 텐데 말이다. 어떤 만남은 최초의 환상적인 순간을 깍아 먹는 과정이고, 어떤 만남은 최초의 밋밋함을 뒤집는 과정이다. 만남이라는 과정에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떤 변화가 내포되어 있다. 작업에 시간성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사진가들에게 이러한 변화의 감각은 중요할 것이다. 재회가 아닌 한 시간의 무게 때문에 후자의 안녕은 더 묵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안녕은 영원한 안녕이 되기도 한다. 



울산이여 안녕_태풍은 지나가고(태화강)#02, Archival pigment print, 벽면에 사진설치, 2016



울산이여 안녕_태풍은 지나가고(산하동)#01, Archival pigment print, 벽면에 사진설치, 2016



작가에게 울산은 짧은 체류기간 때문에 그 만남의 강도가 더 크지 않았을까. 오래 있으면 무뎌질 수도 있는 감성이 날이 서 있는 그대로 빠르게 그 시공간을 통과한 것이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사진은 확실히 그 지역에서의 경험이 담긴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 울산에서 한 작가에게 보낸 환대는 색다른 느낌의 울산 풍경을 낳게 했다. 작품은 그 지역 사회와 예술가 사이에 교환되었던 선물의 하나다. 김영경은 서울, 군산, 순천에 이어 네번째 경험하는 한국의 레지던시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인생 그 자체의 여정을 가벼운 터치로 담아냈다. 탐구적 성격이 강한 그녀의 작품 목록에서 울산 풍경은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다. 휴식은 엄청난 기쁨이나 슬픔, 엄청난 아름다움이나 추함같은 극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삶을 기본으로 한다. 작가가 이 도시 저 도시에서 포착한 지속적 삶에는 모두 서정적 향수가 깔려 있다. 차분해 보이는 울산 풍경에도 지난 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난장판 같은 현실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가령 태풍이 지나간 어수선한 공사장 벽에는 앞으로 완성될 미래의 청사진이 함께 보이는 식이다. 어떤 사건들이 우리를 훑고 지나갔든 어쨌든 인생은 지속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정에는 낙관주의가 깔려있다. 지금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다만 한때라도 거기에 있었음을 증거 하는 사진에는 범속한 실증주의만큼은 아니더라도 실재에 대한 인정의 감각이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존재론과 달리, 실재에 뿌리를 둔 사고는 시간의 힘을 인정한다. 어느 때는 너무 시간이 빨리 가고, 또는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고, 어느 때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가속도가 붙는 것은 공통적이다. 작가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그것에 맞게 활용하고자 했다. 아마 울산에서의 체류 기간이 3개월이 아니라 3년, 또는 30년이라면 이렇게 경쾌한 터치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쾌한 터치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가령 관광객처럼 가벼운 스냅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너무 많이 이고지고 있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찍었다는 것이다. 




울산이여 안녕_꽃바위해변, Archival pigment print, 100×125cm, 2016.



울산이여 안녕_태풍은 지나가고(태화강)#03, Archival pigment print, 벽면에 사진설치, 2016



울산이여 안녕_전하동 현대3단지, Archival pigment print, 100×125cm, 2016.



그 결과물은 오랜 고심의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계획되고 마무리된 것들 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김영경의 카메라에 포착된 울산은 내가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아마도 몇 개월 전에 울산에 도착하여 이곳저곳 탐사하던 작가도 그곳에서 의외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김영경의 사진에는 울산의 이면이, 또는 그것이 이미 알려져 있는 표면이라면 색다른 느낌으로 포착되어 있다. 나에게 울산은 1980년대 초반 고교 수학여행 때인가 한번 가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 때문에 수 십 년 만에 다시 방문 곳이다. 당시 수학여행 코스는 고도(古都) 경주의 유적지를 방문하고 울산의 공업단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오랜 군부독재로  어두운 시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가 한창 성장하던 무렵이라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 지역의 공업단지는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으로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공장 굴뚝에서 많은 연기들이 치솟는 장면들이 발전의 상징만은 아니라는 점은 그보다 한 참 후에 깨달았다. 


김영경의 작품에서 수학 여행같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반강제적 성격의 집단 관광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공단 풍경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울산에 있던 내내 자기도 모르게 바닷가에 가 있었다는 작가에게 공단 풍경은 저 멀리에 흐릿한 배경으로 깔려 있거나, 공장 노동자들이 사는 아파트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르는 이국적인 가게 등, 다른 사물들로 유추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한가하게 강변에서 산책하거나 이런저런 레저 활동을 즐기는 시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인상을 걷어낸다. 물론 굴지의 생산단지를 품고 있는 울산은 남한사회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부유한 도시다. 그런데다가 자연 풍광 또한 뛰어나다. 그러한 양쪽의 만족은 오히려 예술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켰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김영경의 울산 풍경에는 산과 바다, 강을 두루 갖추고 든든한 생산의 현장이 있는 그곳의 여유가 묻어난다. 동시에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은 세계화 시대에 저물어갈 수밖에 없는 산업화 시대의 뒷모습 또한  반영되어 있다.        




울산이여 안녕_방어동#01, Archival pigment print, 100×125cm, 2016.



울산이여 안녕_슬도#01, Archival pigment print, 벽면에 사진설치, 2016



울산이여 안녕_주전몽돌해변, Archival pigment print, 150×225cm, 2016.



잘 정비된 신도시, 태풍이 와도 신속히 복구되고 있을 만큼 잘 돌아가는 공공서비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의 사람들 중에는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발견된다. 남해안 지역의 항구도시에서 들려오는 조선업같은 중공업들이 쇠퇴하고 지역 전체가 슬럼화 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지도력의 부재로 인해 앞으로도 한참의 방황이 예고되는 그 불길한 느낌이 여유로웠던 도시를 잠식할 지도 모른다. 이 변화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태풍 전야의 풍경에 감돈다. 그러나 동시에 김영경의 작품에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울산에서 (재)발견한 자연이다. 울산에서 산업이 과거라면 자연은 미래이다. 자연은 무엇인가의 끄트머리에서 전경화 되곤 한다. 여기에서 예술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번 울산에서의 작업 80%가 바다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다. 몽돌이 깔려 있는 해안가 풍경을 담은 사진은 하늘과 바다와 몽돌해변이 1/3씩 차지하고 있다. 화면 한가운데는 작은 바위섬이 태풍을 비롯한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견뎌낼 것 같은 강인한 얼굴로 관객을 마주본다. 

 

출전; 울산 북구 예술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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