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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취약성으로부터 누수 된 권력, 그것이 만들어낸 성추문

이선영

시스템의 취약성으로부터 누수 된 권력, 그것이 만들어낸 성추문

 

이선영(미술평론가)

 

요즘 들어 전시 알림 메시지 같은 것이 올 때 ‘이 시국에.....’로 시작되는 안내문이 많다. ‘이런 때(?) 전시 오픈을 알리게 되어 죄송스럽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왜 각자 자기 일 열심히 해왔던 사람들이 죄송해야 하지? 이들에게 갑자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하는 각성을 야기하는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허탈한 웃음부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는 그러한 사건들은 국민들이 자기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생긴 일 아닌가. 방과 후 학원 몇 개를 소화하는 초등학생부터 새벽별 보고 등교하거나 ‘지옥철’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루 종일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까지, 온 국민이 각자 당면한 과제로 뺑뺑 돌다보니 벌어진 일 아닌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라고 하면서 ‘경계를 넘어’ 전횡을 일삼는 이들은 따로 있었던 것 아닌가. 맡은 바 소임은 어떤 교육부 고위 관료의 말대로 ‘개돼지’의 일이고, 그들로부터 나온 권력을 가로채는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닌가. 


투명해야할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 더 나아가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힘은 투명하지 않다. 권력과 연루된 사건들은 합리화된 현대 사회의 비합리성을 확인시킨다. 누구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지만, 누구는 안 지켜도 될 뿐 아니라, 규율화 된 공적 시스템을 역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최고 권력자의 ‘선한 의도에 의한 통치행위’부터 작가들 몇몇 모아 하는 전시에 이르기까지 합법적 불법, 즉 불법을 위한 합법들이 만연해 있다. 모두들 공무원 되겠다고 엄청나게 법을 공부하는데 어째 이런 일이! 원래부터 세상은 그랬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 앞에 벌어진 사태가 너무 황당하면서도 심각하다. 전 국민을 패닉상태로 몰고 간 최근의 사태는 그 동안 있었던 세월호 침몰 등, 우리사회를 강타한 충격적 사건들의 인과고리 또한 깨닫게 한다. 더구나 ‘문화예술’이라는 말랑 말랑해 보이는 영역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불확실한 곳이고, 이러한 허점을 악용하는 기생충들이 번식하기 좋은 뜨뜻한 장이다. 


얼마 전 문학계에 이어 미술계 성추문 폭로는 이러한 시국에 비한다면 별일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국적인 사건과 문화계 성추문은 모두 권력 남용과 연관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작가들에게 인기 있었다던 한 유명 큐레이터의 성추행 피해자가 150명--SNS로 서로의 피해를 확인한 여성작가들의 숫자—이나 되었다니, ‘젊음’이라는 코드가 이렇게도 사용되는구나! 성추행은 ‘헬조선’에서 젊은이들이 당하는 수많은 유린 목록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 성추행 용의자는 ‘젊은 미술가들의 대통령’ 쯤 되었나? 일개 CF 감독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문화예술관련 단체를 거의 꿰차고 있었던 ‘문화계 황태자’였고, 교수 출신 문화부 차관이 ‘체육계 대통령’이였던 마당에, 미술계가 아무리 대중의 관심밖에 있는 영역일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서 빠질 수는 없지! 미술이 권력남용이 가능할 만큼 대단한 무엇이 있나하는 의문도 있지만, 큰 권력도 작은 권력들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작품 선정에는 사심이 아닌 객관성이 요구된다(사진은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 퍼옴)


역으로 큰 권력의 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작은 장에서도 재현된다.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대표적 기관인 대학이 한 학기 출석일이 7일이 채 안 되는 부정 입학자에게 학점을 주고, 보상적 차원에서 상당한 액수의 눈먼 돈을 지원을 받은 예에서 큰 권력이 어떻게 작은 계로 재현되는지 볼 수 있다. 미술계는 큰돈 오고 갈 일 없는 곳이다 보니, 몸이 오고갔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고...문화융성, 융복합, 창조경제...등 거품이 가득 낀 ‘국정기조’ 속에서 미술계는 체육이나 한류 등으로 환원된 ‘문화’의 축에도 끼지 못했지만, ‘갑’이 ‘을’을 착취하는 구조는 똑같았다. 미술계에서 회자되었던 성추문 관련자는 주로 전시기획자들이었다. 문학에서는 [문학과 지성]사 등, 유명출판사를 끼고 있는 유력 작가나 대학 강단에 몸담고 있는 비평가들이 지목되기도 했다. 그 엉큼한 문화 권력자들은 젊은 문인의 등단에 영향력을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미술 기획자들이 그들만큼 ‘갑’이었나? 


알고 보면 한국미술계에서 기획자들도 작가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이 힘든 부류들이다. 또한 미술계의 ‘문화 권력’은 정치계와도 다르다. 미술계와 달리 정치계의 추문들은 철밥통이라는 그들의 지속적인 토대에 바탕을 둔다. 정경유착을 비롯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은 이미 있는 기득권에 더 큰 무엇을 챙기기 위한 무한 욕망에 의해 추동되었다. 미술계의 시스템이 미비한 것을 생각해보면 미술계가 특정인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썩은 동아줄을 줄로 착각한 이들이다. 권위자와 추종자는 그 역할을 나누어 맡을 뿐이다. 어쨌든 최초의 강력한 폭로가 이루어진 후 그 비슷한 사례들이 뒤를 이었다. SNS는 갑자기 성적 고백의 성소로 뜨거워졌다. 물신을 만들어내던 SNS가 물신의 파괴에도 활용되고 있다. SNS가 담론-권력-성 복합체의 진원지가 되고 있음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성과 권력의 관계는 예술만큼이나 내밀하다. 다시 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국정 농단의 한 축인 최순실 딸이 ‘말 못할 속사정’으로 주변의 시선을 피해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갑작스런 외국행으로부터 두 재단의 설립이 급물살을 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사기극의 등장인물에 ‘호빠’도 나오고. 오늘 신문을 보니 검찰조사를 받아야할 피의자가 대국민 범죄관련 소명에 ‘여성의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고 말한다. 눈먼 시스템의 허점을 틈탄 권력 남용의 과정에서 성은 범법을 일으키게 하고, 그에 대한 알리바이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가진 자가 나머지 것도 다 가지는 권력의 속성은 성 또한 주요한 자산으로 삼는다. 미술계보다도 덩치가 크고 말과 글을 주 매체로 삼는 문학에 뒤이어 미술계에서도 늦게나마 성추문 사실이 밝혀진 것에는 여성/작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미술계의 상황을 반영한다. 최종 심급은 역시 민초들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이후에 그 권력에 매달려 있다가, 결국에는 바로 그 권력으로 인해 침몰할 것이다.

  

출전; 아트 인 컬처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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