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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기 / 환상적 실재를 찾아서

이선영

환상적 실재를 찾아서

  

이선영(미술평론가)

 


서슬기의 작품은 환상적이다. 그것은 최근 몇 년간의 개인전 부제만 훑어 봐도 분명하다. [마음의 장치](2020), [슈가 나잇](2019), [Window in dream](2018), [PHANTASMA](2018), [Daily Fantasy](2017) 등이 그렇다. 환상(phantasy)은 정신분석학에서 ‘주체가 주인공이 되어 소망의 충족을 재현하는 상상적인 장면’(라깡)이라고 정의된다. 마단 사럽은 라깡에 대한 입문서에서 환상을 ‘각 개인에게 있어 주체와 그 욕망의 대상의 관계가 악착같이 연기를 계속하는 개인 무대’로 해석한다. 정신분석학에서 환상은 잉여나 장식, 또는 허구나 거짓이 아니다. 마단 사럽은 ‘비록 상상적이긴 해도 환상은 주체에 절대로 필요한 구조’라고 강조한다. 분홍색 커튼이 처진 풍경을 그린 작품 [꽃피는 시절](2019)에서 강, 산, 밤하늘, 무지개, 오리 배, 꽃 등은 창밖의 현실을 재현하거나 거울에 반영한 것이 아니라, 환상의 무대이다. 서슬기의 많은 풍경에 등장하는 산은 묵직한 실재감을 가지기 보다는, 부드러운 주름이 잡혀진 덮개처럼 볼록하다. 


서슬기의 작품에 종종 나타나는 등대는 환상의 무대를 비추는 조명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물들을 ‘동화적, 유희적’으로 다룬다는 작품은 은근히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몰두하는 일인 그림그리기에서 환상을 온전히 실현하고자 한다. 작업량이 상당히 많은 것은 작가가 그만큼 오랫동안 환상의 영향력 내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환상은 작품 속에 늘어선 사물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현실 속에서 예술의 입지가 넓지 않은 만큼, 소외를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치열하다. 물론 육체적인 작업이기도 한 그림은 단순한 꿈과는 다른 현실적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작업이 일상화되어 자신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이 되면, 물리적 저항이 차지하는 부분은 점차 줄어든다. 바이올리니스트와 바이올린이 한 몸이 되는 것과 같다. 연주에 몰입하는 연주자의 몸짓과 표정은 자신의 감성을 즉각 음에 반영되고 있음을 말한다. 반면 서투른 예술가는 관념과 형식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적 삶처럼 예술 또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전도된다. 


현대예술이 수단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그 자체의 목적으로 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활동을 노동이나 기술적 생산 활동과 구별 짓기 위함이다. 여타의 일과 구별은 되지만, 소통불능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점은 오늘날 예술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다. 서슬기의 조형언어는 투명한 편이다. 사실주의 기법은 아니지만, 붓질 그자체보다는 붓질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를 더 중시한다. 환상은 현대 사회에서 장려되는 것이면서도 억제되는 것이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앞에서 유혹되는 소비자에게 광고 전문가가 끼워 넣는 것은 환상의 장치다. 잘 가동되면 그 상품은 물신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환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실에의 각성이 요구된다. 자본주의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은 끝없는 소비를 위해 생산에서의 소외를 대중들이 감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품은 손에 넣는 순간 환상적 동력을 잃고 곧바로 다른 욕망의 대상을 향한다. 단순한 소비와 달리, 작업을 통해서는 무엇을 손에 넣기 쉽지 않다. 버리기도 쉽지 않다. 


예술은 지연된 욕망을 은유적으로 지속한다. 예술작품의 생산자는 내 의도대로 완성함으로서 내 것을 만든다. 예술적 소통에 성공하면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잃어버린 것도 되찾을 수 있다. 서슬기의 경우 잃어버린 대상과 더불어 잃어버린 시간도 소환된다. 환상의 주인공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소녀로 작가의 분신이다. 긴 머리는 여성성을 잠재하지만, 땋은 머리는 개구쟁이같은 모습도 중첩시킨다.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만화적 스타일의 필치를 염두에 둔다면, 이 소녀는 캐릭터에 가깝다. 소녀는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고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과 함께 한다. 물건들이 작품마다 각기 달리 배치되면서 조금씩 다른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물건들의 대부분은 오리 인형이나 코끼리 열차 같은 장난감이며, 집 같은 구조물 또한 장난감 같은 면모가 있다. 어느 나라사람이 봐도 알아 볼만한 보편적 물건들이다. 그것들은 오래되었지만 전통적인 사물도 아닌, 그 탄생부터 시한이 정해진 근대의 유행하는 물건들, 즉 대량 생산 소비되는 상품들이다. 


주인공과 동행하는 캐릭터는 아예 인형 탈을 쓰고 있다. 체격이나 역할로 봐서 남성이며 성적 차이 또한 유희를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라는 점에서, 작품 속 다른 대상들과 다르지 않다. 음식물 또한 많이 등장하는데, 메뉴판의 이미지처럼 정갈한 음식들은 생존의 욕구를 넘어선 욕망의 대상, 즉 SNS 등에 만연한 자신의 취향이나 행복을 선전하는 기표로도 작동한다. 다이어트 하는 소녀의 도상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음식은 욕망과 금지 사이를 왕래하는 대상이다. 금지가 없다면 욕망도 없다. 각종 물건들과 서슬기의 작품이 기억과 무의식, 또는 꿈의 무대임을 알려준다. ‘나에게 그 기억은 현재의 감정이나 사건들과 겹쳐져 환상처럼 다가온다’. ‘꿈처럼 다가오는 순간들을 일련의 사건을 재구성 하듯 그려 나간다’는 작가의 언급은 현실과 관련되지만 현실은 아닌 어떤 세계를 예시한다. 유리구슬 안에 든 눈사람이 그려진 작품 [멜로디](2020)에서 작가는 구슬 안과 배경의 스카이라인을 일치시킴으로서, 환상의 위상을 현실에 종속시키지 않는다. 환상은 다양한 기억의 대상들로 구체화된다. 


2016-17년 사이에 그려지고 발표된 [기억의 대상들_oooo] 식으로 붙여진 제목에는 제목 안에 포함된 목마 자전거, 집, 오리 배, 빗과 머리 방울, 굴뚝. 트라이 앵들 등이 그대로 등장한다. 그러한 대상들이 여러 개 등장할 때는 병치라는 방식을 따른다. 기표들은 종합되지 않고 나열된다. 이러한 방식이 극단화되면 사물들은 중력을 벗어나 수직 수평의 좌표로 배열되기도 한다. 작품 [다정한 자장가](2018)에는 코끼리 열차, 오리 배, 작은 집, 곰 캐릭터, 별과 달, 무지개와 구름 등 총출동 하지만, 각각의 요소들이 인접하는 인과적 논리는 불확실하다. 작품 [시절](2017)에서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둥 떠 있다. 서슬기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동수단은 여기에서 저기로 비약하는 상황과 관련된다. 대표적인 것은 오리 배이다. 작품 [머무르는 것](2017)에는 오리 배를 탄 소녀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보여준다. 환상여행의 기착지는 어디인가. 출발지는 작품 [다녀오겠습니다](2017)에 등장하는 무지개들을 배경으로 하는 집일 것이다. 기점은 종점을 이미 예시한다. 


또 하나는 코끼리 열차이다. 푸른 우주를 횡단하는 코끼리 열차를 그린 [꿈의 조각](2018)이나 앞 유리창에 우주를 품은 코끼리 열차가 산과 무지개를 통과하는 [환상열차](2020)가 그렇다. 이동수단은 직접 이동하지 않아도 그자체로 환상적인데, 서슬기의 작품에서는 이동수단의 의자나 창 등에 이미 우주의 단편으로 채워져 있다. 배나 열차 등은 물리적 여행이자 정신적인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 속 이동수단은 동시에 장난감이기도 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하는 인간은 일상을 떠나 게임의 시공간에 놓인다. 서슬기의 작품 속 놀이 도형처럼 그 안에서 만큼은 다른 규칙이 작동된다.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그러한 해방구 중의 하나이다. 어른이 돼서도 놀이하려는 사람은 예술가가 되면 된다. 서슬기의 작품에서 구름사다리나 미끄럼틀, 또는 땅에 도형을 그리고 노는 게임 등의 도상은 자주 나타난다. 작품 [쌓여지는 미끄럼틀](2017)에는 물리적 실체를 넘어서 우주를 품고 있는 미끄럼틀이 나타난다. 놀이 뿐 아니라 탐구 또한 마찬가지여서 작품 [쌓여지는 의자](2017)에서 우주로 통하는 의자바닥이 보인다. 


놀이는 대개 혼자 행해지지만 누군가와 같이 하게 된다. 작품 [그날의 우리](2019)나 [집으로 가는 길](2017)에서 갈래머리 소녀와 함께 등장하는 등신대 크기의 토끼 인형이나 개구리 왕자 등의 캐릭터는 분신과 함께 행동(놀이)한다. 가장 구체적인 대상인 음식 또한 환상적이다. 서슬기의 작품에서 빵이나 과자, 만두나 떡 같은 음식들은 환상적으로 그려졌다기 보다는 환상적으로 놓여진다. 음식물이 다양한 구조에 놓일 때 뿐 아니라, 화면 가득히 하나만 그려졌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자 모두 합리적 추론이라는 맥락과 동떨어진 것이다. 음식은 처음부터 환상적이다. 스스로 직접 식재료를 생산해야 하거나 요리를 해야 한다면, 음식은 결코 환상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생산된 것을 소비하는 입장은 다르다. 동물과 달리 오랜 기간 모체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인간에게 음식은 어디선가 나타나는 구세주 같은 존재다. 인간이 잃어버린 최초의 환상적 실재가 어머니의 젖가슴이라는 정신분석학의 가설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어미오리가 있으면 반드시 아기오리들 또한 보이는 서슬기의 작품에는 무의식적 모성이 작동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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