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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형 / 당연한, 당연하지 않은 일상

고충환

정규형 / 당연한, 당연하지 않은 일상


정규형은 Q'rawing을 그린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며 주제이기도 한 Q'rawing은 Question과 Drawing을 합성해 만든 조어로서 대충 질문드로잉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작가는 말하자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드로잉을 한다. 세상에 대해 말을 거는 수단이며 방편으로서 드로잉을 한다. 이런 사실은 예술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에도 부합한다. 예술은 말하자면 주체가 세상에 대해 말을 거는 기술이며, 이때의 기술은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형식을 취한다. 정리를 하자면 예술이란 질문의 형식을 빌려 세상에 대해 말을 거는 기술이다. 


Bedford AV, 150x75, Acrylic & Colored Pencil on Paper, 2011


그렇다면 작가는 드로잉을 매개로 그리고 회화를 매개로 세상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말을 거는가. 회화도 그렇지만, 작가에게 드로잉은 일상을 기록하고 일상의 순간들을 기념하는 수단이며 방편이 된다. 일상을 기록하고 일상의 순간들을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말하자면 작가의 진정한 주제가 되겠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일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이를 스튜디오에서 재구성한다. 일상이 체험되는 현실공간과 이를 재구성하는 상상공장을 왕래하면서 현실이 이미지로 재현되고 번역된다. 마치 산을 주유하면서 그렇게 주유된 풍경을 머릿속에 스캔한 연후에, 이를 바탕으로 산을 그리는 전통산수의 방법론과도 통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산수가 단순한 산수를 넘어서듯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일상은 단순한 일상 이상이다. 일상에 대한 재현과 함께 일상에 대한 관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일상에 대한 어떤 관념을 그리는가. 일상에 대한 작가의 관념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을 작가는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뭐가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은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여기에 대해 작가는 사실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지하철을 타면 신기할 정도로 매번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그 경우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 재생산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은 결코 올 수가 없다.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데자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차이를 내포한 반복이고 차이를 생산하는 데자뷰다. 


2013. 7 12 태양의 서커스, 30x30cm, Pen on Paper, 2013


이렇게 채집된 일상의 편린들을 작가는 재구성하는데, 그 방법은 크게 두 갈래의 형식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가로 혹은 세로로 일상의 편린들을 병열하고 나열하는 방법이 그 하나이며, 일상의 편린들을 하나의 화면 속에 중첩시키고 포개는 방법이 또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만화 아님 일러스트에서처럼 장면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다. 후자는 장면이 쉽게 인지되지 않는 만큼 오히려 일상의 역동성이며 중층화된 현실을 강조하고 부각하는 특징이 있고, 여기에 상대적으로 더 회화적이다. 여기서 일상의 편린들이란 사실은 일상의 순간들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순간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 중첩되고 포개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고, 이때 그 순간들 간에 어떤 우열도 없는 등가치를 이루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꽤나 복잡하게 중층화된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저하게 평면적으로 보인다. 


일상의 편린들이란 일상의 순간들이라고 했고, 그 순간들 간에 우열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우열이 없는 것으로 치자면 시간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여전히 작가가 이부자리 속에서 미몽을 헤매는 장면이며 지하철 내부의 복잡한 찜통장면, 학교 아님 사무실에서 업무에 열중인 장면이며 카페에서 한담하는 장면, 그리고 여기에 지하철 안에서 본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어떤 우열도 순서도 인과도 없는 등가치를 이루면서 한 화면 속에 공존한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여기에 작가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실, 이를테면 여행에서의 추억장면과 사사로운 생각들이며, 아마도 복잡한 찜통 속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무심코 떠올렸을 생각들이 보태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이 허구와 공존하고, 현실이 허구에 의해 각색될 것이었다. 이처럼 순간과 순간, 사건과 사건, 시간과 시간 그리고 여기에 공간과 공간이 어떤 우열도 순서도 인과도 없이 등가치를 이루면서 공존하는 것, 그것은 의식의 생리로 치자면 계보 내지 계통학보다는 계열학(차이들의 무한연쇄)에 가깝다. 


Subway and cafe, 233.6x91cm, Acrylic & Oil & Charcoal on Canvas, 2014


눈치 챘겠지만, 작가의 그림은 중층적이고 복잡하다. 여기에 마치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아님 입체파에서처럼 지하철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 들어오는 사람의 순간순간의 포즈(엄밀하게는 얼굴)를 중첩해 그린 일종의 프로세스아트(과정을 그리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시간개념과 특히 지속개념과도 통하는)가 가세하면서 그림은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 속엔 어떤 여백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없는 여백이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의 공간공포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고딕미술의 양식적 특징을 지칭하기 위해 보링거가 고안한 이 말은 마치 최소한의 여백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빼곡한 조형이며 양식적 태도를 의미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빼곡한 조형이며 중층화된 양식이 복잡한 현대인의 의식구조며, 이러저런 이해관계가 난맥상으로 얽혀있는 현대인의 삶의 질을 닮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작가는 일상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퍼즐처럼 순간들의 조합으로 재구성된 일상을 그리고 있었고, 파편화된 일상을 그리고 있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그리고 있었고, 친근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낯 설은 일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친근한 일상을 낯설게 하는, 그리고 그렇게 낯설어진 현실을 통해 친근한 일상이 은폐 내지 억압하고 있는 잠재적 현실(어쩌면 진정한 현실일지도 모를)을 폭로한 아방가르드의 낯설게 하기와도 통한다. 그리고 그렇게 현대판 기록화 내지 풍속화를 그리고 있었고, 일상을 그리면서 사실은 아님 동시에 현대인의 삶의 초상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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