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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문화재단 상설전시, 고희동 미술관

객원연구원

<고희동 미술관>
종로 문화재단 상설전시

관람 시간 10:00~18:00 (17:30까지 입장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 추석 당일 
장소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2012년 등록문화재 제487호로 지정된 <부채를 든 자화상>,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정자관을 쓴 자화상>은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화 작품으로, 고희동을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만들어준 작품들이다. 세 점 모두 1915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를 든 자화상>에는 그의 서명과 함께 '1915'라는 연도가 명시되어 있고, 졸업 작품으로 제출하기 위해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제작한 것도 1915년이기 때문이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에는 서명이 없지만, <정자관을 쓴 자화상>의 두루마기와 동일해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위한 습작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좌로부터<부채를 든 자화상>, <정자관을 쓴 자화상>,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고희동 본인은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조금 더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졸업 작품으로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제출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부채를 든 자화상>을 더 우위에 둔다. 왜냐하면 다른 두 작품보다 <부채를 든 자화상>이 근대적 요소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째로, 광선에 의한 화사한 색채 표현이 탁월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른쪽 이마와 광대뼈에서 빛이 반사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이 공간에 빛이 충분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붉은 얼굴과 상대적으로 어둡고 푸르스름한 가슴, 살과 맞닿는 부분이 보라색으로 처리된 모시적삼은 그가 빛의 변화를 통해 색채가 얼마나 다양하게 바뀔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걸 준다. 이 효과를 위해 고희동은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처럼 짧은 붓질을 자주 해 화면을 채웠다. 그가 동시대의 화법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둘째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모시적삼과 부채는 그가 여전히 한국적인 것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주변에 있는 서양 책들과 액자는 그의 생활 방식에 서구적인 문화가 스며들어 있음을 나타내준다. 이를 통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적 지식인이자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고희동의 의도를 알 수 있다.(고희동 미술관 영상 자료 설명)



좌로부터 '옥녀봉도,1947, 33.2×23.8cm, 종이에 담채', '유해금강도, 1947, 9.6×24.3cm, 종이에 담채 


  回憶昔遊 玉女峰奇觀 忽入眼前 寫此消愁心 丁亥 春日 春谷
  (옛날 유람을 회상하니 옥녀봉의 기이한 경치가 홀연 눈앞에 떠올라 이 그림을 그려 수심을 달랜다. 정해년 봄 춘곡)

  遊海金剛已四十年矣 今不得再往 聊寫小景 以消幽懷 時丁亥春日 春谷
  (해금강을 노닌 지 이미 40년인데 이제 다시 가볼 수 없다. 작은 경치를 그려 그윽한 심사를 달랜다. 정해년 봄 춘곡)



남호호추수벽어람,  1964, 33.5×109.6cm, 종이에 담채(고희동미술관 제공)


  南湖秋水碧於藍 白鳥分明見兩三 柔櫓一聲飛去盡 夕陽山色滿空潭 甲辰秋日 錄鄭樵夫詩一絶 七十九叟 春谷
  (남호의 가을 물은 쪽빛보다 푸르러 또렷이 보이는 건 두세 마리 해오라기. 노 젓는 소리에 새들은 날아가고,
  노을 진 산 빛만이 강물 아래 가득하다. 갑진년 가을 정초부의 시 한 구절을 쓰다. 79세 노인 춘곡)



시청각실, 서예협회 결성에 관한 자료와 설명 


김순기 

meonze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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